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영화인 7인 특강 전문 [2] - 백윤식 ②
2005-07-08
사진 : 이혜정
정리 : 오정연

오기민 | 연기자와 감독의 캐릭터 해석이 다를 때가 있지 않습니까. 때론 어떤 장면의 해석이 다를 수도 있고. 최근 세작품 중에서 정말로 옳다고 생각했으나 포기한 게 있었나요?

백윤식 | 그런 건 없었어요. 캐릭터 해석이 다르면 작업을 못 하죠, 처음부터. 캐릭터는 크랭크 인 전에 일정한 합의를 해야 하는 거고, 중간에 디테일이 첨가되는 거니까. 그래서 내가 어떤 제안을 하면 그 세감독 모두 마치 내가 가려운 곳을 긁어준 양, 좋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죠. 물론 이럴 때는 있었습니다. <그때 그사람들>의 한 장면을 내가 재촬영을 해달라고 했는데, 안해주더라고요. 난 세번이나 재촬영을 해줬는데, 자기는 내가 요구하는 걸 한 번도 안 들어주더라고.(웃음) 게다가 재촬영 얘기 자체를 처음부터 내가 말을 꺼낸 것도 아니었거든요. 김부장이 차 안에서 수행원한테 냄새를 맡아보라고 하는 부분, 그게 우리가 탄 차 뒤로 너무 현대적인 차들이 많이 잡혔다면서 다시 하자고 하더라고. 다시 하면 감정이 잘 안나올텐데, 그러면서 찍었어요. 그래서 내가 이거 찍는 김에, 내가 맘에 안 드는 장면을 하나 다시 하자고 했지. 그게 뭐냐하면 나랑 한석규군이랑 김응수군 셋이 “이게 싸나이 가는 길이야”라면서 거사를 모의하는 장면이었거든요. 그 장면은 카메라 두 대를 뻗쳐놓고 찍었는데, 배우들은 카메라가 두 대 있으면 두 대를 다 먹을라고 해요. 하지만 감독은 좋은 것만 쓰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면 배우는 환장하는 거지. 현장에서 감독이 모니터를 보더니, 어떤 카메라의 촬영 분량을 쓰겠다고 딱 정해주더라고. 그렇게 찍었는데, 그게 좀 마음에 안들었어요. 임감독이 세 번을 재촬영을 하는 동안 내가 계속 부탁을 했더니, 마지막 날엔 그 부분을 직접 보고 왔더라고. 그러더니, 자기는 좋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뭐, 녹음이라도 다시 하지?”(웃음)그러니까 “나는 좋아요” 그러는 거야.(웃음) 그래서 내가, 어디 한번 작품 완성되는 것 봐서 잘 못 만들기만 해봐, 죽을 줄 알어, 그랬죠, 농담으로. 아니, 농담이 아니지. 작품 못 만들면 배우가 감독 죽여야죠, 다 믿고 했는데. 근데 시사회를 봤는데 너무너무 맘에 들어요. 용산 CGV VIP실에서, 임감독이 “선생님, 어떻습니까.” 그러길래, “아. 연출 많이 늘었어.”라고 말해줬지.(일동 웃음)

오기민 | 들어온 시나리오 중 거절한 작품이 꽤 있을텐데. 그 중에 이런 건 했었으면 하고 미련을 갖게된 게 있었는지.

백윤식 | 없었어요. 사실 그런 건 나만이 알고 있어야 하는 거거든요. 사실 전 함께 일하지 못한다는게 항상 미안하고 그렇거든요. 물론 미련이 없는 것도 아니죠. 하지만 결정을 했을 때는 다 털어버려야 되는 거거든요. 자꾸 갖고 있으면 병 나요. 안타까운 건, 제안이 들어오는 배역의 연령층이 심하게 넓다는 거. 4,5년 혹은 10년 후에나 들어와야될 벌써 들어 오더라구요.

이종도 | 들어온 영화 중, 로맨틱한 장면이나, 성애 장면이 들어가 있는 경우는 없었나요?

백윤식 | 직접적으로 하는 건 없더라구요. 눈으로 하는 사랑, 마음으로 갖는 사랑, 그런 거에요. 성인군자 같은 사랑 쪽이 많아요.(웃음)

오기민 | 기존 감독 중 한번 같이 일하고 싶은 감독이 있다면.

백윤식 | 있습니다.

오기민 | 어떤 분인지.

