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영화인 7인 특강 전문 [1] - 백윤식 ①
2005-07-08
사진 : 이혜정
정리 : 오정연

일시 2005년 5월11일

장소 연세대학교 위당관

참석자 백윤식, 마술피리 오기민 대표, <씨네21> 이종도 기자

백윤식 | 반갑습니다. 백윤식 입니다.(일동, 열렬한 환호) <씨네21> 창간 10주년 특강에 초대되어 여러분을 뵙게 되서 진심으로 기쁘고 영광스럽네요. <씨네21>은 우리나라 영상산업에 여러가지로 도움을 주고 있는, 좋은 영화 잡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기민 | 선생님께서 <씨네21>을 그렇게 과찬하실 수 있는 건, 하신 작품이 계속 지지를 받아서 그런 것 같네요. 알고보면 <씨네21>과 원수처럼 지내는 영화사들도 꽤 있습니다.(웃음)

백윤식 | 아, 그래요? 저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거든요.(일동 웃음)

오기민 | 계속 그럴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웃음) 오늘은 옛날에 출연하신 작품과 최근작을 중심으로 얘기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시간이 된다면, 선생님의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들으려 하니까, 각오하시기 바랍니다.

백윤식 | 사생활은 좀 뺐으면 좋겠는데.(일동 웃음)

오기민 | 첫질문은 예전 영화에 대한 것입니다. 선생님께선 74년과 76년에 <멋진 사나이들>과 <단둘이서>라는 영화를 찍으신 뒤, 오랫동안 영화를 쉬면서 드라마에서 활동을 해오셨고, 몇년 전 <불후의 명작>에서 잠깐 모습을 비추셨고, 그 뒤에 <지구를 지켜라>로 굉장히 험하게 데뷔를 하셨잖습니까.(일동 웃음) 예전 작업과 요즘 작업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백윤식 | 제작 시스템이 많이 달라졌죠. 구체화됐다고 할까요. 창작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제작사의 뒷받침이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있죠. 영화사 직원이나 스탭분들의 연령층도 굉장히 밑으로 내려가 있습니다. 제가 배우 중에서는 장년 축에 속하는데, 현장에 계신 분들이 전부 20대초부터 30대중반의 분들이에요. 너무 좋습니다. 얘기하려면 끝이 없는데….

오기민 | 그럼 구체적으로 <멋진 사나이들>과 <단둘이서>라는 영화에 대한 소개와 맡으신 역할에 대한 설명을 해주신다면.

백윤식 | <멋진 사나이들>이 제 영화 데뷔작입니다. 사실 그 작품은 여러분들께 안 보여지길 바라고 있고.(웃음) 그때 저는 KBS의 일일연속극 <꽃피는 팔도강산>에서 박노식 선생님처럼 기라성 같은 분들과 출연하고 있었죠. 그때는 유명하신 분들이 TV 쪽에 총출동하실 때였어요. 그러던 차에 동아흥행이라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때는 메이저영화사였던 곳으로부터 제안을 받았죠. 공군사관생도역할이었어요. 그리고 <단둘이서>는 세경흥업이라고 또다른 메이저급 영화사에서 제작한 영화로 함께 공연했던 여배우는 지금으로 말하면 문근영양 정도되는 서미경씨였죠. 딱 문근영씨 스타일이에요. 아무튼 그런 여배우와 함께 공연했다는 걸, 저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걸 알려드립니다.(일동 웃음)

