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잘 만드는 것과 강연을 잘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지만 구로사와 기요시에겐 비슷하게 능숙해 보인다. 도쿄 릿쿄대학에서 하스미 시게이코를 스승으로 만난 그는 감독이자 현장 비평가로서의 탁월한 재능을 <구로사와 기요시, 21세기의 영화를 말한다>에서 숨김없이 펼쳐 보이고, 독자는 말에서 글로 옮겨간 거장의 사유를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된다. 겨울 초입에 출간된 이 흥미진진한 책을 필두로 올 하반기를 풍성하게 채운 주목할 만한 영화 서적 10편을 모아 소개한다. 구로사와 기요시에 이어 아피찻퐁 위라세타꾼의 <태양과의 대화>는 작가가 찍은 이미지와 영상을 기반으로 오픈AI의 GPT-3와 대화한 결과물들이다. 개성 강한 목소리와 실험정신이 녹아든 감독들의 책과 함께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 마크 피셔 그리고 유운성 평론가가 쓴 번뜩이는 비평의 시선도 더했다. <민중들의 이미지: 노출된 민중들, 형상화하는 민중들>은 뤼미에르, 파솔리니, 왕빙의 영화 등을 거쳐 ‘민중의 이미지’의 역사는 물론 새로운 가능성을 사유하고, <k-펑크: 마크 피셔 선집 2004~2016 1: 책 영화 텔레비전>은 데이비드 크로넌버그의 영화, 리얼리티 TV프로그램을 넘나들며 저항적으로 쓴 블로그 글의 정수를 보여준다. <식물성의 유혹: 사진 들린 영화>는 사진적 경험을 영화가 수용한 사례들에 관해 독창적 시각으로 탐구하는 책이다.
국내 1세대 영화평론가인 김종원 평론가가 60년의 직업적 기록을 담은 <시정신과 영화의 길> <시네마 천국>의 북토크 현장도 담았다. 영화를 매개로 우정을 쌓은 네명의 작가가 <씨네21>을 위해 다시 모인 단란한 풍경도 소개한다. 눈 내리는 겨울 오후, <사랑하는 장면이 내게로 왔다>의 서이제 소설가와 이지수 번역가는 책에서 못다 한 고백을 나눈 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을 보러 떠났고, <우리는 가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로 뭉친 금정연, 정지돈 작가는 한국영화와 영화문화 이야기에서 요나스 메카스의 새 책 <수동 타자기를 위한 레퀴엠>까지 너르고 열띤 수다를 나눴다. 긴 겨울밤, 책으로 영화를 헤아리는 희열을 만끽하길 바란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영화, 책 특집이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