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영화인 7인 특강 전문 [3] - 박찬욱 ①
2005-08-02
사진 : 이혜정
정리 : 문석

이성욱 | 일단 <친절한 금자씨>가 한참 후반작업 중인데, 오늘 와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어제 잠을 많이 못 주무셨다더라고요. 약간 피곤하신 상태인데, 박수로 환영해주시기 바랍니다. (박수) 그리고 오늘 박찬욱 감독님의 작품론에 대해 말씀을 나눠주실 남동철 <씨네21> 편집장이십니다. (박수) 보통 우리가 특강 앞 부분에 여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박찬욱 감독님은 여러분들과의 대화 속에서 좀 더 많은 것을 얘기하고 싶다고 하셔서요, 여는 말 없이 곧바로 두 분 간의 질의 응답 형식의 이야기를 먼저 진행하고요. 예전 특강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궁금한 것이 많으실 것 같아서 그 시간을 조금 늘려서 진행할까 합니다. 그러면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가벼운 질문을 통해 본론에 들어갈까 합니다. 아무래도 궁금증이 드는 게 <친절한 금자씨>가 어떤 모습으로 나올까 하는 것인데, <씨네21>과 예전 인터뷰를 할 때도 시나리오 조차 구해보기 어려운 철통같은 방어 속에서 인터뷰를 딱 한번 했었는데, 일단 촬영이 다 끝났고 편집도 마무리가 되는 상황에서 감독님께 <친절한 금자씨>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간단하게 듣고 본론으로 들어갈까 합니다.

박찬욱 | 현재 편집까지 끝난 상태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양수리의 블루캡이란 업체에 가서 이 영화의 사운드에 대해서 처음으로 상의를 하고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보면서, 이 장면에서는 자동차 소리를 어떻게 넣자라든가 이 대사는 동시녹음이 별로 안 좋으니까 새로 녹음을 하자라든가, 그런 얘기를 나누고 왔습니다. 그리고 CG가 제법 있는데, 그 업체도 <남극일기>라는 아주 괴물같은 영화를 만나서 너무 오래 시달리고, 그래서 다들 기절해 있습니다. <친절한 금자씨> 일을 전혀 하지 못했어요. 그것도 빨리 시작해야 되고, 동시에 이렇게 진행되는 거죠. 그리고 ‘D.I’(Digital Intermediate)라고, 요즘에 많이 하는 디지털로 색보정을 하는, <남극일기>라든가 <달콤한 인생>이라든가 그런 영화들이 그런 과정을 거쳤는데, <친절한 금자씨>도 그런 것을 해야 돼요. 그런 종류의 후반작업들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어떤 영화가 될지… 어허… 확실한 것은 <복수는 나의 것>과도 다르고, <올드보이>와도 다른 영화라는 것은 사실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점에 대해서만큼은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편 중에 제일 이상한 영화…. 그것도 확실해요. 이영애 양이 하는 행동이, 표정이나 뭐 말투나 이런 것이, 무슨 생각으로 저러고 다니는지 잘 알 수 없어요. 그래서 혹시 티저 예고편을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거기 보신 느낌대로 저 사람은 머리 속에 어떤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을까, 하는 굉장히 궁금한 기분이 드는 영화죠.

그리고 앞의 두편이 좀 뭐랄까… 두껍게 칠한 유화같은 그런 비주얼이라면, 이 영화는 그것보다는 수채화에 가깝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모르겠어요. 그거는 앞에 말한 D.I 작업을 거치고 하다보면 약간 변하기 때문에 아닐 수도 있죠. 이렇게 참 모호한 얘기만 하고 있네. 그리고 폭력묘사는 예전만큼 강하지 않고. 또 그러나 전체적으로 감도는, 그러니까 영화 마지막 한 30-40분 동안은 아주 긴 폭력신이, 굉장히 길 것 같게 늘려놓은 것 같은 무드예요. 한 두세개의 커다란 시퀀스가 큰 폭력장면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은…. 막상 찌르고 쏘고 하는 그런 장면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되게 기분 좋지 않은…. 그런 게 많이 나오죠. 이렇게 말하니 굉장히 괜찮은 영화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웃음) 아이 참 모르겠어요. 영화가 어느 시점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탁, 수정하는 순간이 나와요. 한 3분의2 쯤 갔을 때. 그게 이 영화의 반전이라면 그게 반전인데. 그것은 대단한 비밀이 밝혀졌다거나 그런 것 보다는, 영화가 갑자기 궤도수정을 하기 때문에 당황하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만든 사람인 제가 봐도 그 장면에 왔을 때 왜 딴 데로 가지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들어요. 그것이 뭐 매력이라면 매력일테고, 그것이 실패하면 영화가 왜 딴 데로 갈까, 그동안 기껏 적응해온 관객으로서는 굉장히 당황하고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다시 적응하는데 좀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만약에 이 영화가 흥행에 실패한다면, 내가 기자분들에게 미리 얘기해두겠는데 만약에 실패한다면 그것 때문이라고 쓰시면 돼요.(웃음) 어차피 보지 않은 작품에 대해 미리 뭐 이렇게 얘기하려니까 막연한 소리같긴 한데, 이 정도로….

