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포커스] “잘 죽고 내일 보자!”… 미리 본 <미키 17> 푸티지 시사회, <미키 17> 봉준호 감독, 배우 로버트 패틴슨 내한 기자회견
2025-01-31
글 : 이자연
사진 : 최성열

소설 <미키 7>을 원작으로 한 봉준호 감독 신작 <미키 17>이 20분가량의 푸티지 영상을 공개하며 비밀을 풀었다. 주인공 미키(로버트 패틴슨)는 지구에서 마카롱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 호기로운 출발과 달리 갑작스런 운영난에 거금의 빚을 떠안은 미키는 죽어서까지 자신을 쫓아오겠다는 빚쟁이를 피하기 위해 외계 행성으로 이민을 결심한다. 하지만 웬걸, 자신과 비슷한 처지로 지구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넘쳐났고 미키는 이들과의 경쟁에 어쩐지 자신이 없다. 따라서 그가 충동적으로 ‘익스펜더블’ 포지션에 자원한 건 일견 자연스러운 결정처럼 보인다. 익스펜더블이란 말 그대로 소모품, ‘소모 인간’이 되는 것이다. 외계 행성을 탐구하는 인류를 위해 위험한 일을 대신 수행한 후 목숨을 잃으면 다시 태어난다(정확히는 종이처럼 다시 ‘출력된다’). 죽었다 태어날 때마다 새로운 신체에 과거 기억을 입력하고 넘버를 붙인다. 그러니 미키 17은 17번째 다시 태어난 미키인 셈이다.

그가 17번 죽는 이유

이날 기자회견에는 봉준호 감독과 로버트 패틴슨 배우가 함께했다. 로버트 패틴슨은 차기작 촬영으로 한창 바쁘지만 <미키 17>과 봉준호 감독, 한국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먼저 내한을 적극적으로 제안했다. <미키 17>에는 어떤 고민과 갈증이 담겨 있을까. 전작 <괴물> <마더> <설국열차> <기생충> 등을 통해 계층 문제를 다뤄온 봉준호 감독은 이번에도 노동계급의 시선으로 세계관을 구축했다. 미키는 익스펜더블이라는 제도로 목숨을 보전받지만 동시에 보험이나 가족 같은 사회적 제도에 소속되지 못한다. 이에 봉준호 감독은 미키의 눈으로 관찰되는 비인간적인 사회 풍경과 그가 불러일으키는 연민이 어디서 출발하는지 짚어보고자 했다. “미키는 정말 불쌍하다. 그렇다면 왜 불쌍할까. 이 친구의 직업은 죽는 것이다. 늘 죽을 가능성이 높은 임무를 부여받고 딱 죽기 좋은 현장에서 계속 죽어야만 한다. <미키 17>도 이미 17번이나 죽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죽고나면 사무실에서 서류 뽑듯 그렇게 출력된다. 이 자체가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가장 극한 처지에서, 가장 극한 직업을 가진 노동자계급으로서 미키의 이야기는 계급 문제를 자연스럽게 건들 수밖에 없다. 이번 영화가 거창하게 계급간의 투쟁을 다룬다고 정치적인 깃발을 들고 있진 않지만 미키가 직면한 사회의 모습, 그 가운데 성장해나가는 측면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7번이나 죽어야 하는 미키를 두고 로버트 패틴슨은 자기만의 해석을 더했다. “처음 극본을 읽었을 때 정말 미치도록 빨리, 쉽게 읽혔다. 미키는 정말 심플하다. 하지만 미키의 이면, 그의 생각과 결정을 돌이켜보면 정말 복잡하다. 미키는 자신감이 없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다. 하루는 내가 키웠던 강아지를 떠올렸다. 배변을 하거나 나쁜 버릇이 있으면 훈련을 시켜야 하는데 그러면 뒤로 누우면서 그렇게 귀여운 척을 한다. 그게 미키랑 너무 닮아 보였다. 어떤 잘못을 해도 벌을 내리기 어렵게 한다. 벌을 내려도 바뀌지 않고. 17번을 죽어야 비로소 자신의 삶의 의미를 깨닫는 이 남자가 이제 막 다르게 살아보려고 고민하는 지점을 잘 담아내고 싶었다.”

봉준호만의 각색

로버트 패틴슨, 봉준호(왼쪽부터).

원작과 다른 지점은 무엇일까. 봉준호 감독이 더한 각색의 면모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첫 번째, 원작 <미키 7>보다 영화 속 미키가 열번이나 더 죽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곱번은 충분하지 않았다. (웃음) 죽는 게 직업이라면 일상적으로 더 다양한 죽음을 맞닥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삶이 고단한 노동자 느낌을 더 살리고 싶었다.” 두 번째, 역사가가 아닌 마카롱 자영업자로 설정이 바뀌었다. “원작에서 미키는 역사 선생님으로 지적인 얘기를 많이 한다. 또 소설이 사이파이(Sci-fi) 중에서도 과학기술 설명이 주요한 하드 사이파이 장르지만 내가 과학에 그렇게 큰 관심이 없다 보니 그 부분을 많이 줄였다. (웃음) 대신 노동자로서의 땀냄새 나는 인간적인 이야기로 채웠다. 미키의 설정이 바뀐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친구가 외롭고 가여워 보이길 바랐다. 과거사를 더 단순하게, 그러나 마음이 가도록 만들었다.”

봉준호 세계관을 함께한 로버트 패틴슨은 그와의 여정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전세계에서 봉준호 감독과 같은 위치에 있는 영화감독은 4~5명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 배우가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감독이다. 그의 영화는 늘 신선하고 기묘하지만 이상하게도 말이 된다. 개인의 감정선을 매우 잘 드러내기 때문인 것 같다. 얼마 전에 <살인의 추억>을 다시 봤는데 정말 말도 안됐다. 심각함과 유머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내가 장르를 구분하지 않는 영화를 너무 오랫동안 기다려왔다는 걸 봉준호 감독을 만나 깨달았다.” 그리고 답변이 끝나자마자 봉준호 감독은 “전세계에서 나와 같은 위치의 감독 4~5명은 누구냐”고 물었고, 로버트 패틴슨은 “나도 커리어를 이어나가야 해서… 그냥 항상 바뀐다. (웃음)”고 답했다.

최초의 러브 스토리

<미키 17>도 진통을 겪었다. 개봉일을 여러 차례 번복했고 이에 따라 워너브러더스사와 최종본에 대한 이견이 있다는 풍문이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은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사실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내 영화 중에 개봉날짜가 변경되지 않은 작품은 없다. 아무래도 이번 작품은 유난히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아서 더 크게 퍼진 듯하다. 미국 할리우드 현지 문제도 단연 연관이 있다. 배우조합 파업 이후 많은 할리우드영화의 개봉일이 변경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편집이나 재촬영과 같은 복잡한 일들은 없었다. 처음부터 디렉터스 파이널컷으로 계약된 영화였고 창작자의 컨트롤을 전면적으로 존중해주는 분위기였다.”

특히 <미키 17>에서는 봉준호 감독 작품 최초로 러브 스토리가 담긴다. “나샤라는 여자주인공과 미키 사이의 로맨스가 있다. 인간이 죽고 다시 출력되는 와중에. (웃음) 멜로라고 부르기는 조금 뻔뻔하지만 그사이에도 사랑이 있다. 정재일 음악감독이 작곡한 멋진 사랑의 테마 음악도 기대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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