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에 걸친 <스타워즈> 시리즈의 마지막을 담당한 <스타워즈 : 시스의 복수>는 시리즈 중 가장 독특한 (가장 '좋은'이 아닌) 작품이다. <스타워즈 : 제국의 역습>과 마찬가지로 <시스의 복수>는 근본적으로 비극이다. 사랑했던 연인은 다시는 만나지 못하고, 전도유망했던 제다이 청년은 암흑의 군주가 돼버린다. 그래서 <시스의 복수>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무겁고 어두워지며, 6개의 에피소드 중 가장 비극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28년 동안 <스타워즈>의 팬들이 고대하던 결과이기도 하다. 전 세계에 새로운 영화 패러다임을 제시한 이 작품의 시작은 바로 그 비극으로 인해 시작될 수 있었고, 그래서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다스 베이더가 되는 그 순간은 <스타워즈>의 모든 연결고리가 된다. 스크린에서는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암흑시대가 시작되고 있지만, 사람들이 보는 것은 그 스크린 뒤에 펼쳐질 또 하나의 신화다. <시스의 복수>는 영화가 때론 작품의 자체적인 내용만이 아니라 영화 외적인 요소에 의해 관객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시스의 복수> 마지막에 변주된 'A New Hope'가 흘러나올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무 지식도 가지지 않은 채(그것이 설마 가능할까 싶지만) 영화를 본다면 낮게 깔리며 시작되어 점점 힘차게 울려 퍼지기 시작하는 음악으로 인해 억지스러운 해피 엔딩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은 모두 그 뒤에 이어질 이야기가 진짜 희망을 안겨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시스의 복수>에서 서서히 퍼지기 시작하는 <새로운 희망>의 테마는 영화의 엔딩을 위한 음악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모든 재앙이 시작되는 그 시점에서 차분하게 흘러나오는 이 곡은 <시스의 복수>뿐만 아니라 <스타워즈> 시리즈 전편을 정리한 것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새로운 희망>의 변주된 테마곡이 효과를 가지는 것은 단지 <스타워즈>의 아우라 때문은 아니다. 그것은 결국 <스타워즈>의 모든 음악을 작곡해내고야 만 존 윌리엄스의 역량에서 기인한다. 그는 갈수록 암울함과 무거움이 더 해지는 <시스의 복수>에 맞춰, <스타워즈> 시리즈 중 가장 일관되고(가장 훌륭한 것과는 다르다), 가장 무거운 분위기로 음악을 만들었다.
메인 테마로부터 '새로운 희망'이 등장하기 전까지 <시스의 복수>의 음악들은 점점 어둡고 불안한 느낌으로 나아간다. 장중한 <스타워즈>의 메인 테마는 어느덧 날카로운 관악기와 드럼이 치고 들어오는 공격적인 <시스의 복수>로 변하고, 그로부터 음악은 점점 예고된 불행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특히 쉴 새 없이 현악기들이 빠르게 연주되며 불안감을 조성하다가 대규모의 합창단으로 비극적인 느낌을 극대화하는 'Battle of Heroes'와 28년을 기다린 아나킨 스카이워커와 오비완 케노비의 대결을 불협화음과 같은 느낌으로 그려낸 'Anakin VS Obi-wan', 그리고 계속된 비극에 이어 결국 그 비극을 웅장한 합창단의 코러스로 마무리 짓는 'The Birth of Twins and Padme's Destiny'는 <시스의 복수>가 어떤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는가를 확인시켜준다.
그리고 모든 비극이 종료되는 순간,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새로운 희망>의 메인 테마는 앞의 음악과 극단적인 대비를 이루며 앞으로의 <스타워즈> 시리즈가 펼쳐낼 우주 판타지의 느낌을 살려낸다. <스타워즈>의 첫 번째 작품이었던 <새로운 희망>에서의 메인 테마가 광대한 스페이스 오페라의 웅장한 서막을 알렸다면, 시리즈의 맨 마지막에 다시 들리는 '새로운 희망'은 우리가 지나왔던 그 모든 환상에 대한 멋진 마무리다.