오기민 | <단둘이서>는 청춘 로맨틱 코미디였습니다.(웃음) 이 두 영화는 영상자료원 사이트에 가면 스틸들을 볼 수 있습니다. 70년대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는 두 작품 모두 흑백영화에 후시녹음을 했다는 것일텐데요. 그러니까 두 영화 속 선생님이 맡으신 역할의 목소리는 모두 성우가 더빙을 했다는 거죠. 연기자가 느끼는 흑백영화와 컬러영화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백윤식 | 그게 흑백이었습니까. 아, 흑백이었나봐요.(일동 웃음) 당시와 지금은 조명같은 것도 매우 달랐죠. 로케이션 촬영을 할 때면, 은박 판넬같은 것으로 태양광을 반사했었거든요. 근데 문제가, 이것 때문에 배우들이 눈을 못 떠요. 그래서 제가 광주비행장 활주로에서 <멋진 사나이들>을 촬영할 당시 같이 출연하는 이대엽 선생님께 물어봤어요,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그랬더니 배에다 힘을 주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했더니 눈은 좀 뜨겠는데, 표정이고 뭐고 나옵니까. 눈알만 부라리는 거지.(웃음) 그때 활동하신 분들이 눈이 나빠진 게 그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어요.(웃음) 그리고 동시녹음 같은 경우는, TV와 달리 영화 쪽은 거의 후시였어요. 그래서 배우들이 긴 대사를 할 때면 조감독들이 옆에서 대사를 신파 조로 읽어주셨죠. 그걸 들으면서 대사를 하면 아무래도 타이밍이 좀 처지기도 했고. 지금과는 하늘과 땅 차이죠.

이종도 | 오랫동안 영화쪽 활동을 접었던 이유가 있었나요.

백윤식 | 영화 데뷔 이후 차기작들을 찍어나갔지만,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계속 이어지지가 않더라구요. 그리고 당시에는 TV가 굉장히 인기가 많을 때였거든요. 배우들이 좀 더 활동하고 싶어하는 분야가 TV였고. 그러는 동안에도 연결고리는 계속 있었습니다. 훌륭하신 감독님들이나 좋은 상황에서 불러주신 분들도 많았는데, 그게 잘 안되려고 했는지, 오늘날 이런 식으로 활동하려고 그랬는지 잘 이루어지지가 않더라구요.

오기민 | 당시에는 영화사(社)에 대한 정책과 검열이 엄격할 때였죠. 그렇게 때문에 많은 연기자들이 방송에서 활동하셨고. 80년대 들어서야 영화포스터에 총천연색 영화, 동시녹음 영화라고 광고할 정도였으니, 영화는 제작 환경 자체가 TV에 비해 굉장히 열악했다는 얘기죠.

백윤식 | 당시는 안방극장이 활성화됐던 시기고, 영화의 제작방식이 요즘과는 달랐어요. 지금처럼 긍정적인 작품들이 쏟아져나올 수가 없고, 한정된 것만 가능했죠. 군사문화 시절이다보니까. 영화 제작하기 전에 시나리오부터 검열을 받아야했죠. 그러고 나면 시나리오가 만신창이가 돼서 돌아와요. 그리고 그걸 가지고 찍어요. 찍은 다음에는 또 개봉 전에 검열을 받아야죠. 그러면 또 막 가위로 잘라가지고~. 그러다보니 그렇게 잘리지 않을 만한 소재만 다뤄야 하고, 그러다보니 영화들이 다 건설적이고, 새마을 운동적이고, 이런 식이었죠.

오기민 | <단둘이서>도 영화내용이 굉장히 건전합니다. 온 가족이 봐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웃음) 중대 연극영화과를 나온 뒤, KBS 공채로 활동을 시작하셨는데, 평생을 연기자로 살아가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모델이 되는 배우가 있었나요.

백윤식 | 저는 고등학교 졸업반 때까지 연극반 활동을 했던 것도 아니고, 연기에 큰 뜻을 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청년시절, 대부분 여러 꿈을 가지잖습니까. 물론 집에서는의대같은 걸 선호했지만, 개인적으로 저에게는 해양대학교나 연극영화과가 진취적으로 보이더라구요. 당시엔 연영과라고 하면 딴따라 광대나 된다고 반대하던 시절이었지만. 배우 중에서 좋아했던 배우를 따지자면, 모델이라고까지 말할 건 없제만, 피터 유스티노브라는 배우가 있었어요. 여러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쿼바디스>라는 영화에서 네로황제로 출연했었죠. 눈물단지를 들고 시 읊으면서 로마시내를 불바다로 만드셨는데, 그 분 연기가 마음에 와닿았어요. 그런 분이 진짜 배우구나. 사실 그렇게 선남 스타일은 아니셨거든요. 당시에 배우들이 모두 선남선녀들이었는데, 그 분은 성격파배우라고 볼 수 있죠. 모 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로 강단에 서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이종도 | <지구를 지켜라>부터 <그때 그사람들>까지의 영화나, <서울의 달> 같은 드라마, 아니면 CF등을 보면 연기에 있어 한결같은 방법론이 있는 것 같아요. 본인은 웃지 않고 남들을 웃긴다던지, 본인의 움직임을 최소화하면서 상대방이 경청하게 만드는 식으로. 본인이 참고하신 연기철학이 있나요.