이성욱 | 7월말에 이 말씀에 대해 확인하게 될 것 같고요.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남동철 | 감독님의 영화에 대해서 보통 인터뷰를 하는 경우는 아주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에 ‘왜 이렇게 하셨어요’, ‘어떻게 하셨어요’, 이런 얘기들을 주로 하게 되는데, 오늘 이 자리에서는 그런 얘기보다는 좀 더 뒤로 물러 나와서 감독님의 연출세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그런 얘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질문도 그런 종류로 뽑았는데, 먼저 박찬욱 감독님 영화가, 예를 들면 <복수는 나의 것>같은 경우에는 그 영화를 보고 히치콕을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았었는데, 전작인 <올드보이>의 경우에는 미국에서 나온 평들에서 히치콕이란 이름이 많이 나왔어요. 박찬욱 감독님이 예전에 히치콕을 굉장히 좋아했었다고 알고있고, 언젠가부터는 히치콕을 예전만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말씀도 하셨거든요. 사실은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더라도 히치콕의 영향? 그리고 반전과 미스터리? 이런 부분들이 좀 드러나는데 과연 박찬욱 감독이 좋아했던 영화들의 궤적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럴텐데, 옛날에는 어떤 영화를 좋아하다가 점점 그 영화가 안 좋아지고, 또 다른 어떤, 전혀 몰랐던 감독의 영화가 좋아지는, 그런 경험을 다들 할텐데 과연 박찬욱 감독님은 궤적이 어떻게 될까가 참 궁금하거든요.

박찬욱 | 히치콕에 대해서는 여러나라에서 했던 여러가지 인터뷰에서 언급되었고. 그것은 대개 그런 질문을 받았기 때문인데, 왜냐하면 영화사의 해외 배급하는 데서 만든 보도자료에, ‘대학 시절에 히치콕의 <현기증>을 보면서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가 들어있으니까 당연히 그것이 현지 언론에도 자주 인용되고, 또 한번 기사가 나오면, 인터넷 시대에 모든 기자와 비평가들이 공유하게 되니까 그 질문을 자꾸 던지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인터넷 시대에는 매체를 만나도 질문이 항상 비슷해지는, 그런 일이 생겨요. 그런데 물론 그것은 약간 과장된 감이 있긴 하나, 어쨌든 대학 시절에 제일 큰 영향을 받았던 감독인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현기증>을 보면서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도 사실이죠. 그러니까 그건 굉장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올드보이>에서 그런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는 것은, 사실 현대의 스릴러를 만드는 데 있어서 히치콕의 영향이 조금이라도 보이지 않는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오히려 그것이 어려운 일이 될 거예요. 어떤 최소한 장르적인 무언가를 갖고 있는 스릴러영화라면 어느 영화에서나 다 그 흔적이 발견될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영화관을, 극장을 제집 드나들 듯이 들락거리던 그런 사람은 아니었고. 그래서 뭐 흔히 말하는 극장에 뒷구멍으로 몰래 숨어들어가서 자기 연령으로 볼 수 없는 영화를 보다가 들켜서 혼나고 쫓겨난다든가 그런 종류의 일화는 없습니다. 그저 옛날 TV에서 했던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 그런 데서 영화를 많이 보게 됐고. 대개가 할리우드 고전들이었죠. 다른 종류의 작품들도 있었지만, 기억되는 게 대개 그것들이고 히치콕 영화도 거기서 많이 봤어요. 히치콕의 컬러영화를 흑백으로 많이 본 거죠. 제일 많이 본 영화는 마빈 르로이의 <워털루 브릿지>였던 것 같아요. <애수>라고 한국에서 소개됐던. 그 영화는 어머니가 좋아하셨기 때문에 TV에서 되풀이할 때마다 봤어요. 철든 이후로는 멜로드라마는 거의 보지 않았는데 그때 본 게 다인 것 같아요. 그리고 수많은 웨스턴들이 기억나요. 웨스턴은 지금도 굉장히 정말 노스탤지아를 갖고 있고, 할리우드 사람이 영화를 만들자고 찾아오면 제일 먼저 제가 하는 대답이 웨스턴을 만들고 싶다고 그런 얘기를 해요. 만약에 만든다면 웨스턴을 하고 싶다고. 왜 그러냐하면 영어로 된 영화, 할리우드 돈으로 만드는 영화를 만약에 한다면, 굳이 여기 한국 땅에서도 만들 수 있는 영화를 할 필요는 없으니까. 정말 만약 미국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영화라면 그건 그런 데서 할 가치가 있겠죠. 제일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게 웨스턴 장르 아니겠어요? 오승욱 감독이 늘 얘기하는 만주 웨스턴을 찍지 않는 한은, 웨스턴다운 웨스턴을 찍자면 영어로 찍어야겠죠. 또 웨스턴 장르하면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을 비롯한 스파게티 웨스턴에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비미국인, 또는 비영어권 출신 감독이 가장 미국스러운 장르를 만들어서 성공한 역사 전례가 있는 그런 분야이기도 하죠.

