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특집] 완벽한 테크니션, 스테파니 수
2024-05-10
글 : 남지우 (객원기자)

한국의 젊은 여성 관객들은 유독 중국계 미국인 가족의 레즈비언 외동딸 ‘조이 웡’, 그리고 그녀가 흑화한 버전인 ‘조부 투파키’에 자신을 투사하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를 ‘K장녀’ 서사로 적극 독해한 바 있다. 신예 스테파니 수는 조이와 조부를 오가면서 대사의 톤, 태도와 정서, 메이크업과 패션을 통한 급진적인 비트 체인지로 두 얼굴의 캐릭터를 생생하게 체현하며 서사에 기여했다. 뉴욕대학교 티시예술학교와 브로드웨이를 거쳐 연기 학습의 정도를 걸어온 그는 30살에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만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수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오디션 테이프가 깜짝 공개된 날, 소셜미디어는 그의 입술에서 나오는 궤변의 ‘베이글론’(모든 것은 베이글 위에 있으니 세상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는 허무주의)에 다시 한번 매혹됐다. 대사를 통한 감정 전달이라는 연기 테크닉의 기본을 충실하게 소화하면서도 영화의 사운드트랙인 <Sucked Into a Bagel>을 불러달라는 갑작스러운 디렉팅에도 즉흥적이지만 이미 준비된 듯 청아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영상 속 고강도로 훈련받은 프로 배우이자 고급 테크니션인 그의 모습은 할리우드라는 업계가 요구하는 프로페셔널리즘의 최소 조건을 생각하게 한다.

“대학을 중퇴하고, 여자를 사귀고, 살이 찌고, 타투를 했다”는 이유로 극 중 엄마 에블린(양자경)과 갈등하던 스테파니 수는 차기작 <조이 라이드>(2023)에서 타투와 불운한 관계를 또 맺는다. 수가 연기한 중국의 유명 배우 ‘캣’은 성기에 타투를 했다는 이유로 추문의 중심에 놓인다. 할리우드의 아시안 뉴웨이브를 이끄는 동료 여배우들(애슐리 박, 셰리 콜라)과 앙상블을 이룬 수는 제작자 세스 로건과 말레이시아 여성감독 아델 림이 활짝 열어놓은 화장실 코미디의 자유를 한껏 만끽하며 B급 들판을 내달린다. 타투 추문을 겪은 캣이 끝내 다시 일어서고 감독 그레타 거윅의 캐스팅 콜을 받아 할리우드 진출의 꿈을 이루는 엔딩은 무엇이든 되고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배우 스테파니 수의 열린 미래를 예견하는 듯하다. 아시안이자 퀴어로 명명되는 그가 궤도에 오르기 위해 정도를 걸어왔다는 것은 앞으로 무모하고 대담한 선택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해왔다는 말과도 같다. 스테파니 수가 품은 미래에 대한 미친 계획들을 우리는 얼마든지 듣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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