백윤식 | 그렇게 긍정적으로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배우는 자기만의 어떤 요소가 가미가 될 수밖에 없죠. 자신만의 잠재적인 요소를 작품마다 혹은 캐릭터마다 어느 정도 반영하느냐에 따라 일정한 효과과 발생되죠. 저는 특별한 건 없습니다. 정공법입니다. 코믹한 장르라고 해서 코믹에 대한 기교를 부린다던지 그런 건 없구요.

오기민 | 저희 세대나 저희 바로 밑 세대의 경우, 선생님께서 최근 영화에 출연하시기 전 이미지는 드라마 <서울의 달>이 결정한 것이나 마찬가지거든요. 근데 어느 인터뷰에선가 선생님께서, 그 이미지가 굉장히 부담스럽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게 어떤 점인가요?

백윤식 | 부담? 그 기자가 잘못 쓴 것 같은데.(일동 웃음)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습니다. TV에선 그 캐랙터, <서울의 달>의 미술 선생님이 기념비적인 것이었거든요. 저는 그저 그런 유형의 인물을 정공법으로 소화했는데, 자꾸 웃음을 유발하하잖아요. 그러니까 그쪽 장르 족에서 자꾸만 제안이 오는 거에요. 저 배우 웃기니까 쇼프로그램이나 이런 데서도 출연해달라고 그러고. 부담스럽다는 건, 그런 의미해서 했던 얘기 같습니다.

오기민 | 그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저도 공포영화를 몇 작품을 하면서 배우들이 그런 불평을 많이 하더라구요. 아무리 영화가 성공을 해도, 자꾸만 공포영화 캐스팅 제안만 들어온다구요. 그래도 예전엔 영화나 드라마나 모두, 젊은 층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요즘은 소재나 이런 부분이 다양해지면서 중견 배우들의 많이 활발한 활동을 하시고 있죠. 다른 중견배우와 본인의 차이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본인만의 독특한 것이 있다면.

백윤식 | 그런 말씀을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저는 그렇게 차별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들 동료고 선후배고 한솥밥을 먹는 분들과 내가 어떻게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좀…. 물론 그런 상황에서도 차이는 있죠.(웃음) 사실 제가 부담스러워하는 표현 중 하나가, “중년배우의 시대가 왔다”는 식의 말이에요. 저는 그저 이게 내 독자적인 모습이니까 그분들과 함께 그룹 샷으로 가지 말아달라(웃음), 고 말을 하죠. 물론 연령이나 시대적인 걸 보면 그룹으로 표현될 수 있겠지만, 난 좀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종도 | 그런 다른 부분 중 하나가 말투가 아닐까요. 가령 <지구를 지켜라>에서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우주인의 말투, <범죄의 재구성>에서 “시츄에이션이 좋아”같은 것 말이죠. 그런 대사들은 현장에서 감독과의 교감 하에 이루어진 것인지, 선생님께서 착안하신 건지.

백윤식 | 물론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나오는 것도 있죠. 근데 그걸 감독이 접수를 안하면 결국 표현이 안되겠죠. 그래서 어떤 제안을 하고 나서, 내가 리허설을 해보이면, 감독들이 그걸 보고, 타당성이 있다고 합의를 하면 영화에 담기는 거죠. 내 맘대로 할꺼야, 라고 해도 편집으로 다 잘리잖아요.(웃음) 참, 영화는 가위가 문제야. 옛날 군사문화 때는 검열 때문에 문제였는제, 요즘은 배우 입장에서 가위가 참, 문제가 많죠.

오기민 | 애드리브가 많지 않으신 편인가요?

