“나는 실패의 제왕이다.”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이하 <도적들의 명예>)의 에드긴(크리스 파인)은 계획이 엉망이 되어 뿔뿔이 흩어지기 일보 직전의 파티원들에게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밝힌다. 한때 정의와 질서를 수호하는 명예로운 집단 하퍼의 일원이었던 에드긴은 레드 위저드들에게 아내를 잃고 도적으로 전락했다. 그동안 하퍼였기 때문에 위험에 노출됐다고 변명해왔지만 진실은 본인이 물건을 훔친 탓에 추적을 당했던 거였다. 스스로 밝히듯 에드긴의 인생은 자신의 욕심으로 인한 실패의 연속 그 자체다. 하지만 홀로 남은 딸을 키워야 하고, 아내를 되살리고 싶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계획을 수정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무능력자 에드긴을 파티의 리더로 만들어주는 이 대사는 마치 게임 영화의 역사에 정면으로 선언하는 것처럼 들린다.
게임 원작 영화의 역사 역시 꾸준한 실패의 기록이다. 평단의 호평과 대중적 성공을 동시에 거머쥔 걸작은 아직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평가가 박하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애초에 게임 원작 영화의 욕망은 노골적이다. 성공한 원작의 수혜를 받겠다는 것. 해를 거듭할수록 유의미한 흥행 성적을 기록하는 작품이 나오곤 있지만 감히 함부로 ‘성장 중’이란 표현을 쓰기엔 여전히 염치없는 작품들이 수두룩하다. 다만 한 가지 확언할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게임 원작 영화의 양식이 쉼 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거다. 게임과 영화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섞여가는 중이다. 스토리 기반의 소설이나 다른 원작들과 달리 게임은 기본적으로 영상 체험을 기반으로 하는 매체이기에 그 변화는 더욱 밀접하고 상호보완적이다.
도적이자 음유시인 에드긴은 실패를 실패로 만들지 않는 마법의 주문을 설파한다. 플랜A가 실패하면 플랜B, 플랜B가 실패하면 플랜C를 준비하는 꺾이지 않는 의지. 그 의지의 정체가 세속적 욕망인지 숭고한 이상인지는 중요치 않다. 도전이 이어지는 한 실패는 결과가 아니고 과정의 일부가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여기까지 당도했다. 최근 게임 원작 영화의 역사에 기록을 남길 만한 성공작 두편이 차례로 개봉했다. <도적들의 명예>와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그 주인공이다. 두편 모두 일찌감치 영화화되었고 장렬한 실패를 맛봤던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미 실패한 원작을 왜 다시 영화화했을까.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게 무엇인가. 성공이라는 결과는 동일하지만 그 방식은 확연히 다른 두편의 영화를 나란히 놓고 보니 게임 원작 영화 앞에 놓인 갈림길이 희미하게 엿보인다.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 장르라는 무대를 최대한 활용한 준비된 역할극
<던전 앤 드래곤>은 2000년에 이미 한 차례 영화화된 바 있다. 제러미 아이언스를 캐스팅하는 등 당시 저예산 중심의 게임 원작 영화들과 노선을 달리하는 야심찬 작품이었지만 제작비 회수에는 실패했다. 2005년에도 2차 창작물이 영화화된 적 있으나 한층 더 처참한 혹평과 함께 팬들의 기억에서마저 지워졌다. 계속된 실패에도 영화화를 거듭하는 이유는 그만큼 원작 IP의 위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던전 앤 드래곤>은 TRPG(테이블톱 롤플레잉 게임)를 기반으로 하는, 현존하는 거의 모든 중세 판타지 RPG의 원형과도 같은 게임이다. <반지의 제왕>과 더불어 판타지 세계관의 양대산맥이라고 해도 좋을 아이템을 쉽사리 포기하긴 어렵다.
