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비극적이면서도 괴기하고 우아한, <서브스턴스>로 더 흥미롭게 만드는 세 가지
2024-12-12
글 : 정재현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서브스턴스>는 영화만큼 영화 바깥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작품이다. <사랑과 영혼> 이후 34년 만에 최고의 글로벌 흥행작을 내놓은 배우 데미 무어, 첫 대형 배급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스트리밍 사이트 MUBI, 눈을 뗄 수 없는 강렬한 특수효과까지. <서브스턴스>를 둘러싼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정리해보았다.

빛나는 그 이름, 데미 무어

냉정히 말해 21세기의 데미 무어의 출연작 대부분은 졸작이었다. 또한 연기보다 타블로이드지에 오르내리는 가십으로 주목받았다. 무어는 매니저로부터 “우선 아무 말 안 할 테니 이 시나리오를 읽어보세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서브스턴스>를 만났다. 모두 영화 속 엘리자베스는 ‘데미 무어의 커리어에 대한 은유’라고 평했고 노출 연기와 특수분장 등 60대에 접어든 배우가 감당해야 할 몫도 많았다. 무어는 엘리자베스가 마주하는 ‘업계의 거절’과 이에서 비롯한 ‘스스로에게 가하는 폭력’을 작품으로부터 읽어낸 후 출연에 응했다. 전성기부터 지금까지 그가 숱하게 할리우드의 성차별적 시선과 맞서온 경험 역시 엘리자베스를 구현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무어는 <어 퓨 굿 맨> 촬영 당시 제작사의 임원으로부터 “조앤 소령이 다니엘 중위(톰 크루즈)와 잘 게 아니라면 여자가 군인일 필요가 있냐?”는 무례를 정면 돌파했고, ‘왜 여성은 능력이 있어도 특수부대에 복무할 수 없나?’라는 의문을 품고 <지. 아이. 제인>의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가디언>과의 인터뷰에 의하면 무어는 <서브스턴스> 현장에서 마거릿 퀄리가 보인 태도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젊은 여성배우가 촬영 현장에서 자신의 요구사항을 분명히 관철하면서도 미안해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 대단하다고 느꼈다. 더이상 여성의 프로페셔널리즘을 ‘미친X’로 치부하지 않는 세상인 것이다.” 무어는 40년 넘게 할리우드의 배우로 살며 겪은 투쟁과 방황의 시간을 맹렬히 배역에 투신했고, 칸영화제 이후 수많은 외신은 그의 연기에 찬사를 보냈다. 이르지만 ‘호러영화에 인색한 아카데미가 데미 무어를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릴 것인가?’를 두고 호사가들의 관심까지 한몸에 받는 지금, 데미 무어가 엘리자베스의 성씨처럼 다시 반짝이고(Sparkle) 있다.

MUBI의 첫 대규모 배급작

<서브스턴스>는 스트리밍서비스 MUBI의 첫 대형 배급작이다. 그리고 2024년 12월 현재 MUBI의 배급작 중 최대 흥행 기록을 기록했다. <서브스턴스>는 원래 유니버설 픽처스 산하의 워킹 타이틀에서 제작된 영화다. 하지만 코랄리 파르자 감독이 제작사가 최종 편집권을 가져가는 것을 거부하자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배급권을 포기했다. 결국 MUBI가 칸영화제 이전에 1250만달러에 북미를 비롯해 영국, 독일, 튀르키예, 인도 등의 배급권을 획득했다. <서브스턴스>는 장르영화 중 이례적으로 미국과 캐나다의 1949개 극장에서 대규모 개봉하는 전략을 택했고 개봉 국가마다 기록을 갈아치웠다. 개봉 10일 만에 1480만달러의 글로벌 박스오피스 성적을 기록했고 MUBI에 공개된 이후에도 조회수와 구독자 증가율 측면에서 MUBI의 새 기록을 썼다. 이는 2024년 초 MUBI가 MGM 출신의 마크 복서를 미국 배급 책임자로 발탁한 후 처음으로 시행한 대형 배급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MUBI의 공격적인 장르영화 배급이 지난 몇년간 A24나 네온이 일으킨 파란만큼의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화룡점정의 특수분장

<서브스턴스>의 후반에 이르면 새로운 크리처 ‘엘리자수’가 등장한다.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서브스턴스>의 시나리오 집필 당시 데이비드 린치의 <엘리펀트 맨> 속 안면 기형 환자 조셉(존 허트)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엘리펀트 맨> 속 조셉처럼, 엘리자수 또한 ‘괴물이지만 안아주고 싶은’ 존재로 그리려 했다”는 것이 감독의 변이다. 파르자 감독은 <왕좌의 게임>을 작업한 메이크업아티스트 피에르 올리비에 페르생과 함께 전에 없던 ‘여성적’ 괴물을 만들기 위해 분투했다. 두 예술가가 합의한 괴물의 컨셉은 ‘발레 슈즈를 신은 코끼리’. 페르생에 따르면 “비극적이면서도 괴기하고 동시에 우아한” 영화의 미장센과 어울리는 괴물을 직접 만들기 위해 넉달간 밤샘 회의를 거듭했다. 페르생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를 비롯해 해부학 지식에 능통한 고전 예술가부터 현대 리얼리즘 조각가인 론 뮤엑의 작품으로부터 해답을 찾았고, 존 카펜터의 <괴물>과 토니 스콧의 <헝거> 등을 참고하며 엘리자수의 외양을 만들어갔다. 또 데미 무어와 마거릿 퀄리가 직접 입고 연기할 수 있는 라텍스 슈트를 만들고, 실리콘 특수분장을 배우의 얼굴에 붙여 배우들이 이목구비 운용의 제한 없이 충실히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왔다. 파르자 감독이 페르생에게 거듭 주지한 대원칙은 ‘절대 VFX는 없다’였다. VFX로는 구현할 수 없는 강렬한 혐오감이 실물 제작 특수분장에만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5개의 머리, 두벌의 괴물 슈트와 현장에서 ‘골룸’이라 불린 엘리자베스의 머리 몰드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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