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스티븐 스필버그는 '최고 흥행감독‘의 자리에 연연하지는 않는 듯하다. 그보다는 요즘의 그는 어느 정도 흥행을 보장한다는 조건 안에서 자신이 찍고 싶은 영화를 마음껏 찍는 듯 하다. 톰 크루즈, 톰 행크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처럼 톱스타들을 데려다가 SF / 코미디 양쪽의 영화를 쉴 새 엇이 찍을 뿐만 아니라, 영화의 내용 역시 <쥬라기 공원>과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확실한 흥행작과 아카데미 수상용 영화를 분리해 만드는 대신 그 두 가지가 합쳐져 보다 미국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작품을 만들고 있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낭만적이었지만 동시에 위기의 시대였던 1970년대 미국을 통해 지금의 미국을 풍자했고, 미국의 입국 절차에 관한 내용을 다룬 <터미널>은 아예 직접적으로 9.11 이후 외국인에게 관용의 자세를 닫아버린 미국 보수주의자들을 겨냥하고 있다.
<우주전쟁>은 최근의 스티븐 스필버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뚜렷하게 오락 영화의 스타일안에 자기만의 메시지를 담아내고, 그것을 스티븐 스필버그가 지향하는 스타일로 표현한다. 이미 여러 매체에서 다뤘듯, <우주전쟁>은 사실상 외계인의 침략에 관한 영화라기보다는 외계인의 침략에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에 관한 재난영화고, 그것은 곧 9.11 이후 미국인이 겪는 공포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아버지 역할을 해야 할 남자는 무능하고, 딸은 공포에 사로잡혀 비명을 지르며, 아들은 무턱대고 외계인과 싸우겠다며 입대를 지원한다. 이런 그들의 모습은 9.11 이후 미국인 각자의 대처 방식과 유사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뉴욕’에서 보스턴으로 피난가면서 겪는 모든 비이성적인 혼란과 공포는 9.11 직후 미국인들이 겪었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는 미생물이 외계인을 물리치는 <우주전쟁>의 원작의 결론을 빌어 정말 필요한 것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하기 보다는 오히려 침착하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공포심을 없애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마치 레이첼(다코타 패닝)이 자신에게 박힌 가시를 손대지 않고 가만히 놔두며, 참을 수 없는 공포가 오자 스스로를 감싸 안고 자신의 구역을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할 것은 외계인이 아니라 미생물처럼 스스로 외부의 힘을 이겨낼 역량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공포에 떨어 서로 갈등하고 싸우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외부에서 온 충격은 공포를 낳고, 그 공포는 존재하지 않는 더 큰 공포를 만든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시작부터 끝까지 바로 그 공포감을 절정에 이른 자신의 영화적 테크닉으로 전달하려 한다. 그는 <우주전쟁>에서 어떤 일정한 내러티브를 따라가기 보다는 마치 레이(톰 크루즈)를 중심으로 한 다큐멘터리처럼 영화를 구성하고, 영화 내내 레이가 공포를 겪고, 그것을 해결하며, 다시 또 공포에 사로잡히는 과정만을 보여준다. 그래서 <우주전쟁>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스펜스라는 하나의 ‘감정’만으로 움직인다. 마치 고전적인 SF 영화처럼 트라이포드가 지구인들을 쫓아다니는 큰 스케일의 씬부터 작은 집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액션까지, 스티븐 스필버그는 쉴 새 없이 긴장감을 조성하고, 공포를 불러일으키며, 그것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보이지 않는 공포’를 창조해낸다. 아마도 미국인들에겐 그것이야말로 9.11에서 느끼는 공포와 유사한 것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 <우주전쟁>의 서스펜스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되는 도구중 하나가 바로 존 윌리암스의 음악이다. 그는 <스타워즈>의 성공과 함께 국내에서는 블록버스터 영화에 어울리는 영화감독, 웅장한 스케일을 표현하는데 능한 영화감독쯤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의 스타일은 하나로 규정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해리포터> 시리즈만 해도 최대한 아동용 분위기로 만든 1,2편의 음악은 밝고 유쾌했지만 마치 사춘기 소년소녀들의 성장물 같았던 3편에서는 장난끼 가득한 불협화음과 폭주의 이미지를 담았으며, <스타워즈 에피소드 3 - 시스의 복수>에서는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다스 베이더가 되는 과정, 그리고 <시스의 복수’가 다시 ‘새로운 희망’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을 전편에 비해 관악기가 강조된 오케스트라 속에서 굉장한 압박감이 두드러지는 스코어로 표현했다.
그리고 <우주전쟁>에서는 존 윌리암스가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했던 <죠스>처럼, 다시 서스펜스 가득한 스타일로 돌아가 공포감을 극대화하는데 주력한다. 죠스가 나타나는 그 순간 전후의 긴장감 고조에 주력했던 <죠스>가 누구나 기억할만한 선율로 죠스에게 존재감을 부여한 것과 달리, 보이지 않는 공포를 형상화하는 <우주전쟁>의 음악은 어떤 기억할만한 테마보다는 영화 전체에 일관된 공포의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주력한다. 영화 시작부터 낮게 깔리는 현세션의 연주, 그리고 외계인의 침입 이후 영화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스며드는 긴장감과 신경질적으로 반복되는 긴박한 현세션의 연주는 때론 음악이라기보다는 불쾌하고 긴장되는 ‘음향’에 가까운 느낌마저 주고, 이것이 영화 내내 이어지면서 숨 막히는 공포감을 조성한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마찬가지로, 존 윌리암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서스펜스라는 원칙을 지키면서 음악을 끌고 나갔고, 그것은 공포가 끝나는 마지막 순간의 임팩트를 더욱 크게 만든다. 외계인의 죽음과 함께 현세션이 절정을 치달은 뒤, 그 때부터 나직하게 올라오기 시작하는 피아노 연주는 레이(톰 크루즈) 가족들의 포옹과 함께 곧 공포의 종언을 알린다. 그러나 그 피아노 연주 역시 스산하게 깔리는 현세션을 배경으로 하면서 쌀쌀한 가을 풍경 속에서 아직 폐허로 남아있는 뉴욕과, 여전히 가족들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소외된 레이(톰 크루즈)의 모습과 함께 아직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함께 보여준다. 마치 9.11이 일어난 뒤 4년 뒤에도 여전히 테러의 공포에 관해서는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는 미국처럼.
물론 <우주전쟁>을 스티븐 스필버그의 마스터 피스라고 할 수는 없다. 또한 <우주전쟁>에서 다루는 메시지가 그렇게 깊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는 영화 내내 오직 서스펜스만으로 공포를 이어가는 작품을 만들어냄으로써 영화의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다. 그리고 존 윌리암스는 그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에 더욱 순수한 공포를 불어넣었다. 때론 위대한 테크니션은 위대한 작가가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영역에 들어선다. 30년 넘게 할리우드를 지배해온 스티븐 스필버그와 존 윌리암스의 결합을 보면, 그들이야말로 그런 예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들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