백윤식 | 얼마 전 장준환 감독이 “백윤식이라는 배우는 애드리브가 많을 것 같지만, 정공법을 쓰는 연기자다”고 말한 인터뷰를 읽었어요. 사실 저도 애브리브라는게 많이 발생됩니다. 근데 그게 애드리브 같지 않은 거지.

오기민 | 얼마전 제가 주현 선생님과 작업한 적이 있는데, 그 분은 애드리브가 어마어마해죠. 감독이 아무리 얘기해도, 알았다고 해놓고 또다른 애드립을….(웃음) 14번 테이크를 갔는데 대사가 다 다른 거에요.(웃음)

백윤식 | 그게 <고독이 몸부림칠 때>였죠? 맞습니다. 배우들은 원래 욕심이 많습니다. 저 역시 욕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느 틀 안에서 감독과 상대배우를 존중합니다. 시쳇말로 튀려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죠. 저 역시 즉흥적인 애드리브가 있지만, 그걸 사전검열을 하거나 감독, 동료 연기자들과 함께 소화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합리적으로 이루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오기민 | 주현 선생님이랑 함께 출연하셨던 박영규씨 역시, 애드리브가 너무너무 심해가지고 나중에는 원래 시나리오와는 전혀 다른 얘기를 두 분이 하고 계실 때도 있었죠.(웃음)

백윤식 | 그게 흥행이나 작품성하고도 연관이 되거든요. 애브리브를 남발하다보면 나중에는 이상한 방향으로 작품이 간다던지, 그럴 수도 있어요.

오기민 | 최근 작품으로 돌아와서. 힘든 역할로 오랜만에 작품을 하시면서 새로운 기분으로 젊은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이 낯설지 않았는지, 하게 된 과정과 느낌까지 듣고 싶습니다.

백윤식 | <지구를 지켜라>는 저에겐 기념비같은 작품이죠. 그 당시가 사실 한국영화의 부흥시대 아니었습니까. 그러나보니까 책(시나리오)이 저한테도 많이 왔어요. 근데 걱정이 앞섰죠. 대개의 경우, 내가 소모품으로 끝나는 것 같았거든요. 그러다가 <지구를 지켜라> 같은 작품을 만난건데, 전부 코믹스런 작품들이 많았던 와중에 그 영화는 배우 입장에서 새로운 장르이고 캐릭터도 새롭더라구요. 하지만 배우이기 전에 저도 사람아닙니까. 사람 입장에서 시나리오를 보면 볼수록,(웃음) 장면이 눈에 선하잖아요. 배우들은 책보면 디렉션, 다이얼로그, 뭐 이런 걸 다 예상하잖아요. 머리는 다 깎이지, 옷은 팬티 바람에…. 그러니까 어휴~ 이건 아니다, 하면서 사람 백윤식으로서는 갈등이 심했습니다. 하루는 ‘이거 한번 해볼까?’했다가, ‘아니야, 내가 왜 여기서 고생을 해. 편하게 가자.’이러기도 하고. 그런데 싸이더스 차승재 대표, 김선아 프로듀서, 장준환 감독이 워낙 정중하게 제안을 하셨죠. 그래서 안심하고 참여를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배우로서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있는 우리 큰 아들, 백도빈 군이 항상 저한테 들어오는 책을 다 보고 얘기를 해주거든요. 근데 그 친구가 저한테 이 작품은 한번 덤벼볼 만 하다고 하더라구요. 그 친구가 용기를 많이 줬고, 영화사 측에서도 제가 참여하게끔 정성을 다해주셨구요.

오기민 | 시나리오를 보고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백윤식 | 그건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그건 비밀인데.(웃음) 우선 와 닿아야 돼요. 제가 갖고 있는 조건과 맞아야 되고, 스토리가 스토리다워야 되고.

오기민 | <범죄의 재구성>은 어떤 점이 와 닿으셨나요?

