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린치가 세상을 떠난 날. 자택에서 데이비드 린치 추모의 밤을 보낸 이경미 감독이 <씨네21> 앞으로 추도사를 보내왔다. 이경미 감독의 애통한 마음을 최대한 필자의 문체를 살려 싣는다. 린치와 협업한 영화인들이 남긴 메시지도 짧게 전한다.

이경미 감독(영화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 연출) 데이비드 린치, 데이비드 크로넌버그, 데이비드 핀처도 있지만 내 인생의 첫 데이비드는 만리장성을 통과하고 자유의 여신상을 사라지게 만든 환상의 마술사 데이비드 코퍼필드다. 마술사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그전에 숟가락을 구부렸던 유리겔라도 있지만 오늘만큼은 데이비드 이야기만 하고 싶다.
나는 코퍼필드의 충격적인 마술을 접한 뒤로부터 한참이 지나 남들보다 늦게 영화 공부를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3인의 데이비드가 연출한 작품을 한꺼번에 접할 수밖에 없는, 대혼돈을 겪고 말았다. 참고로 나는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놀랍도록 기억하지 못한다. 핀처는 비교적 식별하기 쉬웠지만 솔직히 어렸을 땐 린치와 크로넌버그는 조금 헷갈렸다. 그래서 나는 린치를 구별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으로 환상의 마술사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좀 이용했다.
그러니까 바로 ‘마술사’ .
<로스트 하이웨이>를 처음 봤던 때를 기억한다. 금지된 환각제에 취한 것 같은, 굉장히 이상하고 달콤한 기분에 휩싸여서 이런 내 마음을 누가 이해해줄까 싶었고 그 뒤로 <트윈 픽스>와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몇번이나 다시 봤는지 모르겠다. 지난해에는 린치가 구멍난 바지를 수선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동영상을 만들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특별한 기술도 아닌 방법을 ‘짜잔’ 하며 되뇌는 친절한 모습을 보며 부디 그가 건강하게 오래 살아주기를 빌었다.
그의 부고를 접한 날, 나는 남편과 함께 <엘리펀트 맨>을 다시 봤다. 영화를 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엘리펀트 맨>이 슬픈 이야기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이 정도로 슬펐던가 싶을 정도로 많이 울었다.
<엘리펀트 맨>의 마지막 대사다.
“Nothing will die. The stream flows, the wind blows, the cloud fleets, the heart beats. Nothing will die.”(아무것도 죽지 않으리. 시내는 흐르고, 바람은 불고, 구름은 흘러가고, 심장은 뛴다. 아무것도 죽지 않으리)
참 이상하게도 데이비드 린치 감독은 죽었지만 영원히 사라진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지금쯤 드디어, 마침내, 바로 거기에. 분명히 도착해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함께 작업한 이들이 추억하는 데이비드 린치
배우 카일 매클라클런(<블루 벨벳> <트윈 픽스> 등 출연)
“신비롭고 직관적인 사람에게서 창의의 바다가용솟음쳤다. 그는 정답이 아닌 질문만이 우리를우리답게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걸 이해하는아티스트다. 세계는 위대한 예술가를 잃었지만, 나는 나의 미래를 꿈꾸어주고 스스상상할 수 없었던 세계를 여행하게 만들어준소중한 친구를 잃었다.”
배우 나오미 와츠(<멀홀랜드 드라이브> <트윈 픽스> 출연)
“10년이 넘도록 오디션에 낙방해 배우를 그만두려 할 때데이비드를 만났다. 스스로를 잃어가 세상으로부터나를 숨겼던 그때, 데이비드는 어떻게 나를 발견한것일까? 그는 정말 다른 세계에 사는 듯한 사람이었다.그가 만든 특별한 세계의 일원이 될 수 있어행운이었다. 잘 가요, 내 친구 데이비드.당신의 모든 것에 감사해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파벨만스>)
“세상은 독창적이고 유일무이한 그의 목소리를 그리워할 것이다. 린치의 영화는 이미 시간의 시험을견뎌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