그러나 <시스의 복수>는 영화의 흐름에 따라 지나치게 우울하고 장중한 스케일에 신경 쓰면서 약간의 아쉬운 점을 남긴다. 영화 내내 무겁고 힘차게 진행되는 <시스의 복수>의 음악은 OST로만 들었을 때는 조금 갑갑하다 싶을 정도고, 거창한 스페이스 오페라이기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장르를 가볍게 버무린데서 오는 <스타워즈>의 4~6 에피소드 특유의 경쾌한 느낌은 살려내지 못했다. 영화나 음악이나 너무 거대해졌다고나 할까.
이는 영화의 흐름에 따라 철저하게 그에 맞춰 곡을 프로듀싱하는 존 윌리엄스의 성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가 만들어낸 또 다른 최근작 <해리포터 : 아즈카반의 죄수>의 음악은 사춘기의 폭주를 보여주던 시리즈의 분위기에 맞춰 거침없고 경쾌하게 진행됐다. 그래서 영화에 부합하는 다양한 스타일을 창조하는 존 윌리엄스의 또 다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시스의 복수>보다는 오히려 <시스의 복수> OST에 함께 포함된 DVD인 '스타워즈: 음악적 여정'이다.
<스타워즈>의 여러 이야기들을 주제별로 나눠 편집한 영상에 <스타워즈>의 여러 테마들을 변주해 붙인 음악이 함께 담긴 이 타이틀은 지난 28년간의 존 윌리엄스의 여러 스타일을 요약해놓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엔 <스타워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A New Day Dawns'처럼 <스타워즈> 특유의 장중하고 호쾌한 느낌을 살린 곡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스타워즈>의 본편에서 조금씩 묻혀있던 부분들을 적극적으로 내세워 새롭게 꾸며낸 곡들이 더욱 눈에 띈다.
이를테면 루크와 한 솔로의 첫 대면을 보여주면서 루크가 겪는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종족들을 다양하게 보여주는(그리고 마지막은 '자바 더 헛'의 트림으로 끝나는) 'An Unlikely Alliance'는 루크가 한 솔로를 만나기 전까지는 가벼운 클래식으로 나아가다가 새로운 세상에 나서는 순간부터 스윙 재즈로 변하며 흥겨움을 돋구고, 레아 공주의 다양한 모습과 레아 - 한 솔로 사이의 연애담을 담은 'A Defender Emerges'는 가느다란 플룻 연주를 통해 아름다운 공주 레아의 모습을 묘사한 뒤, 그녀가 모험에 나서고, 한 솔로와의 로맨스가 계속되면서 점점 다가오는 위기와 커져가는 사랑을 점층적으로 표현, 멋진 러브스토리로 완성시킨다.
또한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각종 비행 씬들을 모은 'A Narrow Escape'는 발랄하다고 할 만큼 경쾌하며, 두 번째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아나킨 스카이워커와 파드메의 사랑을 재구성한 'A Fateful Love'는 그들의 만남과 사랑, 위기에 맞춰 정확하게 호흡을 조절하는 음악에 따라 재편집되면서, 뻔하게만 진행됐던 두 번째 에피소드의 실제 스토리보다 더 근사한 러브스토리를 보여준다. 또한 <스타워즈>의 4~6 에피소드의 영상들 역시 당연히 작년에 발매된 트릴로지 세트의 영상을 쓰고 있어 20여 년 전 영화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퀄리티를 자랑, 트릴로지 박스 세트를 아직 사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만 하다.
그래서 '스타워즈: 음악적 여정'은 <시스의 복수> OST에 딸린 부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스타워즈>와 존 윌리엄스의 28년 역사를 정리한 일종의 역사 교과서 역할을 한다. 28년 동안 영화와 영화 음악계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 조지 루카스와 존 윌리엄스가 <스타워즈>를 통해 어떻게 발전했고, 또 그 <스타워즈>에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담겨있었는지 이 타이틀 한 장으로 정리 된다. 존 윌리엄스는 이 28년에 걸친 스페이스 오페라를 너무 어깨에 힘을 넣지도 않고, 품위를 잃지도 않으면서 멋지게 마무리한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