백윤식 | 그것도 얘기하기가 좀 그렇네요.(웃음) 오늘은 참, 나 혼자 안고 가야할 것 들이 많네요.(웃음)

오기민 | 약간 멍청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여지껏 여성연출자랑 작업하신 적은 없으시잖아요. 여성감독과의 작업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백윤식 | 여기 우리 아주 훌륭하신 여성분들이 많이 계신데, 잘못 얘기했다간 큰일나죠. 저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음. 능력만 있다면 아무런 문제 없을 것 같고, 괜찮을 것 같은데요.

오기민 | 너무 말 조심하시면 여기 흥행에 문제 있을 수 있습니다.(웃음) 삶의 무게를 좀 벗어버리시는게 어떤지.

백윤식 | 그래서 지금, 잘 하는 건데.(웃음) 오대표한테 휘말려서 주책없는 소리를 했다가 구설수에 휘말리면 어떡하나.(웃음)

오기민 | 여지껏 작업한 것 중 연기자로서 심적으로 고생한 장면이 있다면.

백윤식 | 작업할 때 심적인 고통받는 건 없어요. 끝나고 나서 심적인 고통을 받은 작품은 있죠. 말씀 안드려도 잘 아시겠지만.(웃음) 육체적인 고통은 좀 있지만 심적으로 고통오면 일 못하거든요. 육체적인 거는 얼마든지 씻어낼 수 있지만, 심적으로 오는 건 좀 심각하죠.

이종도 | <그때 그사람들>의 경우는, 김재규 부장이 심문받는 장면에서 새카만 후배에게 얻어맞기도 하셨는데, 힘들지 않으셨나요.

백윤식 | 맘적으로 힘든 건 아니고, 아무래도 육체적으로 머리를 치니까 안 좋더라구요. 후배고 선배고 관계없이 한국사람들이 머리 건드리는 거 싫어하잖아요. 그런 데다가 저는 김부장이 그렇게 추락하는게 싫었어요. 끝없이 추락하는 모습에 연민이 느껴지더라구요. 이 양반이 왜 이렇게 됐을까, 싶고. 우리는 작업하면서도 끝까지 답을 못 얻었지만, 왜 이렇게 오리무중일까, 싶었죠. 하지만 그게 결국은 모두 남겨진 기록에 의한 거니까. 임감독도 관객에게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그런 면을 한번 생각해보자, 그랬던 것 같아요.

오기민 | <그때 그사람들>에서 함께 출연했던 한석규씨와는 <서울의 달> 이후 오랜만에 만나셨죠. 그 전에는 박신양씨와도 작업을 하셨고. 그 두 배우는 90년대 중반부터 한국영화의 르네상스에 중요한 역할을 한 분들이신데, 두 배우와의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나요.

백윤식 | 둘 다 정통파에요. 박신양씨는 <범죄의 재구성>때, 함께 출연을 하는데, 처음엔 내 연기를 보고 아주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더라고. 나중에 듣자하니, ‘저 양반이 저렇게 스타트를 해서 이 신을 어떻게 마치려고 하나’ 싶었다고 하더라고. 자기의 정공법으로 볼 때는 내 연기패턴이 황당했던 거죠. 극과 극을 왔다갔다하고, 생뚱맞고, 톤 자체도 팍 올라가가도 하고. 그래도 난 박신양씨의 그런 점이 되게 좋아요. 그렇게 정석을 중요시하는 배우의 경우 자기의 연기를 깨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깨기 시작하면, 대단하다고. <파리의 연인>때 박신양씨 같은 경우 이전에 했던 연기 아니었잖아요. <범죄의 재구성>을 하고서 깨짐이 왔다고 봅니다. 굉장히 좋하는 후뱁니다. 가끔 서로 메세지도 띄우고, “야, 너 시청률 최고라며” 하면서. 나는 그 사람이 얼마나 원론적이었는지를 직접 목격한 사람이죠. 한석규도 마찬가지. 둘다 동국대 연극과 출신입니다. 석규 군이 좀 더 위죠. 난 맨날 석규한테, “너 같은 배우들 좋다.”고 만날 말했어요. 같이 공연을 해서가 아니라, 석규군 예전에 <서울의 달>을 할 때 완전히 애기였는데도 그때도 아주 ‘노블’하게 연기를 했어요. 신양군이나 석규군이나, 한국영화의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 준 좋은 배우들이죠. 내가 그 덕을 많이 본다고 항상 말하는데, 어려운 시기에 충무로를 극복하게 만들고, 영화매니아들을 이끌고….