2023년 <도적들의 명예>는 전작의 실패를 거울 삼아 다른 노선을 취한다. 일단 <던전 앤 드래곤>의 세계관에 최대한 충실하되 전반적인 전개는 하이스트 코미디를 기둥으로 세워 최대한 영화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다. <도적들의 명예>는 독창적인 내용은 아니다. 오합지졸의 팀이 좌중우돌 위기를 돌파해나가는 모험극은 이미 익숙하다. 가깝게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우주를 치트키처럼 자유롭게 넘나드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떠오르는데, 큰 능력이 없는 주인공이 팀의 중심이 되어 개성 넘치는 구성원들을 이끈다는 전개는 달리 말하면 이미 검증된 패턴이기도 하다. “너의 역할이 뭐냐”는 질문에 “나는 계획을 짠다”는 답변처럼 리더이자 음유시인 에드긴은 자신의 직업답게 스토리텔러가 되어 살짝 모자란 팀원의 능력을 적재적소에 활용한다. 여기까지라면 중세 버전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처럼 소비되었겠지만 <도적들의 명예>에는 확실한 변별점이 있다. 다름 아닌 원작 게임의 확고한 세계관과 규칙이다.
게임 <던전 앤 드래곤>의 주인공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세계관 그 자체다. 주사위를 굴려 진행하는 게임 <던전 앤 드래곤>은 독특한 진행 방식 덕분에 확고한 룰 안에서 움직인다. 세계관이 주인공이라면 쾌감의 핵심은 개성 넘치는 역할극(롤플레잉)에 있다. 예컨대 매사 진지한 팔라딘은 ‘도덕적, 절대 선’에 해당하는 캐릭터로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는 다르게 행동한다. 사실 이건 모든 캐릭터가 마찬가지인데, 넘치는 개성과 역할극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도적들의 명예>는 클리셰를 변주하는 B급 코미디라는 영화적 장치로 해결해버린다. 거기에 더해 물건을 탈취하는 하이스트 장르는 게임에서 미션을 주듯 명확한 목표를 제시해 판을 이끈다. 이 모든 결합이 가능했던 건 영화판이 ‘세계관’ 방식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요컨대 <도적들의 명예>는 영화계의 환경이 바뀐 덕분에 가능해진 결과물이다. CG의 발전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세계관 위에 장르를 얹는 식은 이제 프랜차이즈의 기본이 되었다. 2000년에 너무 빨랐던 것들을 이제는 담아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던전 앤 드래곤>의 도적들은 최고의 주사위 패를 던졌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게임 광고 혹은 보는 게임
<도적들의 명예>가 영화를 중심으로 게임의 요소, 특히 세계관의 활용 방식을 장르적으로 조합했다면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이 귀여운 애니메이션은 철저히 게임적이다. 공개 초반 평론가들의 혹평이 일견 납득이 가는 건 애초에 이 작품이 전통적인 영화 서사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흔히 말하는 개연성, 캐릭터의 깊이, 사건의 인과관계와 상황의 설득력 같은 건 신경도 안 쓰고 있다. 대신 마리오를 중심으로 한 닌텐도의 IP를 적재적소에 녹여내고 전시하는 데 집중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기계적인 조립이기에 완성도 면에서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하지만 “게임 광고 같다”는 비판이 도리어 이 애니메이션의 정확한 목표이자 정체성으로 보인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단점을 영화적으로 지우기보다 장점을 게임의 방식으로 극대화하는 노선을 취한다. 기본 골자는 횡스크롤의 단순한 점프맨이었던 마리오부터 3D 액션의 대난투, 마리오 카트까지 게임 <슈퍼 마리오>의 역사를 홅는 건데, 40년 가까운 <슈퍼 마리오>의 역사를 이어붙이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이때 설득의 주체는 실은 영화가 아니다. 영화 바깥의 정보들, 마리오에 대한 인상들 그리고 게임 플레이를 관람하는 방식에 대한 익숙함이다.
첫 번째 게임 원작 실사영화인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개봉한 지 어느덧 30여년이 지났다. 그사이 영화가 바뀐 만큼 게임도, 정확히는 게임의 체험 방식도 변모했다. 지금은 누군가가 게임 플레이를 ‘영화처럼’ 감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를 본다는 건 한편의 영화에 집중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능력자의 슈퍼 게임 플레이를 감상하는 행위와 닮았다. 한줄 설정으로 게임의 프롤로그가 충분한 것처럼 여기에 복잡한 설명과 서사가 굳이 필요치 않다. 마리오가 기발한 점프를 하고, 동키콩을 이기고, 무지개 다리 레이싱에서 질주하며 각종 스테이지를 돌파해나가는 재미를 지켜보는 걸로 대리 만족이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2023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영화라기보다는 차라리 보는 게임이다. 게임이 영화에 가까워질 때, 영화도 게임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 중간 어디쯤에 영화도 게임도 아닌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방식의 영상 우주가 탄생 중인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