어… 얘기가 어디로 빠졌지? 요즘도, 요즘도, 외국에 나가서 DVD를 사게 되면 제일 먼저 손이 가는게 웨스턴 영화들이에요. 그래서 얼마전에도 윌리엄 웰만 감독의 <옥스보이 인시던트>던가? 옛날 헨리 폰다가 나오는 흑백영화인데, 그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용서받지 못한자>를 만들 때 가장 영향 받았다고 얘기했는데, 그 작품은 옛날에 어렸을 때 ‘명화극장’에서 보긴 봤어요. 그런데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그랬는데. 그래서 굉장히 궁금했어요. <용서받지 못한자>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인데, 또 그 영화에 영향을 줬다니까 꼭 다시 보고 싶었는데, 그게 호주에서 DVD를 찾아서 다시 봤어요. 한 영화를 두번 보는 일은 참 드문 편인데, 그 영화는 그렇게 됐어요. 아주 행복한 경험이었어요.

그 다음에는 무슨 영화를 좋아했냐면, 제임스 본드 영화를 좋아했어요. 숀 코너리 시절에. 제임스 본드 영화들은 예전 소년들이 무슨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나 그런 것을 읽으면서 상상의 바다로 나갔다면, 저는 그런 영화들이었던 것 같아요. <골드핑거> <닥터 노> 이런 종류의 영화들이. 그런데 그런 영화를 지금 보라면 그렇게 썩 즐겁게 볼 것 같지는 않아요. 한번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007 영화 중 가장 컬트가 되어버린 <007 여왕폐하대작전>이라고 있어요. 피터 헌트라는 저주받은 감독이 만든 영화인데 그걸 너무나 재밌게 봤었거든요, 옛날에는. 그것을 DVD로 다시 봤어요. 그런데 그때만큼 재밌지는 않더라구요. 아무래도 007은 좀 유치하고, 키치적인 허영심으로 가득찬 그런 영화들이어서 이제는 좀 그냥 옛날의 기억으로만, 그런 가치만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피터 헌트란 감독이 만든 작품 중에 <죽음의 추적자>라는 게 있어요. 그런데 그건 다시 보고 싶어요. 찰스 브론스과 리 마빈이 주인공이에요. 어드벤처 액션영화인데, 내가 좋아하는 두 사나이가 주인공인 작품이라 어떻게 구해볼 수 없을까, 지금 찾고 있습니다.