오기민 | 특별히 호흡이 잘맞은 연기자가 있다면.

백윤식 | 그런 원론적인 배우들은 테크닉을 절제를 하기 때문에 상대 연기자한테 충실합니다. 상대방에게 최대한 동화되려고 하고, 튀려고도 안합니다. 석규 군이 몇 년 선배라서 그런지, 그런 부분은 더 많죠. 아주 노블한 신사가 돼 있더라구요. 인격적으로나 배우로서나. 둘 다 전망이 아주 좋다고 봅니다.

오기민 | 인터뷰 중에 보면 처절한 멜로를 하고 싶다는(일동 웃음) 말씀이 있던데.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을까요?

백윤식 | 그것도 좀 잘못됐습니다. (웃음) 그게 감독들이 주로 그런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선생님. 멜로하셔도 되겠어요.”라면서. 이런데서 시작된 거죠. 저도 그런 장르를 원합니다. 그러면 처절한 거는 뭐냐. 드라마가 아름답기만 하면 안되는 거 아니냐, 그래서 처절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고, 그러니까 그 단어를 가지고 괜히 신경들을 많이 쓰더라구요.(웃음)

오기민 | 혹시 사례로 들만한 영화가 있을까요?

백윤식 | 특별히 정해진 건 없어요. 감독님들이 만들어주셔야지, 제가 발을 담그는 거죠.

이종도 |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구를 지켜라>가 개봉을 때 <씨네21>에서 ’엄마는 50에 바다를 발견했고, 백윤식은 50에 영화를 발견했다’고 제목을 달았는데, 선생님께서 한참 동안의 공백기를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게 강인한 체력이 아닐까.(웃음) 선생님 팔뚝을 보면, 웬만한 보디빌더를 능가하는 팔뚝이거든요.(갑자기 팔뚝을 들어보이는 백윤식, 일동 감탄과 함께 웃음) 체력관리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백윤식 | 그냥 보약이라고 생각하고 틈나는 대로 열심히 운동합니다.

이종도 | 비법이 하나 있지 않나요? 듣기로 계룡산에도 가셨다고.(웃음)

백윤식 | 아, 마음공부. 계룡산까지는 아니고. 모 후배가 마음공부, 기수련이라는 게 있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그건 스승을 잘 만나야 되요. 한동안 심취했는데 지금은 바빠져서 못하고 있죠. 원래는 하루에 한두시간 해야 되는데, 지금 그거 하고 있을 수가 없으니까.

오기민 | 50에 영화를 발견했다고 하면서 근사한 이야기를 할 줄 알았더니, 체력 얘기는 너무 맥 빠지지 않나요?(웃음) 그 질문을 마무리하자면, 제2의 전성기 혹은 영화에서의 제1의 전성기를 맞이해서 감회가 어떤지 말씀해주시죠.

백윤식 | 저는 제 옆의 두 분도 참 우수한 인적자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종도 | 천재가 아니라는 얘기군요.(웃음)

백윤식 | 아, 천재죠. 천재는 기본이고. 풀어서 얘기하면, 예전엔 필름 쪽으로 우수한 인재들이 안나왔거든요. 창작직업은 보장도 안되고, 답이 안 나올 때가 많아요. 물론 자기가 능력만 있으면, 좋은 작품만 만들면 영원히 인정받을 수 있죠. 물론 예전 활동했던 분들이 처진다는 얘기는 아니고, 당시에도 그분들이 어려운 과정을 꾸려주셨지만, 지금은 좋은 길이 많이 뻗쳐 있는 분들이 다, 이쪽으로 진출을 합니다. 제가 목격하고 겪어봤습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영화가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거든요. 게다가 여기 와주신 분들, 영화를 좋아하는 매니아 분들의 힘이 합쳐져서, 이 결과를 낳은 것이죠. 그렇게 우수한 인적자원들이 각 부분에 포진되고 있어서 그 덕을 무지무지하게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고, 좋은 모습 계속 보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일동 박수)

관객과의 대화

관객1 | 최근 세 작품 모두 흥행이나 비평에서 일정한 성공을 거두셨는데, 차기작품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습니다. 설명을 해주시고, 혹시 미국의 워렌 비티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감독을 겸하는 배우가 되실 생각은 없으신지.

