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초현실적 궤적, 데이비드 린치의 대표작 일람
2025-02-06
글 : 이우빈

데이비드 린치가 세상에 내놓은 수많은 작업과 영감들 속에서 그를 대표하는 10여편의 작품을 소개한다. 그가 전세계의 영화 팬들에게 선물했던 초현실적 궤적을 다시 살피며 그리움을 달래본다.

1977 <이레이저 헤드>

<이레이저 헤드>

데이비드 린치가 빚을 지면서까지 만든 인디펜던트 영화다. 2만달러의 제작비로 북미에서 장기상영하여 700만달러의 수익을 기록했다. 황량한 미상의 도시에서 사는 청년 헨리(잭 낸스)가 메리(샬럿 스튜어트)와의 결혼과 출산을 이어가며 겪는 초현실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물들의 살인 충동을 종용하는 환상의 존재 ‘라디에이터 속의 여인’은 이후 <트윈 픽스> 시리즈의 밥처럼 데이비드 린치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주요 모티프가 된다.

1980 <엘리펀트 맨>

다발성 신경섬유종증으로 인해 남들과 다른 외형을 가졌던 실존 인물 조셉 메릭의 삶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엘리펀트 맨’으로 불린 메릭은 서커스단의 구경거리로 비극적인 일상을 살아간다. <이레이저 헤드>가 몽상적이고 기괴하며 조악한 이미지로 추함의 이미지를 전면에 드러냈다면, <엘리펀트 맨>은 인간이 지닌 ‘추함’의 잣대를 현실의 문제로 끌고 와 담담하게 그려낸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다수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면서 데이비드 린치는 양지의 연출자로 발돋움했다.

1984 <사구>(듄)

<사구>(듄)

데이비드 린치가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손잡고 만든 SF 대작으로 최근 드니 빌뇌브 감독이 만든 <듄>과 같은 프랭크 허버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우주의 주요 자원인 스파이스를 두고 싸우는 각종 세력의 다툼을 그린다. 데이비드 린치 특유의 아날로그적인 비주얼라이징이 지금에 와선 외려 독특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이후 데이비드 린치의 페르소나가 된 배우 카일 매클라클런과 처음 협업한 작품이기도 하다.

1986 <블루 벨벳>

20세기 후반 데이비드 린치 시대의 포문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표작 중 하나다. 청년 제프리(카일 매클란클런)가 고향에 돌아와 미지의 ‘잘린 귀’를 마주하며 일어나는 이야기로, 미로 같은 서사와 기이할 정도로 과감한 성적·폭력적 메타포들, 그리고 이러한 형식미를 통해 말하는 미국이란 국가의 내적 해부 등 데이비드 린치란 영화 작가의 다양한 목소리를 겹쳐냈다.

1990 <광란의 사랑>

데이비드 린치에게 제43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긴 작품이다. 커플 세일러(니컬러스 케이지)와 루라(로라 던)가 사랑을 위해 차를 타고 도피하는 로드무비의 골자를 띤다. 그러나 그 속엔 아름다운 청춘의 애정 행각보다 인간들의 추악하고 과장된 폭력과 변태적인 면모가 강조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폭력의 광풍 후 찾아오는 나른함의 감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지금 봐도 무척) 괴상한 영화다.

1990~1991 <트윈 픽스> 시즌1~2

데이비드 린치를 설명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그의 걸작일 것이다. TV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수많은 영화 마니아의 절대적 지지를 이끌었다. 트윈 픽스라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매개로 한 꿈과 환상의 교차, 치정극과 하이틴 로맨스의 결합, 수사극과 일상적 소프오페라의 배합 등을 통해 전무후무한 결과물, 어떠한 덩어리라고 표현해도 적합할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작품 속에 종종 등장하며 빨간 커튼으로 둘러싸인 초현실적 공간, 일명 ‘레드 룸’은 데이비드 린치를 상징하는 대표적 이미지로 남게 됐다.

1997 <로스트 하이웨이>

<로스트 하이웨이>

<트윈 픽스>와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중간에서 데이비드 린치식의 몽상과 꿈 모티프의 활용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색소폰 연주자 프레드(빌 풀먼)와 아내 르네(퍼트리샤 아켓)의 집에 수상한 비디오테이프가 도착하고, 이내 프레드는 아내를 살해했단 죄목으로 잡혀간다. 영화의 서사를 말로 풀어내기 어려울 만큼 난삽한 플롯의 구성과 다면적 진실을 품은 이야기의 가능성을 부각하며 평단의 호불호를 부르기도 했다.

1999 <스트레이트 스토리>

어쩌면 데이비드 린치의 가장 돌출적인 영화라고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의 다른 작품보다 선형적인 서사와 뚜렷한 드라마투르기를 보여주며, 노년의 남자 앨빈(리처드 판즈워스)이 쓰러졌단 형(해리 딘 스탠턴)을 만나기 위해서 잔디 깎는 기계를 타고 미국을 횡단하는 실화 기반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전형적으로 보이는 서사 속에서도 종종 튕기듯 발현되는 데이비드 린치의 기이한 리듬을 마주하는 것이 또 다른 즐거움을 주는 영화다.

2001 <멀홀랜드 드라이브>

명실상부 데이비드 린치의 대표작으로 2016년 가 선정한 21세기의 위대한 영화 100편 중 1위, <카이에 뒤 시네마> 2000년대 결산 1위 등을 차지하며 전세계 영화 입문자들에게 통과의례처럼 남게 된 걸작이다. 할리우드의 기이한 욕망을 정서적 배경으로 하여 삼삼오오 모이는 리타(로라 해링), 베티(나오미 와츠) 등이 각자의 꿈과 현실을 오고 가면서 관객의 이성적 판단을 혼란에 빠트리는 작품이다. 시간의 비선형성과 픽션적 가능성의 가짓수를 한정하지 않는 모호함의 미학을 진정으로 마주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2006 <인랜드 엠파이어>

데이비드 린치의 마지막 장편영화가 된 작품이다. 소니사의 일반용 캠코더 기종을 사용하여 경량화된 작업 과정을 거친 디지털영화로, 21세기 디지털 영화미학의 기점이 된 영화로 여겨진다. 할리우드의 배우 니키(로라 던)가 새로운 영화에 캐스팅되면서 마주하는 기이한 순간적 사건들의 연속으로 이어지며, 데이비드 린치가 선택한 즉흥적인 시각성이 통상적인 영화와는 다른 이질적인 감각을 안겨다준다.

2017 <트윈 픽스: 더 리턴> 시즌3

<트윈 픽스: 더 리턴>

데이비드 린치의 대표작이었던 <트윈 픽스>의 세 번째 시즌으로 전편에 이은 25년 뒤의 세계관을 그려내며 주인공 데일 쿠퍼(카일 매클라클런) 등 전작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가 지금껏 보여줬던 스타일을 한데 모두 끌어온 듯한 향수와 부피감을 자아낸다. 실질적으론 데이비드 린치의 유작이라 봐도 무방하며, 칸영화제 초청 및 <카이에 뒤 시네마> 2010년대 결산 1위를 차지하는 등 거장의 마지막에 걸맞은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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