그런 영화들이 다 미국영화들이죠. 지금까지 제가 얘기했던 것들이. 확실히 어린 시절에는 볼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까 그랬겠지만 미국영화에 많이 매료돼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은 영화라는 것이 펠리니의 <길>이라든가 <자전거 도둑>이라든가 그런 종류의 영화들은 유럽 아트영화들 중에서 한국에 조금씩 소개됐던 작품들이고, 나머진 잘 몰랐어요. 아, 그리고 또 왕우로 대표되는 홍콩의 무협영화들을 많이 본 세대에 속하는데 저는 별로 못 봤어요. 그래서 오승욱 감독을 만나면 잘 얘기가 안 통하는 게 그런 것 때문이죠. 오승욱하고는 동갑이고 친구인데 전혀 딴 세상을 산 것 같아요. 서울에서 영화를 좋아했던 어린 아이들이었는데 전혀 딴 세계를 살았어요. 나는 장철 감독 영화를 한 편도 못 봣어요. 그건 커서 봤지. 영화광이 된 다음에 호기심으로 찾아본 거지. 어렸을 때 본 적은 없어요. 그때 오승욱처럼 그렇게 많이 봤다면 또 달라졌을 것 같아요, 내 세계가. 지금 보면 저 영화를 어렸을 때 안 보길 잘했구나. 그랬으면 진짜 삐뚤어졌겠다, 그런 생각이…(웃음) 많이 들어요. 어, 진짜 굉장히 너무나 매력적인 세계더라고요. 요즘에 스펙트럼 DVD에서 오승욱-주성철 음성해설판, 또는 류승완-주성철 음성해설판 장철 감독의 시리즈를 나올 때마다 사서 보는데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그렇게 할리우드의 고전들을 중심으로 해서 어린 시절의 영화목록이 채워지는 거고. 그리고 이제 대학을 들어왔는데 거기서 히치콕을 집중적으로 보게 됐어요. 그리고 <현기증>은 그때나 지금이나 히치콕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히치콕 영화로서는 좀 이질적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약간 다른 분위기의 영화인데. 글쎄, 그렇게 말하기에는 <열차의 이방인>이 조금 아쉽다. <열차의 이방인>도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그 두 편이 나머지 영화들을 합친 것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열차의 이방인>이 지금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된다고 하는데… 그거 누가 만드는 거죠? 지금 한대요, 찍고 있대요. 그래서 그 영화도 나오면 보고 싶어요. 구스 반 산트처럼 바보짓을 안 하기를. (웃음) 그래서 <현기증>이 가진 그 몽롱한 분위기 있잖아요. 아주 햇살이 찬란한, 날씨 좋은 대낮에 샌프란시코의 언덕이 많은 그 동네를 운전하면서. 그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아도 영화를 볼 때는 정말 끝없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 미행. 미지의 여자를 따라서 계속 미행을 천천히 하는 운전 장면들이, 그리고 그 여자가 가는 곳을 따라 들어가보면 거리에서 봤던 것과 좀 다른, 약간 어둡고 서늘한 분위기의 미술관이라든가, 그런 데를 따라다니는 그 여행이, 스카티, 제임스 스튜어트의, 그러니까 어떤 여자를 따라다니는 건데 결국은 그것이 자기를 찾아가는 여행이죠. 저는 그래서 모든 비밀이 밝혀지는 후반부 보다는 뭔지 전혀 종잡을 수 없이, 이 영화가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이 넋놓고 끌려다니는, 스카티가 미행하는 것처럼 관객도 스카티의 내면을 계속 미행하듯이 끌려다니는 그 앞부분이 훨씬 더 좋아요. 그것은 히치콕으로서도 별로 전례가 없는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영화를 아주 좋아했고. 아주 좋아했지만 사실은 한번 밖에 안 봤어요. (웃음)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다시 보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런 거 있잖아요 왜, 환상이 깨지고 싶지 않은 것. 그래서 DVD도 갖고 있고, LD도 갖고 있지만 보지는 않았어요.

그러다가 좀 더 모두가 좋아하는 그런 영화, 그런 감독이 아닌 사람들, 작품들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때 뉴욕 쪽의 아벨 페라라라든가 할 하틀리라든가, 그리고 또 좋아했던 사람이 아키 카우리스마키였어요. 그런 영화들이 참 좋아지면서 히치콕의 영화는 좀 비인간적으로 느껴졌어요. 너무 계산돼 있고, 너무 완벽성을 추구하는 영화로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좀 생동감이 없고.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좀 죽은 세계같은. 페라라의 막 거칠고, 완벽과는 거리가 먼 기술, 그리고 스토리도 들쭉날쭉하고, 때론 완결되지 않은 것 같고, 시나리오 없이 찍은 것 같고, 뭐 그런 거친 세계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죠. 물론 그래서 페라라나 스콜세지 같은 영화만이 좋은 영화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히치콕의 영화는 지금도 나한테는 좀 화석같은 느낌을 줘요. <남극일기>에 나오는 맘모스의 화석이라든가. 정말 아름답고 거대한, 그러나 죽어있는 화석. 그리고 그 이후에는 아주 본격적으로 영화광으로서 잡다하게 여러가지 영화들을 좋아하고, 반하고 그랬죠.