백윤식 | 감사합니다. 저는 현재로선 배우로서 만족하고 있구요. 지금으로선 배우로서도 풀어갈 게 너무 많기 때문에. 하지만 장담은 못하겠네요. 그건 숙제로 남겨놓겠습니다. 차기 작품은, 실은 그것 때문에 이렇게 머리나 수염을 기르고 있어요. <싸움의 기술>이라고 코리아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하고 25일에 크랭크인하는 작품입니다. 거기서는 재희라는 친구와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됐죠.

오기민 | 신한솔 감독의 데뷔작이죠.

백윤식 | 아, 감독 얘기 나오니까, 생각나네. 그 친구가 최동훈 감독 바로 밑인데, 또 천재에요.(웃음) 내가 그분한테 “장준환과 최동훈을 합쳐놓은 스타일이다.”라고 했더니, “저는 장진감독이나 봉준호 감독도 좋아합니다” 그러더라구. 그래서 내가, 그거야 그렇지만 내가 볼 땐 좋아하는 건 당신이 좋아하는 거고, 나야 내가 겪은 감독을 기준으로 얘기하는 거라고 했죠. 스타일이 똑같다는 건 아니지만, 장준화 더하기 최동훈 하면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신한솔 감독은 최동훈 감독 한 기수 밑인데, 영화아카데미를 1등으로 졸업했대요. 기대해볼만 하죠.(웃음)

관객2 | 실제 뵈니까 제 생각에는 조인성보다 훠씬 낳으신 것 같습니다.(웃음) 한국영화 소재가 아직까지는 다양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원하시는 소재가 있으신가요.

백윤식 | 조인성 부분은, 음.(웃음) 여기 오기 전에 제가 헬스클럽에 들렀다 왔는데 마침 조인성이가 왔더라구요. 열심히 복근운동하고 있는데, 이렇게 큰 아이가 인사를 하더라구요. 오랜만에 봤습니다. 사랑하는 애기같은 후뱁니다. 잘생겼죠, 조인성이. 그리고 장르는 이렇게 생각해요. 어떻게하다보니까 제가 한국영화 발전의 커다란 수혜자가 됐고, 이런 상황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에 대해 책임감과 고마움도 많이 느낍니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할리우드처럼, 나이 많은 배우와 젊은 배우의 대립을 다룬 작품같은 것도 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동료배우들과 함께 출연할 만한 다양한 영화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관객3 | 영화학도로서 질문드립니다. 예전보다 영화계의 상황이 좋아졌다지만, 배우는 학생 입장에선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길이 굉장히 어둡게도 느껴집니다. 누구나 한번쯤 슬럼프에 빠지게 될 텐데, 선생님은 어떠셨나요. 어떤 기간이었고,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백윤식 |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이런 시대가 왔는데도, 그쪽으로 공부를 하시는 입장에선 다르게 느껴지고. 근데 그건 어느 분야나 다 마찬가집니다. 그건 본인 스스로 극복하셔야 되는 문제고.(웃음) 사실 지금 눈만 돌리면 얼마든지 좋은 것 많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한 마흔 정도 됐을 때, 내가 만일 다른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해봤지만 회의한 적은 없어요.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건 한 우물을 파라. 그러면 극복이 안되겠습니까.(웃음)

관객4 | 한류 열풍 때문에 영화배우들이 다시 TV로 돌아가신 분들은 있지만, 예전엔 영화를 하시던 분들은 계속 영화를 하시잖아요. 오랫동안 TV를 하신 입장에서, 다시 드라마 작업을 하실 의향이 있으신지. 그리고 또하나는 영화를 선택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게 무엇인지 하나만 꼽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백윤식 |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책이 가장 우선이죠. 책이랑 자기 역할. 아까 말씀드렸던 것 모두 하나라도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지만 굳이 질문을 하신다면 그렇게 대답하고 싶네요. 그리고 한류에 대한 것은, 한류 자체는 좋은 현상이지만 저는 그게 이제 한국영화나 드라마가 상품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배우 한 두사람의 인기몰이에 의해 시작이 됐지만, 이제는 작품으로 전세계에 한류를 일으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TV활동을 주로 했지만, 계속 영화와는 관계를 맺고 있었어요. 단지 그게 이루어지지가 않았죠. 그런 기간이 길어지면 아예 선택 자체가 어려워지더군요. 한동안 떠나있다보니까 함부로 선택하기가 어려워요. 그러다가 이런 기회를 만났죠. 배우는, 자기를 필요로 한다면, 연극이든 영화든 하나로 한정짓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배우는 활동의 무대를 제한해선 안되거든요. 할리우드에서도 유명한 배우들이 애니메이션에 목소리 연기 같은 것도 흔쾌히 하지 않습니까. 목소리가 필요하면 목소리를 빌려줄 수도 있는 거고. TV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좋은 작품, 좋은 역할있으면 언제든지 하고 싶습니다.