백윤식 | 그건 딱 받았을 때부터, 뭔가 있었어요. 저나 다른 배우들이나 처음 시나리오를 접하면 본인 역할 위주로 보고난 뒤에 전체를 보게 되는데요. 근데 내 중심으로 봤을 때, ‘요거는 왠지 나 아니면 맛이 안나겠다’(일동 웃음) 그런게 종종 올 때가 있어요. 그런 걸 보고 ‘휠(feel)’이라고 하나요? 아무튼 솔직한 심정이 그랬어요. 이건 내가 아니면 표현을 극대화할 수 없지 않겠나. 그리고 난 다음에는 감독을 중요하게 봅니다. 네, 대단히 중요하죠. 그리고 영화사 봅니다. 영화사는 왜 보냐하면 창작활동의 현실적인 측면을 뒷받침해줘야 하니까.

오기민 | 최근 세 작품을 보면 70년생으로 나이가 같은 데뷔감독 두 분, 장준환, 최동훈, 그리고 임상수 감독님과 함께 작업하셨죠. 그 세 감독의 차이나 특징은 무엇일까요. 그분들이 없는 자리니까 좀 씹죠, 뭐.(웃음)

백윤식 | 네.(갑자기 일어나서 웃옷을 벗으면서) 아, 좀 벗겠습니다.(일동 웃음) 벗으면 뭐, 화끈한 얘기를 해주나 싶으시겠지만, 그건 아닙니다.(웃음) 먼저 장준환 감독. 책 받을 때, 차승재 대표, 김선아 프로듀서랑 같이 장감독이 함께 정중하게 나오셨죠. 근데 차승재 대표가 이 친구가 천재라는 거에요. 야, 천재들이 영화계에 있다니, 그러면서 얼핏 봤더니 얼굴이 평범해보이진 않더라구요. 첫인상이 그랬어요. 그래서 작품을 보니까 쫌 이상하더라구. 야~ 희한한 친구 다 있네. 자기가 썼을 텐데, 이런 발상을 했나. 배우는 원래 감독을 신뢰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서 작품의 부가적인 가치가 발생하는 거고. 그리고 장준환 감독은 꼭 소년 같에요. 내가 술먹다가도 그런 얘기를 했는데, “장감독은 그거 세상 풍파를 어떻게 헤쳐나갈꺼야”라고 했죠. 처음엔 오해를 했죠. 뭔가 이것과는 다른 이중적인 게 있겠지, 저게 다는 아니겠지, 했는데, 그게 다인거야.(웃음) 건드리면 상처받을 것 같고. 나도 만만치 않은 사람인데, 내가 볼 때 안쓰러워보일 때가 있는 거야. 그런데 고집은 꽤 쎄요. 그런 건 좋은 거죠. 하지만 주관에 집착하다보면 주위에 스트레스를 많이 주기도 하죠.(웃음) 객관적인 주관을 가져되는데, 이건 참 어려운 얘기죠. 장준환 감독도 편집 끝내고 영화가 좋은 평을 받고 나니까 나한테 작업과정에 있었던 얘기를 하면서, 백선생님 말씀이 맞는게 있다는 얘기도 하더라구요. 지금도 자주자주 봅니다. 보면 볼 수록 좋아요.

최동훈 감독은, 그 감독도 또 천재라고 하더라고.(웃음) 그래서 보니까. 나는 왜 이렇게 천재들만 만나나. 천재를 알아주는 사람은 또 천재 아닙니까.(웃음) 어쨋거나 최동훈 감독은 같은 천재라고 해도, 성격에선 차이가 있어요. 사고방식은 비슷한데, 성격은 달라요. 성격이 다르니까 일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다르죠. 그 사람은 촬영을 나가면 맨날 가정방문을 해요. 그게 뭐냐면, 우리는 원래 촬영이 끝나면 술자리를 안 하려고 하거든요. 배우들이야 다음날 쉬는 경우도 있지만, 감독은 전체를 끌고 나가야 되니까 그게 아니잖아, 작업에 충실하라는 의미에서 안 괴롭히려고 하는데, 이 친구는 맨날 문을 똑똑 두드리고 다녀요. 꼭 빈손으로 안 오거든요. 캔 맥주 몇 개 가지고 옵니다. 그게 가정방문이죠. 결국은 배우하고 계속 얘기하면서 시간을 가지고, 뭔가를 나름대로 풀어나가려는 거죠. 근데 그게 캔맥주 몇개 가지고 됩니까. 그러다보면 몇 병 더 가져와, 이러고(웃음), 나중엔 우리 나가서 한잔하지, 이러고. 나갈 때는 박신양군이나 배우들 총집합 시키는 거죠, 뜬다고. 그런 시간이 많았어요. 아주 편해요. 항상 웃는 낯이고. 그 친구도 지금도 계속 만나고 있습니다. 그 친구도 천잽니다.