지금 현재는 영화를 많이 보지 못해서 더 이상 영화광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어요, 최근 2~3년동안은. DVD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많이 사기는 했는데 뜯어보지도 못한 게 대부분이에요. 요즘에는 베리만 영화들을 제일 좋아하고 아주 늘 감탄하면서 보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촬영 때문에 호주에 갔더니 <킬빌>에 영향을 준 작품이라고 하면서 사무라이 영화들이 많이 출시가 돼있더라고요. 그래서 궁금해서 몇장 사봤는데. 촬영이 끝나면 방에서 노트북으로 봤는데, 아주 깜짝 놀랄 작품들이 많더라구요. <킬빌>은 장난이더라고요. (웃음) 놀랐어요. 에… <슈라유키히메>라는, 여자 검객의 복수극인데 그거라던가, <아이를 동반한 검객> 시리즈 있잖아요, 또 <자토이치>의 오리지널 시리즈라든가,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참, 영화의 세계라는 게 끝이 없구나. 늘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위대한 감독들이,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물론 그 분야를 좋아하는 영화광이라면 너무나 숭배의 대상이었겠지만, 오래전부터. 나는 잘 모르던 세계이기 때문에 이렇게 끝이 없구나 하는 점을 다시 느끼면서 반성하고…. 호주에서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남동철 | 굉장히 길게 말씀해주셨는데. (웃음) 그와 관련해서 한가지 더 여쭤보자면,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감독님의 영화는 모든 요소가 매끈하게 적당하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어떤 한 요소는 과잉, 또는 넘쳐나게 존재하는 그런 영화가 아닌가 가끔씩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히치콕을 예전만큼 안 좋아한다는 감독님의 말씀과 관련되는 이야기일텐데, 모든 것이 적당히 있는 영화가 아니라 뭔가가 넘치는 영화, 말하자면 과잉의 영화라고도 얘기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영화에서 느끼는 특별한 매력이 어떤지 궁금하거든요.

박찬욱 | 그런 영화가 항상 자극적이잖아요. 관객과 언론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는…(웃음) 그런 자극적인 제품을 만드는 게 유리하고, 그런 마음이 분명히 작용하긴 했을 것 같아요. 조금. 그런데 그것보다 진짜 이유는, 어떤 영화를 만들 때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이렇게 딱 생각하는 게 누구나 있잖아요. 그러면 그것을 좀 더 강하게 해야 그것을 제대로 수행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 이유일 것 같고. 히치콕이나 할리우드 고전 감독들이 보여준 완벽하게 안정돼 있고 조화되어 있는 세계, 그것이 한국에서 20세기 후반, 21세기 초반에 영화를 만들 때 받아들이기 힘든 그런 상태인 것 같아요. 그런 세계를 지향하는 것은 아주 한가한 짓이다라는 기분이 들어요. 나중에 더 나이 들어서 어떻게 변할지는 몰라도 아직까지도 그것은 좀 개인의 적성에도 안 맞고 지금의 이 격동하는, 그리고 모든 사람 또는 집단끼리의 여러가지 갈등과 폭발할 것 같은 분노와 뭐 여러가지 이런 상황이 그런 조화로운 세계, 안정된 세계에 있게 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남동철 | 감독님이 민주노동당 당원인 것은 다 아실텐데, 그 점도 관계있다고 얘기할 수 있는 건가요? (웃음)

박찬욱 | 기질이 아마… 민주노동당에 가입한 어떤 사람과 이런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과 기질이 공통된, 작용하는 어떤 동기가 비슷한 게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요.

남동철 | 박찬욱 감독님 영화에 대해서 <빌리지 보이스>라는 잡지가 쓴 평론 중에 ‘현대영화의 지형도에서 셰익스피어와도 같은 영역을 차지한다’란 표현이 있었어요. 감독님의 전에, 그러니까 저희 7주년 때 ‘젊은 감독, 관객과 만나다’란 행사를 했었는데 그때 언급하실 때 일종의 극작법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이야기의 갈등구조, 그리고 이야기의 전개방식 이런 것은 셰익스피어를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감독님이 셰익스피어에게서 배운 것, 또는 셰익스피어에서 이제는 벗어난 지점 뭐 그런 것들이 어떤 것일까 여쭤보고 싶습니다.

