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5_다큐멘터리 : 북한의 일상부터 패스트푸드 실험까지 다큐멘터리 추천작 5편
차가운 세상에 대한 따뜻한 관찰거짓말이 힘을 갖는 세상이라지만 다큐멘터리는 아직 할말이 많다. 보여줄 것이 너무 많다. 여기 이 영화들은 그 가장 원초적인 진실을 믿는 관객을 감동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
어떤 나라 A State of Mind 감독 대니얼 고든 l 영국 l 2004년 l 93분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조직적인 매스게임을 펼치는 나라로 꼽힌다. 각종 기념일에 맞춰 펼치는 매스게임은 정치적 내용을 차치한다면, 체조와 음악 등 각종 예술의 오묘한 집합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을 것. 평양에 사는 두 여중생이 초대형 매스게임을 준비하는 모습을 담은 다큐 <어떤 나라>가 흥미로운 것은 단지 오묘한 북한의 매스게임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영화가 우리의 눈길을 붙잡는 진짜 이유는 박현선과 김성연이라는 두 여중생과 그 가족의 일상생활이 별다른 여과없이 속속 드러나기 때문이다. 2003년 2월부터 두 여자아이의 공연일인 7월27일 ‘전승기념일’까지 6개월 동안 카메라는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뒤쫓으며 평양에 사는 중산층들의 삶을 낱낱이 보여준다. 인터뷰 때마다 “장군님…”이 먼저 튀어나오는 대목은 많이 식상하지만, 시시때때로 전기가 끊기거나 가상 대피훈련을 하는 모습은 호기심을 넘어 북한의 현실을 짐작게 한다. 특히 집안 어른들이 물자부족을 시인하거나 시장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장면은 북한사회의 민감하고 내밀한 고민을 엿보게 한다. 제작진이 북한 당국의 특별한 제재를 받지 않았던 것은 1966년 런던월드컵 당시 북한 축구팀 이야기를 그린 고든 감독의 전작 <일생일대의 승부> 덕이었다고 한다.
알리에게 보내는 편지 Letters to Ali 감독 클라라 로 l 호주 l 2004년 l 110분
트리시와 그녀의 남편, 그리고 4명의 아이들이 자동차를 타고 호주 대륙을 종단한다. 포트 헤드랜드 난민수용소에 감금된 아프가니스탄 소년 알리를 만나기 위해서다. 해 저무는 사막과 야생동물이 주인인 초원을 가로지르는 이 가족 여행은 먼지가 내려앉은 차 위에 쓰여진 아이들의 낙서, ‘Free the Kids’를 발견할 때나, 18개월 동안 편지를 주고받은 알리를 가족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마주할 순간 특별하게 다가온다. 캠코더를 들고 이들을 쫓은 감독은 풍요로운 땅, 호주의 아름다운 자연 뒤의 비인간적인 난민제도를 고발한다. 차가운 제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개인의 진심뿐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타네이션 Tarnation 감독 조너선 코예트 l 미국 l 2004년 l 88분
배우이자 뮤지션인 30살의 조너선 코예트가 단돈 200달러로 제작한 초저예산 다큐멘터리영화. 어머니가 약물중독으로 죽어간다는 전화를 받은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수집해온 사진 스냅과 슈퍼8mm로 찍은 홈비디오, 심지어는 자동응답기의 메모들까지 모아서 은밀한 가족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타네이션>은 가정폭력과 약물중독으로 고통받는 미국 노동계급의 삶에 대한 리포트인 동시에 자기성찰적인 영화적 고백이다. 흥미로운 점은 앤디 워홀과 MTV의 영향을 받은 아방가르드한 팝아트적 감수성. 이러한 형식적 실험은 동성애자 언더그라운드 음악가인 감독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구스 반 산트에 의해 발견되어 선댄스와 칸영화제에 출품된 뒷이야기도 흥미롭다.
슈퍼 사이즈 미 Super Size Me 감독 모건 스펄록 l 미국 l 2003년 l 98분
미국은 슈퍼 사이즈의 나라다. 커다란 자동차, 커다란 건물, 그리고 커다란 사람들. 모건 스펄록은 미국인들은 왜 이렇게 뚱뚱한 것일까를 알아내기 위해 그 자신을 실험 도구로 쓰기로 결심했다. 그는 30일 동안 맥도널드 음식만, 혹시 종업원이 크기를 물어본다면 슈퍼 사이즈 메뉴만, 먹고 마시면서 지낸다. 실험을 시작할 무렵 날씬하고 튼튼했던 스펄록은 급속도로 살이 찌고 허약해진다. 스펄록의 변화와 함께 학교급식 실태 조사, 인터뷰, 반맥도널드 광고 등을 조합해 재미를 주는 다큐멘터리.
더라무 Delamu 감독 티엔주앙주앙 l 중국 l 2004년 l 110분
중국과 티베트의 접경지역. 촬영감독 출신 제5세대 감독 티엔주앙주앙은 그곳에서 여섯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열다섯명의 가족, 지나간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부인하는 젊은 라마승, 부지런한 사람은 잘살고 게으른 사람이 가난해지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을 회상하는 104살 노파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다. 세심하게 촬영·구성된 인터뷰 사이로, 지평선 위를 줄지어 걷는 보부상의 행렬과 병풍 같은 산, 그리고 고즈넉한 마을에 노을지는 풍경이 자리한다. 자연과 인간, 개인과 역사가 포개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