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전사의 진화 형태 - 게임 원작 영화의 여성주인공 재현은 어떻게 변해왔나
2023-04-28
글 : 이자연

1993년 세계 최초 게임 원작 영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를 비롯해 <스트리트 파이터> <툼 레이더> <워크래프트> <어쌔신 크리드> <명탐정 피카츄> <수퍼 소닉> <언차티드> 등 다양한 게임이 영화로 재탄생했다. 게임 원작 영화의 끝없는 시도가 흥망성쇠의 격변을 이루는 사이, 게임과 영화 사이의 여성 캐릭터 재현이 어떻게 변모해왔는지 정리해보았다.

1. <모탈 컴뱃> 소냐 블레이드

<모탈 컴뱃> (2021)

폴 앤더슨 감독의 연출작 <모탈 컴뱃>(1995)은 제작비 2천만달러 대비 북미 7045만달러, 세계 흥행 수입 1억2219억달러를 기록하며 관객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은 게임 실사 영화다. 당시 게이머들로부터 원작의 캐릭터 설정은 물론 세계 무술 고수들이 외계 전사들과 지구 침공의 권한을 두고 전투를 벌이는 기본 스토리라인도 잘 재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중 홍콩 여성 경찰관 출신인 소냐 블레이드(브리짓 윌슨)는 첫 대회에서 지하범죄왕 케이노(트레버 고다드)의 목을 부러뜨리며 승리를 거둘 만큼 엄청난 저력을 보인다. 게임에서 소냐는 다른 남성 전사와 달리 신체적 특징이 부각되는 표현적 한계를 지니기도 하지만 영화에서는 스포티함을 통해 상대적으로 문제를 상쇄했다. 이러한 아쉬움은 2021년의 리부트 버전 <모탈 컴뱃>에서 많은 변화를 보이는데, 제시카 맥너미가 분한 소냐 블레이드는 외형적으로나 전투력으로나 더 강력한 전사의 이미지를 구현한다.

2. <툼레이더> 라라 크로프트

<툼레이더>

<툼레이더>는 북미 수익 1억달러를 넘긴 최초의 게임 원작 영화로 관객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며 게임 원작 영화상 북미 흥행 1위를 2019년까지 유지했다. 대대적인 환호와 별개로 원작의 라라 크로프트를 잘못 해석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는데, 고고학자였던 아버지의 유물로 세계를 구하려는 모험가의 면모는 어느덧 지워지고 섹슈얼한 아이콘으로 전면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게임 e스포츠 쇼 <데일리 다운로드> 진행자 엘르 오실리 우드는 대중문화 플랫폼 ‘i-D’를 통해 <툼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는 “여성 주도 게임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지만 동시에 “‘섹시 여전사’ 이미지로만 소비되면서, 결과적으로 남성 중심적 시선으로 디자인되었다”는 캐릭터 재현의 한계점을 지적했다.

3. <레지던트 이블> 앨리스와 질 발렌타인

<레지던트 이블>

<모탈 컴뱃>을 연출한 폴 앤더슨 감독의 또 다른 게임 원작 영화 <레지던트 이블>은 총 5편의 시리즈로 제작되었고, 앨리스 역의 밀라 요보비치를 상징적인 프랜차이즈 배우로 이끌어 올렸다. 인간을 좀비로 만들어 지구 종말을 촉발하는 엄브렐라 코퍼레이션과 맞서 싸우는 주인공으로 게임에서 주목받지 못한 앨리스를 선정하면서 영화의 초점을 여성 캐릭터로 옮겨왔다. 이로써 젠더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시도했다. 1편이 개봉한 2002년, 아포칼립스 영화 대부분에서 여성은 곤경에 처한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에 <레지던트 이블>의 과감한 시도는 더 빛을 발한다. 후속작 <레지던트 이블2>에 등장한 질 발렌타인(시에나 길러리)은 같은 회사에서 제작한 게임 <바이오 하자드>의 여성 캐릭터로 주인공 앨리스를 압도하는 전투력을 선보이며 두 원작의 세계를 연결했다.

4. <DOA> 티나

전세계 파이터가 승부를 가르는 ‘Dead or Alive’ 경 기를 다룬 영화 <DOA>는 원작 게임에서 레슬링 선수로 설정된 티나(제이미 프레슬리)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영화는 노출도가 높은 여성 캐릭터 묘사나 신체 일부를 부각하는 바스트 모핑 기술 등 원작 게임의 문제적 시각 장치를 필터 없이 적용하며 비판을 받았다. 극렬한 전투에 맞지 않는 집착적인 노출은 전투의 희열과 무관한 채 남성 중심적인 시선의 한계를 지속시킨다.

5.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 홀가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

야만적인 힘과 공격력을 발휘하는 ‘바바리안’은 원작 게임 <던전 앤 드래곤>에서 가장 높은 HD(TRPG,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의 용어로 레벨별로 HP 증가량을 나타내는 주사위 종류를 가리킨다)를 지닌 계층이다. 신체적, 물리적 힘의 상징인 바바리안으로 여성 캐릭터 홀가(미셸 로드리게스)를 내세운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의 각본가 조너선 골드스타인과 존 프랜시스 데일리는 미국의 대중문화지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를 통해 “여성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고 부각하기 위해 남자주인공의 위력을 의도적으로 약화시켰다”고 밝혔다. 실제로 영화에서 몸을 써 전투에 돌입하는 건 대부분 홀가의 몫이고, 싸움에 약한 에드긴(크리스 파인)이 지략가에 가까운 면모를 보이는 이유도 여기서 비롯한다. 무엇보다 홀가는 에드긴의 딸 키라(클로이 콜먼)와 깊은 정서적 교감을 나누지만 영화가 그것을 어설픈 모성애로 해석하거나 에드긴과의 연애 가능성으로 전환시키지 않아 전사의 모습을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었다.

6.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피치 공주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1985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게임이 처음 출시된 이후, 피치 공주에게 부여된 미션은 쿠파에게 납치당하고 마리오로부터 구출되길 기다리는 것이었다. 피치 공주의 존재 목적은 마리오가 성장을 거듭해야 하는 당위성에 있고 게임의 결말에선 영웅이 된 배관공에게 보상으로 기능했다. 하지만 2023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에서 재현된 피치 공주는 전혀 다르다. 버섯 왕국을 지켜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무술을 연마하고, 고급 숙련자로서 마리오를 테스트하며 관객이 주인공의 성장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게다가 먼 길을 떠나기 위해 이동수단을 선정할 때 피치 공주는 날렵한 기동성이 특장점인 바이크를 선택한다. 뛰어난 이동력을 선점함으로써 한곳에 머물며 누군가의 손길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하던 과거의 한계를 완전히 전복시키는 쾌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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