박찬욱 | 짐작하시겠지만 셰익스피어는 다 읽지는 않았고요. (웃음) 많은 양의 희극과 소네트 이런 것들은 읽지 못했습니다. 주로 비극들과 사극이라고 불리는, <헨리 6세>니 뭐 그런 종류의, 그런 것들을 읽었죠. 뭐 딱 집어서 이것을 배웠다고 말하기 난감한 것이, 역시 한번 밖에 읽지 않았기 때문에 잘 기억도 나지 않고 (웃음)… 그런데, 물론 읽었을 때 그때그때 영향을 줬겠고 알게모르게 속에 쌓여있을 것이라 생각은 합니다. 또 그것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도 많이 봤죠. 특히 구로사와 아키라가 만든, <맥베스>를 각색한 <거미집의 성>과 폴란스키의 <맥베스>를 제일 좋아해요. 그런데 역시 이런 얘기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셰익스피어가 다루는 사람들이 가지는 딜레마 상황. 그것이 가장 늘 생각하게 만드는 점이에요. 이렇게 할 것인가 저렇게 할 것인가. 양쪽 어느쪽으로도 갈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어떤 하나의 선택이 무시무시한 결과로 갈 수도 있고, 그냥 안정되게 갈 수도 있다, 어떻게 할 것이냐. 이 딜레마는 항상 주어지는데 우리가 셰익스피어 작품들의 결말은 대개 알고 있으니까, 그때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잘 알면서 숨을 죽이면서 지켜보게 되죠. 그래서 제 영화에서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도덕적인 딜레마가 나는 셰익스피어에서 받은 영향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딜레마를 제시하지 않는 영화는 싱겁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더불어서 좋아하는 장면 하나를 말씀드리면, 햄릿이 자기 숙부를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포착하지만 그가 기도를 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물러나는 장면이었어요. 기도하는 중에 죽이면 어쩌면 천국에 갈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일은 막아야 하기 때문에 그 아까운 기회를 놓아버리고 슥 빠져나가죠. 그 장면이 나한테 큰 감동을 줬어요. 일단은 조금 유머러스하다고 생각했어요. 약간 궤변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정말 철저하게 증오를 갖고 있을 때 그런 가능성까지도 따져보게 되는, 그런 정도의 분노가 감동적이었어요. 그래서 너무나 잔인한 생각인데… 그 동기는 잔인하고 그 결과는 죽이려는 마음을 접는, 반대방향으로 진행이 되는 거죠. 그런 폭력과 잔인성과 또 유머, 상당히 관념적인 생각이죠. 하여간 뭔가 윤리적인 문제에서 되게 복합적인 재미를 선사하는 장면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언제나 그렇게 폭력장면에서의 윤리성, 그러니까 폭력이 수행되거나 또는 지연될 때 발생하는 윤리성에 대해 항상 생각하게 돼요. 그리고 그것의 복합성. 그 모든 것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해요.

남동철 | 이 질문도 관련되는 것일텐데, ‘이야기의 갈등에서 셰익스피어가 도움이 될 것 같고, 캐릭터 형성에는 도스토예프스키나 발자크의 책을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어요. 특히 캐릭터에 관해서, 지금 딜레마를 갖고 있는 인물들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감독님 영화에서는 딜레마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어떤 강박관념처럼 밀고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감독님이 매력적으로 느끼는 캐릭터, 또는 현실의 인물일 수도 있죠. 어떤 인간형을 그릴 때 희열을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박찬욱 | 도스토예프스키와 발자크. 발자크에 대해서는 제 영화와 그렇게 가까워보이지 않죠. 그냥 위대한 작가로서 존경하고, 많이 읽으려고 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죠. 그래서 사람이 살면서 나이가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 직접 만나서 경험해볼 수 있는 성격의 유형이라는 것이, 특히 저는 교유관계가 폭넓지도 않아서 그런 경험의 한계를 뛰어넘는 데 있어서 가장 유용한 작가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발자크를 읽으면 정말 무슨 고은 선생이 <만인보>라는 시집을 내고 있잖아요. 자기가 만나본 1만명의 사람의 초상을 그리겠다고. 그런 것처럼, 고은 선생처럼 1만명을 만날 수는 없어도 발자크를 읽으면 1만명의 사람을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요. 그리고 그 사람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의 탐욕이 항상 시선이 가요. 항상 욕심이 많은 인간들이 거기 꼭 나오는데, 그것이 귀엽기도 하고 재밌어 보여요.

