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소개할 영화는 실상 <올모스트 페이머스>라는 영화가 아니다. 그건 이 영화를 '극장용'으로 편집한 또 다른 영화일 뿐이다. 물론 2001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이 극장용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그 자체로도 좋은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의 DVD 타이틀에 수록된 또 다른 버전, 이름하여 '언타이틀드'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는 또 다른 편집판은 영화에서 편집이 얼마나 영화의 내용을 바꿀 수 있는지, 심지어는 감독이 말하고자했던 것마저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을만하다.
영화관에서 보여준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매우 따뜻한 성장영화였다. 지나칠 정도로 극성인 어머니 때문에 남들보다 몇 살이나 어린 나이에 입학한 윌리엄은 누나가 집을 떠나면서 남겨놓은 음악을 듣고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되고, 그의 눈을 눈여겨본 롤링스톤즈의 제안을 받아 당시 한창 뜨기 시작한 밴드 '스틸워터'의 투어에 동행하게 된다.
스틸워터와 함께하면서 그는 이상적으로만 생각했던 음악 산업의 이면을 목격할 뿐만 아니라, 스틸워터의 그루피이자 밴드의 리더 러셀의 애인이기도 한 페니레인을 통해 처음으로 이성에 눈뜨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윌리엄은 '예상한대로' 한명의 훌륭한 리뷰어로 자라게 되고, 자신이 모르던 인생의 단면들에 대해 알게 된다. 모든 사람들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고, 윌리엄은 영화에서 계속 이야기하는 '리얼월드', 바로 실제 뮤직 비즈니스 속에서 자신을 성장시킨다.
그러나 극장판에 비해 무려 42분이나 늘어난 '언타이틀드'는 그 리월얼드가 그렇게 한 아이를 따뜻하게 성장시킬 수 있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갈등이 폭발하는 순간에도 갈등이 해결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는다. 그러나 '언타이틀드'에는 이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갈등을 겪던 밴드의 리더와 보컬리스트는 화해의 악수를 나누지만, '언타이틀드'에서는 그 뒤에 그들 사이에 있던 물잔이 갑자기 엎질러지면서 그들의 사이가 그렇게 좋게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암시를 하기도 하고, 페니레인이 스틸워터의 투어에서 쫓겨나는 과정은 극장용에서는 그저 말 한마디 전달하는 것 정도로 마무리되어 그 충격이 덜하지만, '언타이틀드'에서는 페니레인이 스틸워터와 생일파티를 신나게 즐긴 바로 직후 그 말이 전달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뮤직 비즈니스의 냉정함은 더해지고, 그 사이에 팬과 평론가, 뮤지션은 모두 상처 입는다. 그래서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따뜻한 성장영화로 마무리될 수 있지만, '언타이틀드'의 이야기는 훨씬 더 풍부하고, 실제 뮤직비즈니스의 복잡한 문제들을 모두 담고 있다. 이는 특히 윌리엄의 조언자역할을 하는 평론가 레스터 뱅스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올모스트 페이머스>에서 레스터 뱅스는 윌리엄에게 쉴 새 없이 음악계에 대한 비난을 퍼부으며 평론가로서 주의해야할 점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이것들은 뮤직 비즈니스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일 뿐 이후의 내용과 구체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언타이틀드'에서 레스터 뱅스의 말들은 모두 현실이 된다. 이는 '언타이틀드'에만 수록된 스틸워터 매니저의 멘트를 통해 함축적으로 드러난다. <올모스트 페이머스>에서는 윌리엄이 밴드에 대해 정직하게 쓴 글에 대해 매니저와 밴드 멤버들이 서로 상의한 끝에 그 기사를 부인하는 것 정도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언타이틀드'에서는 그 이유가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건 전쟁이야... / 우리 목표부터 다시 보자. 티셔츠와 해외시장과 재계약을 생각해. 행복과 꿈의 실현을 생각해. 돈과 인기와 비틀즈를 만나고 하나로 묶어 생각해. 모든 건 신비감에 달렸어../ 가기 전에 신비감에 대해 하나만 가르쳐주지. 많은걸 밝히지 않는 거야... / (한쪽은 라이터를 올려놓고 한쪽은 주먹을 쥐며) 하나만 고르라면 어떤 걸 가질래? 어떤 걸 선택할래? 이 손에 있는 게 보이지 않는 한 항상 더 궁금해 하지(펼쳐 보인 손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즉, 뮤직비즈니스는 결국 모든 '가짜'를 '진짜'로 보이게 하는 사업이고, 신비감의 유지는 음악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윌리엄에 대한 밴드의 배신은 단지 치부가 드러나는 문제 이전에, 뮤직 비즈니스의 대원칙을 지킬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문제다. 이를 통해 <올모스트 페이머스>에서 그나마 유지했던 음악과 사람에 대한 진실됨은, 그것마저 뮤직비즈니스를 위한 하나의 수단임을 고백하게 된다.
그래서 '언타이틀드'는 그 자체로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현실을 보여준다. 러닝타임을 줄이고 관객이 더욱 따뜻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극장용 버전과, 감독이 하고 싶은 얘기를 모두 풀어놓은 DVD 버전. 엔터테인먼트업계는 가끔, 아니 자주 아티스트에게 수많은 타협을 요구한다. 그들이 자신의 온전한 이상을 풀어놓을 수 있을 때는, 그것이 제작자들에게 돈을 안겨줄 때뿐이다. 카메론 크로우 감독이 DVD를 통해 '언타이틀드'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도, DVD가 가지고 있는 매체의 특성이 오히려 이런 버전을 수록해야 돈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감독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놓을 수 있는 상업적인 공간. 그것이 DVD가 가진 또 하나의 가치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