그리고 임상수 감독. 또 대단히 문제가 있는 감독입니다.(웃음) 저는 처음에 임상수 감독이 최동훈 감독의 사부라는 걸 몰랐어요. 최감독이 임감독 밑에서 조연출을 했거든요. <그때 그사람들>의 경우 내용 자체가 그러니까, 숙고의 기간이 길었습니다. 그랬더니 임감독이 어느날 부담없이 미팅을 하자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준비를 하고 전투에 나가려고 많이 주변에 물어봤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작품은 뭐가 있고. <처녀들의 저녁식사>, <바람난 가족>을 봤는데, 참 독특하더라고. 만나서 얘기를 해보니까 전자의 두 감독도 그랬지만, 얘기가 잘 풀려 나가요. 임상수 감독은 첫날 점심 먹자고 만나서는 프로듀서랑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다가 결국은 까페같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죠. 근데 갑자기 많이 보던 친구가 딱 나타나는데, 최동훈 감독인거야. 그래서 그렇게 합석해서 새벽까지 먹었습니다. 첫미팅을 아주 허심탄회하게 했어요. 얘기하다보면 정치적인 얘기도 나오기 마련인데, 그 때는 둘이서 눈을 똘망똘망 뜨고 굉장한 토론을 하더라구요. 임상수 감독, 쿨 합니다. 독특한 연출감을 가지고 있잖아요. 시나리오 보면, 화장실 신이 있어요. 그래서 그걸 보고, 내가, 이거 그냥 안 넘어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데요. <바람난 가족>을 보면 김인문씨가 병원에 가는데 사정없이 벗더라고. 엉덩이를 다 까고. 그런데 화장실은 오죽할까, 싶었죠.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독특하고 연출이나 소재도 독특하잖아요. 최동훈 감독의 사부인데 오죽하겠습니까. 그 사람도 천잽니다. 지금도 만나고 있습니다.

오기민 | 사실 한국영화사에는 7,80년대에 일정한 단절기가 있죠. 그 이전 영화사나 감독, 배우 중 남아계시는 분들이 거의 없죠. 그래서 저희가 중견연기자분들을 만나면 세대차이가 생기면서 대화가 힘들어지고, 어려워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면에서 이 세 명의 만만찮은 감독들과 작업을 유쾌하게 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선생님께서 많이 오픈을 하시기 때문에 가능하신것 아닐까요. 

백윤식 | 아, 감사합니다.

오기민 | 사실 제가 묻고 싶은 것은, 그 세 인간 중에 어떤 사람이 제일 성격이 드러웠나요?(웃음)

백윤식 | 흔히들 임상수 감독이 꽤 그럴 것 같다고 하죠. 하지만 저도 만만치 않거든요. 일단 작업이 들어가면 감독과의 관계에서 아닌 건 절대 양보 못하죠. ‘디스커션’ 위주로 가고, 감독을 최대한 배려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면 아닌 거니까. 근데 임감독은 내가 뭐라고 말하면, 잠깐 생각해요. 그리고는 OK 그래요. 쿨하잖아요.(웃음) 사실 임 감독은 프로듀서도 갈아치울 정도로 대단한 사람인데, 나하고는 그런 게 없었어요. 세 감독 다 그래요. 그래서 내가 나도 참 문제가 있는 친구구나, 반성을 해봅니다.(웃음) 장준환 감독? 일할 때는 좀 대립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게 다 작품을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한 거니까, 인간 대 인간의 대립이 아닌, 감독과 배우의 대립이죠. 결국 결과는 좋았고. 이렇다할 만한 건 없습니다. 흡족한 대답을 못해드려서 좀 죄송합니다. 나중에 세 감독과 미팅할 때 한번 참석을 하셔서, 내가 왜 이렇게 얘기하는지 아셔야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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