도스토예프스키는 역시 또 윤리의 세계인데, 러시아 사람들의 성격이라고들 하죠. 어떤 하나의 원칙이나 자기의 세계관, 고민거리 이런 게 있을 때, 그것을 대충 생각해보고 치우는 게 아니고 정말 그것의 근본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어떤 관념, 어떤 철학이 등장하면 지겨울 정도로 파고 들어서 끝장을 봐야 이야기가 끝나는 거예요. 그래서 라스콜리니코프가 어떤 해괴한 생각을 한번 품으면 죄없는, 물론 수전노라고는 하지만, 본인에게는 아무 해도 끼치지 않은 할머니를, 그것도 두명이나 아주 잔인하게 죽일 수 있는 거죠. 그건 정말 거기까지 가야 자기의 의문도 해명되는 거고. 그러니까 항상 철학 또는 사상 또는 생활 또는 행동 이런 것이 분리된 게 우리들이기 쉬운데,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에서는 항상 그게 별개가 아니에요. 정말 끝까지 한번 가는 거죠. 그 밖에도 많은 인물들이… 항상 고뇌하는 사람들만 나오는 게 아니고 우스꽝스런 인물들도 많이 나오고. 도스토예프스키는 또 뜻밖에 아주 유머러스한 작가예요. 아주 골치아픈 사람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예를 들어 <영원한 남편> 같은 작품은 거의 개그소설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웃기죠. 또 <죄와 벌>을 봐도 웃기는 장면이 많이 나와요. 라스콜리니코프의 강박관념을 묘사할 때 웃기는 장면도 많이 나오고. 또 <백치>라는 소설도, 제가 참 좋아하는데,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정말 웃기는 사람이에요. 예를 들면 <복수는 나의 것>의 마지막에 4명의 테러리스트가 송강호를 죽이는 장면은 어느정도 <악령>이라는 소설에서 왔다고 할 수 있어요. 거기서도 역시 무정부주의자들인가? 하여간 테러 단체 사람들이 배신자를 처단하는. 아주 추운 겨울인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밤이지만, 배신자를 처단하는 장면이 있어요. 실제 사건에서 가져왔다고 하죠. 그 장면의 묘사가 너무 생생하고 아주 손에 땀을 쥐는 긴장을 일으키는 장면이어서 그것이 마치 영화로 본 것처럼, 그런 기억이 아주 생생해요. 물론 환경도 다르고 뭐 여러가지 다르지만 그 때의 기억을 갖고 만든 게 그 장면입니다.

남동철 | 감독님이 흔히 영화광으로만 많이 알려져 있는데, 사실 문학이나 이런 부분에서 영화를 만들 때 영감을 얻거나, 어떤 창작이나 도움을 얻는 부분은 이런 고전들에서 힘을 얻으셨던 것 같고요. 그런 점에서 또 한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은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 비극을 연상하게 되는데 실제 <복수는 나의 것>에서 뭔가 나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선택을 하고 행동을 하면 그게 결국은 가장 나쁜 선택이 되는, 그런 결과로 이어지는 그런 구조라든가. 아니면 <올드보이>에서도 마지막에 맞닥뜨리게 되는 진실이라는 것이 모든 것이 예정되어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잖아요. <복수는 나의 것>에 대한 평에서 예전 데릭 앨리라는 평론가가 ‘아시아에서 온 희랍비극’이라는 표현을 써서 감독님은 그 표현이 마음에 든다는 말을 하신 적도 있는데. 감독님이 생각하는 그리스 비극의 정신, 또는 그리스 비극에서 뭔가 영감을 얻었다고 할 수 있는 부분, 뭐 이런 것을 여쭤보고 싶네요.

박찬욱 | 데릭 앨리가 <버라이어티> 비평간인데, 그때 제 영화에 대해서 희랍 비극을 처음 언급한 사람이어서 아주 반가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아무도 그 말을 빼고 글을 쓰지 않는 상황이 됐기 때문에 이젠 덤덤한데요. 특히 <올드보이>는 아주 노골적이라 할 수 있죠. 오대수의 혀를 자르는 행위, 딸과의 근친상간, 이런 것은 너무나 <오이디푸스>를 직접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그런 설정이었어요. 사실은 이 스토리를 만들 때 소포클레스를 꼭 생각해서 만든 게 아니었는데, 근친상간 테마가 등장하면서 결국 그런 시각을 피해갈 수 없겠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됐고, 그러면서 그러면 오이디푸스가 눈을 찌르는 행위에 맞먹는 어떤 행위가 등장할 수 있겠구나는 식으로 생각이 발전해갔어요. 그래서 언젠가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지만, 그래서 거기에 상응하는, 오이디푸스가 눈을 찌르는 행위에 상응하는, 오대수가 할 수 있는 일은 애초에는 자기의 성기는 자르는 행동이었어요. 그러다가 그것은 최민식씨의 반대가 워낙 컸기 때문에(웃음), 그래서 혀를 자르는 걸로 바뀌었죠. 그만큼 <올드보이>는 그 영향이 아주 컸던 영화고, 노골적이고 어느정도는 의식적으로 한 면이 있을만큼 관계가 깊은 영화입니다.

