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타이틀]
강명석의 Shuffle! <나의 지구를 지켜줘>
2005-10-05
글 : 강명석 (기획위원)
칸노 요코의 또다른 대표작

현재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해외의 영화음악가중 한명은 히사이시 조일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을 작업, 미야자키 하야오의 동양적인 색채와 스펙터클한 느낌을 완벽하게 음악으로 재현하는 그는 이미 일본과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지명도를 확보하고 있고, 최근에는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영화 중 최초로 <웰컴 투 동막골>에 음악을 제공, 이 영화가 개봉 전부터 주목받는데 한몫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애니메이션에 미야자키 하야오만 있는 것이 아니듯, 애니메이션 음악에도 히사이시 조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히사이시 조가 애니메이션 음악의 '클래식'이라면, 얼마 전 5.1 채널 에디션이 발매 된 <카우보이 비밥>의 음악을 맡은 칸노 요코는 애니메이션의 '팝'이자 새로운 경향을 이끌었다. 애니메이션 음악가이기 이전에 솔로 아티스트이자 CF 음악 감독으로 활약한 이 천재 뮤지션은 광활한 우주에서 펼쳐지는 고독한 사냥꾼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애니메이션을 대중음악의 경연장으로 꾸몄다.

재즈, 락, 블루스, 컨트리, 팝 등을 마음껏 오가는 그의 음악은 보컬이 들어가지 않은 곡이라 할지라도 'EGG & I'처럼 확실하게 각인되는 팝적인 스타일의 음악들로 <카우보이 비밥>을 음악으로 기억할 수 있게 만들었고, 그것은 여러 대중문화 장르가 뒤섞이고, 여러 작품이 오마주된 <카우보이 비밥>의 세계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칸노 요코는 <카우보이 비밥>만큼이나 새로운 스타일의 애니메이션 음악을 제시했고, 최근 발매된 5.1채널 에디션은 여기에 애니메이션 화면 안에서 존재하는 공간을 입체화 시키며 음악과 영상의 조화를 극대화시켰다.

하지만 칸노 요코의 대표작은 <카우보이 비밥>만이 아니다. 그가 자신의 남편 미조구치 하지메와 함께 작업한 <나의 지구를 지켜줘>는 <마크로스 플러스>와 함께 <카우보이 비밥>이 나오기 전 그의 대표작이었을 뿐만 아니라, OVA로 제작된 애니메이션 중 손꼽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아직 연재 중이었던 동명의 만화 중 일부 내용을 추린 이 작품의 특징은 단지 내용을 압축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작품의 스토리 중 일부에 그 포커스를 집중했다는데 있었다. 여러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조금씩 진행되면서 큰 지도를 만들고, 그 속에 각 캐릭터의 전생에 대한 추리와 서로의 인연에 대한 신비로움, 그리고 약간의 유머까지 함께 넣었던 원작과 달리, OVA판은 주인공 링이 음모를 꾸미는 과정을 중심으로 서스펜스에 집중했다. 그래서 원작만큼 풍부하진 않지만 상당히 긴장감 넘치고, 어지간한 영화 못지않은 스펙터클한 씬들을 연출했는데, 이는 발표 직후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원작에 대한 좋은 재해석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칸노 요코와 미조구치 하지메의 음악은 이런 애니메이션과 원작만화의 특성을 적절히 반영한다. 스코어를 맡은 미조구치 하지메의 음악들이 스토리의 흐름을 이끌며 전체적으로 긴장감을 형성하면, 메인 타이틀을 비롯해, 뮤직비디오 중 몇 곡을 맡은 칸노 요코는 여성 보컬과 타악기의 사용 등으로 <나의 지구를 지켜줘>의 원작이 가진 분위기를 고스란히 가져온다. 특히 엔딩 타이틀 '시간의 기억'은 영상을 보기 전 음악만 들으며 그 이미지를 상상하는 것이 즐거울 정도로 곡 자체가 매우 명확한 이미지를 전달한다.

물론 칸노 요코의 최고작이 <카우보이 비밥>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더불어 칸노 요코의 음악세계는 자신이 맡는 작품에 따라 유니크하게 변화하고, 그것이야말로 칸노 요코를 천재로 불리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카우보이 비밥>과 함께 <나의 지구를 지켜줘>를 들으면서 그의 음악에 관한 지도를 그려보는 것도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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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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