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인형극의 대가 짐 헨슨의 대표작 살펴보기
2005-06-10
글 : DVDTopic

청순한 소녀 이미지로 어필했던 제니퍼 코넬리와 데이비드 보위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판타지 영화 <라비린스>가 마침내 국내에 출시됐다. 두 스타 배우와 함께 제작을 맡은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와 연기자로 참여한 프랭크 오즈 등의 이름이 눈에 띄지만, 무엇보다 이 기이한 판타지 세계의 창조자인 짐 헨슨을 빼놓고는 작품을 이야기할 수 없다.

짐 헨슨은 미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아동 TV 시리즈 <세사미 스트리트>의 인기 캐릭터들을 창조해낸 인물로서, 꼭두각시 인형극인 ‘머펫’쇼를 완성시킨 장본인이다. 1990년 지병인 폐혈증으로 54세의 나이로 타계했지만 빅버드와 엘모, 커밋 등 그의 캐릭터들은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으며, 그가 추구한 인형극 장르는 자신의 이름을 딴 짐 헨슨 프로덕션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

사실 짐 헨슨은 국내에서는 낯설게 느껴지는 인물이다. 하지만 <라비린스>와 함께 대표작으로 알려진 <다크 크리스탈>도 함께 DVD로 선을 보일 예정이어서, 그의 작품 세계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두 작품 모두 처음 공개됐을 당시에는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처럼 판타지 영화들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누리던 시기가 아니었고, 결정적으로 국내에서 극장 개봉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알게 모르게 많은 이들이 접하고 있는 <머펫 시리즈>와 달리 그의 대표작이면서도 홀대당하고 있는 <다크 크리스탈>과 <라비린스>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배경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다크 크리스탈 The Dark Crystal (1982)

짐 헨슨이 자신과 더불어 인형극의 장인으로 손꼽히는 프랭크 오즈와 공동으로 작업한 <다크 크리스탈>은 영국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브라이언 프라우드의 환상적인 회화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악의 세력으로부터 살아남은 선한 종족의 마지막 후예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수정조각을 찾는다는 내용으로, 단순한 스토리라인을 지니고 있지만 정교하고 사실적인 판타지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판타지 작품에 사실적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될 수도 있으나, 만화적인 연출을 배제한 진지한 분위기와 뛰어난 애니매트로닉스(기계장치를 이용한 일종의 로봇) 기술, 그리고 인형 복장을 입은 배우들의 활약으로 예술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

브라이언 프라우드가 그린 포스터

아직까지도 열광하는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이유 역시 인간 캐릭터가 한명도 등장하지 않는 가운데서도 실사영화적인 연출로 그려진 진지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최신 기술을 이용한 CG 캐릭터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실제감 또한 <다크 크리스탈>의 최대 매력으로, 여러 판타지 작가들과 애니메이션 감독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전해진다.

어두우면서도 매혹적인 영화의 세계관은 형성하는데 큰 공을 세운 브라이언 프라우드는 <반지의 제왕>의 삽화작가 앨런 리와 함께 작업한 <요정들(Faeries)>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작가. 주로 아동 서적의 삽화를 그리던 그는 자신의 창조적인 감각을 높이 샀던 짐 헨슨에 의해 발탁되어 <다크 크리스탈>과 후속작 <라비린스>의 디자이너로 참여했다.

한편 <라비린스>의 스탭 리스트에 올라 있는 그의 아내 웬디 미드너 역시 유명한 인물로서 바로 <스타워즈 - 제국의 역습>에 처음 등장한 제다이의 현자 ‘요다’를 만들어낸 인형 제작자다. 두 사람은 <다크 크리스탈>이 제작되던 중 짐 헨슨 스튜디오에서 처음 만났는데, 브라이언 프라우드가 자신이 디자인한 캐릭터들을 충실히 입체화시킨 여성에게 매료되었다는 후문이다.

라비린스 Labyrinth (1986)

'머펫’의 집대성이자 걸작으로 평가받은 <다크 크리스탈>이었지만 어두운 내용과 인간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중들의 폭넓은 지지는 얻지 못했다. 이에 짐 헨슨은 조지 루카스의 지휘 아래 당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 청순미의 극치를 보여준 아이돌 배우 제니퍼 코넬리와 록스타 데이비드 보위를 기용한 새로운 작품 <라비린스>를 연출한다.

인형 조종 리허설
토비 프라우드

유명 배우들의 출연과 유머러스한 내용을 지향한 <라비린스>는 보다 진보한 애니매트로닉스 기술과 브라이언 프라우드가 디자인한 독특한 판타지 생물들이 큰 호응을 얻으면서 <다크 크리스탈> 이상의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다. 컬트 코미디쇼인 <몬티 파이튼>의 테리 존스가 각본을 담당했으며, 이야기의 발단이 되는 아기 토비 역을 브라이언 프라우드의 아들 토비 프라우드가 맡았던 점도 당시 화제였다.

하지만 당시 14세로 주연을 맡은 제니퍼 코넬리의 뻣뻣한 연기와 더불어 빈약하기 그지없는 스토리는 단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반지의 제왕> 이전까지 판타지 영화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 이유는 역시나 초현실적인 판타지 세계를 스크린 속에 생생하게 구현해낸 작품이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프라우드의 유려한 일러스트를 그대로 살려낸 기괴하면서도 친근감을 주는 생물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한 짐 헨슨의 연출력은 높이 살만한 것이다.

마왕의 미궁

또한 <라비린스>에는 유명 화가들의 작품들을 모티브로 한 이미지가 두루 쓰이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그 중에서 잘 알려진 것은 착시그림으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초현실주의 미술가 에셔(M.C. Escher)의 작품이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세라의 방에 그의 그림이 걸려있는가 하면, 영화 후반부 마왕의 미궁은 에셔의 초현실적인 판화 그림을 그대로 본 따서 디자인 되었다. 세라가 마왕을 피해 아기를 찾는 이 장면은 잘 계산된 커트 연결과 합성 기술을 통해 얻어진 입체감으로, 에셔의 그림을 보는 듯한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창 너머에 펼쳐진 환상 세계

그리고 마왕에게 납치된 토비를 구하기 위해 세라가 창밖으로 여행을 떠나는 도입부는 독특한 화풍의 아동 미술가 모리스 센닥(Maurice Sendak)의 그림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Where the Wild Things Are)>에서 영감을 받은 장면이다. 이 같은 인용들은 모두 원 저작자의 허가를 얻었으며, 엔딩 스탭롤에도 그러한 내용이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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