글쎄요, 희랍비극이 주는 것은 항상 신의 의지, 신들의 농간에 의해 인간들이 이렇게 풀리고 저렇게 풀리고 그러죠. 희랍비극은 항상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돼요. 장기판의 말처럼 주인공들이 막 움직여지는 것 같은데, 또 어찌 보면 신들은 인간이 하는 노력을 지켜보니까, 완전히 처음부터 끝까지 플랜에 의해서만 그렇게 한다기 보다는 인간이 하는 것을 보면서 어떤 때는 감동을 하기도 하고, 그래서 마음을 바뀌기도 하고 어떤 때는 괴씸해 하기도 하면서 플랜이 바뀌기도 하죠. 그래서 자유의지가 분명히 작용하는 면도 있어요. 그런 것이 하나 흥미롭고. 그래서 결국 인간들은 신의 의지에 따르기도 하고, 또 대들기도 하고. 맞서기도 하는 거죠. 그것이 두번째로 흥미롭죠. 그것은 셰익스피어의 인물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결국 제가 묘사하고자 하는 주인공들은 희랍비극이나 셰익스피어에서 볼 수 있는 종류의 운명과 맞서싸우는 자예요.

한마디로 말하면.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신의 의지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사람이에요. 그것의 패배가 예정돼 있다 하더라도 끝까지 싸우려고 하는 사람이죠. 그렇게 투쟁하려는 유형. 그래서 시작할 때 보잘 것 없었으나 그 투쟁의 과정에서 어떤 숭고한 아름다움을 획득하게 되는,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인간사회의 도덕과는 조금 다를 수 있어요. 오히려 그것은 부도덕하거나 또는 아주… <복수는 나의 것>의 송강호처럼, 그렇게 권할만한 행동을 하지 못하는… 그래서 신하균이 악의를 가지고 한 행동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죽여야 하는. 그리고 또 자기가 해고했기 때문에 온 가족을 다 데리고 죽어버린 팽기사의 아들을 어떻게든 구해보려고 노력했었는데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는 그것마저도 놓아버리죠. 그 아이가 죽었다는 병원에서의 전화를 받고 ‘전화 잘못 거셨습니다’하고 끊어버리죠. 그것은 휴머니티를 상실해버리는 지경까지 나아가버리는 것인데. 또 오대수의 행동도 마찬가지죠. 오대수가 근친상간을 저질렀다고는 하나, 그것은 모르는 상태에서 한 일이었기 때문에 단죄할 수 없어요. 그러나 문제는 에필로그에서 다시금 그 기억을, 딸이라는 사실을 기억에서 지우고자 하는. 그래서 정말 딸인줄 모른다면 이 여자와 자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죠. 그런 것이 인간사회의 도덕을 다 뛰어넘는 짓이고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죠. 그것은 약간 도스토예프스키적으로, 또는 니체적으로 그렇게 가고 싶은 생각은 아니에요, 그것은 그 사람이 비난받을지라도… (핸드폰 진동소리) 잠깐만요… (웃음, 핸드폰을 끈다) 어쨌든 운명과 싸우려고 하는 사람, 싸우는 사람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아름다움이라기 보다는 숭고함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남동철 | 그 안에서 뭔가 감독님이 생각하는 운명론에서의 다른 식의 희망일텐데, 감독님이 자신의 영화에 관해 구원에 관한 영화다, 라고 말하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운명론이 굉장히 처절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과연 어디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하게 마련이거든요. 그런 희망의 근거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박찬욱 | <친절한 금자씨>에 그것이 나와 있습니다. (웃음) <친절한 금자씨>는 ‘복수 시리즈 에피소드3- 새로운 희망’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일동 폭소) 여기서는 주인공이 죽지도 않고, 그리고 <친절한 금자씨>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은 그렇게 어리석은 행동이었고 도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행동을 하고, 또는 아주 잘못된 방식으로 속죄를 하려고 하는 어리석은 여자의 이야기인데. 그리고 그 여자의 구원을 향한 모든 노력은 다 물거품처럼 돼버리죠.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은 관객들이 그 결말을 보면서, 금자에 대해 잘 했다고는 못해도, 애썼다라고, 수고했다 그렇게 말해주기를 바래요. 바보같은 짓인데 그런 몸부림이, 자기 죄를 어떻게든 씻어보려는 몸부림이 그래도 값어치가 있었다. 결국 그녀가 죽어서 나중에 천국에 가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인간의 눈으로 봤을 때는 그것이 정말 수고했다 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제가 말하는 희망은 그 수고에 있어요. 그 길이 끝내 잘못됐다는 것이 밝혀지는 길이어도 그 안에서 노력한 것, 그 수고에 가치가 있고 희망이 있다라고 그런 얘기를 하는 영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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