관객5 | 배우를 연기를 잘하고 못하는게 어떤 걸까요.

백윤식 | 연기를 잘한다는 표현은 좀 어렵구요.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죠. 사실 배우의 작업은 무한대거든요. 사실 완성된 영화를 보고 배우가 백프로 만족할 수가 없죠.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는 거고. 배우 입장에서 말씀드릴 것은, 영화를 보시면 관객들도 알잖아요. 저 사람이 편안하게 하고 있고, 어색하지 않다는 걸. 어떻게하면 잘한다, 이런건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셔야 하는 겁니다. 기초적인 부분이 있고, 연기에도 일상적인 연기, 목적적인 연기, 이런 식으로 나뉘고, 구분하자면 한이 없습니다. 시각적으로 일단 어색하지 않다는게 중요하죠.

이종도 | 선생님께서 대본을 50번 정도 반복해서 보신다던데. 

백윤식 | 50번이라, 그것도 약간 잘못됐네요.(웃음) 그 정도로 제가 독해를 굉장히 중요시 여긴다는 거죠. 저한테 들어오는 시나리오도 성심성의껏 다 읽습니다. 어떤 건 읽으면서 화가 막 나는 시나리오도 있지만. 저는 원래 시나리오 읽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일단 선택을 하고 나면, 내가 완벽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독해를 많이 해야 된다고 보거든요. 그건 배우마다 다르죠. 자기역할 중심으로도 읽고, 전체적으로도 읽고.

관객6 | 저는 창립작품을 준비하는 신생영화사에서 나왔습니다. 한국 영화계에서 배우의 힘이 세지고, 배우가 공동제작을 한다던지 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백윤식 | 이건 옆에 앉아계신 오대표님이 답변해야 맞는 질문인데. 물론 저 나름대로 느끼는 건 있습니다. 일단 매니지먼트사가 공동제작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기획사가 연기자의 극대화된 힘을 가지고, 그렇게 지분을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저는 시스템 안의 제작자들이 모두 예술가적인 개념을 가지고 계신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제 옆에 계신 분도 마찬가지고. 요즘 제작사 대표분들 보면, 다 우수한 인적자원들이세요. 하지만 안타까운 건 투자배급에 또 다른 세력이 있다는 것. 사실 저는 옛날처럼 영화사 자체가 재력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분들은 돈 좀 벌었다고, 딴 사업으로 눈을 돌리지 않으실 거라고 믿거든요. 순수하게 영화로 돈을 벌어서, 재력에 휘둘리지 않고, 제작활동을 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모르는 소리를 하고 있나요? 사실 이건 꿈이죠, 꿈.

관객7 | 배우 입장에서 좋은 감독과 그렇지 못한 감독의 차이점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백윤식 | 야, 이것 또 큰일났네.(웃음) 요즘 감독님들은 대부분 시나리오도 직접 집필 하잖아요.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작품은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게 연출의 밀도와 맛을 살릴 수 있겠지만, 포괄적으로 볼 때는 시나리오와 연출이 거리를 둬야겠다 싶기도 해요. 하지만, 좋은감독과 나쁜 감독이라는 건…. 음, 그건 관객들이 영화를 보시면 아시잖아요. 배우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그런건, 결국 내가 또 안고 살아야 되는 부분이니까.(웃음) 좋은감독이니 나쁜 감독을 만나는 건 운명의 장난이죠. 보시면 알잖아요. 작품의 영향이라던가. 감독은 어쨋든 작품을 가지고 평을 해야하지 않습니까. 일반적으로 영화는 작품성과 상업성으로 구분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텐데, 각각의 감독들의 연출기법이 그걸 나타내죠. 그런 구분이 있을 뿐이지, 나쁜 감독이나 좋은 감독이라는 말은 좀 어폐가 있죠. 상업적이냐, 작품성이냐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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