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특집] 옆집 소년처럼, 도련님처럼, 조시 오코너
2024-05-10
글 : 정재현

2024년 봄, 두 이탈리아 출신 감독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연이어 극장가를 점령한 마성의 영국 배우가 있다. 바로 조시 오코너다. 조시 오코너는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의 <키메라>에서 단벌의 도굴꾼 아르투가 되어 떠난 연인 베니아미나(일레 야라 비아넬로)를 찾아 온 땅을 파헤쳤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루카 구아다니노의 <챌린저스>에서 헐벗고 굶주린 테니스 선수 패트릭이 되어 치정으로 얽힌 삼각관계에 잊을 수 없는 강속구를 꽂았다.

조시 오코너에 따르면 그는 학부 재학 시절 ‘귀찮게 구는 연극학도’였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 끓어넘쳐 “밝은 뮤지컬 실습에서조차 진지한 연극적 접근을 해 교수들을 진절머리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코너는 대학 졸업 후 런던에서 연극을 하며 <닥터 후> <피키 블라인더스> 등의 TV시리즈와 케네스 브래나가 연출한 영화 <신데렐라> 등에 출연했지만, 늘 ‘무도회 궁정 경비병13’ 등의 조·단역을 전전했다. 2016년 오코너는 프랜시스 리의 퀴어영화 <신의 나라>를 만난다. <신의 나라>는 초목의 풍광으로 유명한 글로스터셔주의 챌트넘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그가 감응할 수밖에 없는 영화다. 그가 분한 조니 색스비는 불우한 환경에서 알코올중독을 겪는 젊은 농부다. 어느 날 조니는 아버지가 고용한 루마니아 이민자 게오르게(알레크 세커레아누)를 만나 사랑에 빠지며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이 작품으로 2017년 영국독립영화상(BIFA)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이후 오코너의 배우 인생도 전과 다르게 펼쳐진다.

조시 오코너를 네 차례나 하이엔드 패션 하우스 로에베의 모델로 기용한 디자이너 조너선 앤더슨은 오코너의 매력을 “옆집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남자”라 꼽는다. 한데 옆집 남자로 오코너의 캐릭터를 일축하기엔, 그의 필모그래피에 로열 패밀리 ‘도련님’이 빼곡하다. 오코너에게 전세계적 유명세를 가져다준 작품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일대기를 다룬 <더 크라운> 시즌3, 4의 젊은 찰스 왕세자였고, 그의 무대 필모그래피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은 내셔널 시어터의 <로미오와 줄리엣> 속 로미오였다. 영국 윈저 왕실의 왕위 계승 서열 1위 왕세자와 이탈리아의 존엄한 귀족 가문 몬테규의 적자를 연기한 남성배우에게 발견하는 ‘옆집 남자’적 친근함은 무엇일까. 아마 앤더슨은 오코너가 엘리트 배역에 접근하는 방식에서 이같은 매력을 발견했을 것이다. 영국 노동당을 지지하는 부모 슬하에서 자라며 그 자신도 노동당원이 된 오코너는 <더 크라운>의 오디션 기간 내내 찰스를 납득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가 끝내 발견한 실마리는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운명이 결정된 남자의 허무함이다. 오코너에 따르면 찰스는 “죽지 않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남자다. 그가 결정적으로 찰스에 동화된 지점 또한 어머니가 사망해야 비로소 자신의 삶이 의미 있어진다는 걸 찰스가 깨닫는 순간이다. 끝내 오코너는 찰스를 인간적으로 연민했다. 오코너는 찰스가 자신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여왕(올리비아 콜먼)에게 억압당하지 않고 온전히 발화하는 장면이 단 한순간이라도 존재하길 연출자에게 간청했다고 한다(물론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세계 시청자들은 실제 역사 속 찰스 3세 국왕의 이모저모와 오코너의 찰스를 끝없이 비교했고 “조시 오코너가 찰스를 미화한다”, “불쌍한 찰스의 삶이 그를 통해 이해가 간다”라며 오코너의 찰스에게 항복했다. 자신이 이해한 캐릭터의 성격을 관객에게 직관적으로 납득시킬 줄 아는 배우는 이 연기로 2021년 에미상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조시 오코너는 어린 시절부터 “산이 내게로 오지 않으면 내가 산으로 간다” 주의의 비범한 소년이었다. 오코너는 학창 시절 모두가 반장 등의 요직을 맡고 싶어 할 때 이미 스스로가 타의 모범이 되는 데 자질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개교 이래 한번도 없었던 직책인 ‘분실물 보관소 지킴이’를 발명해 자기만의 길을 자처했다고 한다. 이같은 면모는 좋은 연기와 작품을 알아보는 배우로서의 태도와도 닿아 있다. 연기자를 꿈꾸던 시절 오코너는 헬레나 본햄 카터의 열성 팬이었다. 그래서 오코너는 본햄 카터가 연기했으면 하는 배역의 목록을 스크랩북으로 만들어 보냈다. 또 오코너는 배우 데뷔 이후 알리체 로르바케르의 <행복한 라짜로>에 깊이 매료된다. 그는 로르바케르의 주소도 몰랐지만 수취인 불명 편지를 주소 미상의 이탈리아로 대뜸 보냈다. 놀랍게도 10대의 오코너는 본햄 카터에게 답신을 받았고, 당연히 20대의 오코너는 로르바케르에게 답신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2024년 현재, 오코너는 본햄 카터와 <더 크라운>에서, 로르바케르와 <키메라>에서 동료로 만나게 된다.

전세계적 주목을 받으며 차기작에서 레아 세두, 크리스틴 스튜어트, 폴 메스컬 등의 상대역을 꿰찬 지금, 오코너가 꾸는 꿈은 두 가지다. 그는 고향인 글로스터셔주로 돌아가 정원 텃밭에 체리 나무와 채소를 심고 자신만의 도자기 공방을 만들길 바란다. 또 비수도권에 사는 지역민들의 문화 접근성 확대를 위한 연극 유랑극단을 만들고자 한다. 오코너는 수도권에 쏠린 문화 편중을 한탄하며 “부자가 되면 바보가 되니까 부자가 되지 않겠다”라고 말한다. 그가 왜 <행복한 라짜로>를 사랑하는지 알 것만 같다.

“나는 한때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축구를 충분히 잘하지 못한다는 걸 곧 깨달았다. 그런데 연기는 괜찮은 것 같다!”

<신의 나라>로 BIFA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직후 이뤄진 조시 오코너의 인터뷰 일부다. 왕족과 농부를 천연덕스럽게 오가는 그의 현재를 보고 있으면 확실히 그의 재능은 축구보다 연기에 있다. 오코너의 팬이라면 당시 남우주연상 수상 영상을 꼭 보길 권한다. 상을 받는 스스로가 겸연쩍어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모든 진심을 고백하는 그의 모습은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로 오스카 연단에 올라 만천하에 자신의 사랑스러움을 전파한 올리비아 콜먼의 수상 소감을 떠오르게 한다. 마침 오코너와 콜먼은 <더 크라운> <마더링 선데이> <레미제라블>에서 긴밀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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