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유령신부> 제작기 [1]
2005-10-25
글 : 이다혜
스톱모션애니메이션 <유령신부>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살인, 죽음, 복수와 같은 어두운 이야기가 귀엽고 명랑하게 그려지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걸핏하면 눈알이 튀어나오고 컴컴한 눈두덩에서 구더기가 튀어나오는 푸른 피부의 시체 신부를 매력적이고 섹시하게 묘사하는 일 역시 그렇다. 하지만 팀 버튼의 이름과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 4천만달러의 예산이 든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이 보여줄 기괴하고 흥겨운 세계를 고대하고 있을 터. 순결함이 느껴지는 살아 있는 신부의 장밋빛 볼보다 섹시함이 느껴지는 죽은 신부의 앙상한 다리와 도톰한 입술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일이 손으로 매만진 인물들이 어떻게 CG로 작업한 3D애니메이션처럼 매끈하게 움직일 수 있을까. 11월3일 개봉을 앞둔 <유령신부>가 공포와 유머의 창의적인 결혼을 성사시킬 수 있었던 비결을 엿본다.

착하지만 어딘가 여려 보이는 눈매를 한, 광대뼈가 도드라지는 한 청년이 창문 앞에 앉아 깃털이 달린 펜촉으로 노트에 나비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다 그린 청년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그 안에 들어 있던 파란 나비를 자유롭게 풀어준다.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서 마을 곳곳을 돌아다닌다. 잿빛의 인간 세상에 파란 나비만이 화려하게 빛난다. 이 세상의 것으로 볼 수 없는, 시체처럼 파랗게 빛나는 나비가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이 장면 위로, 손으로 직접 쓴 듯한 길쭉하고 오톨도톨한 크레딧이 등장하면서 <유령신부>가 시작된다.

러시아에서 전해 내려오는 유대계 민담 ‘유령신부’ 이야기가 팀 버튼의 관심을 끈 것은 1993년,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끝낸 지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때의 일이다. <전설의 고향>을 연상시키는 이 이야기는, 우연한 행동이 결혼을 앞둔 청년을 망자와 결혼시킨다는 얼개를 가진 것으로, 버튼이 이야기에 매료되어 제작을 마음먹은 지 10여년이 지나서야 <유령신부>는 현실화되었다.

생선을 팔아 돈을 번 졸부 반 도트 집안과 세습 귀족이지만 알거지인 애버글롯 집안은 혼사를 앞두고 있다. 신분 상승과 경제난 타국을 위한 양가 부모의 잇속 챙기기는 순진하고 착실한 빅토리아(목소리 출연 에밀리 왓슨)와 빅터(목소리 출연 조니 뎁)가 서로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결혼 리허설을 하게 만든다. 빅터는 긴장한 나머지 실수를 연발, 리허설장에서 쫒겨나고, 숲에서 결혼 서약을 연습하면서 나뭇가지에 반지를 끼웠다가 그게 결혼을 앞두고 억울하게 죽은 신부의 손가락임을 알게 된다. 땅을 헤치고 솟아난 신부(목소리 출연 헬레나 본햄 카터)는 빅터가 자신의 남편이라고 주장한다.

생명이 없는 인형에 숨을 불어넣어라

조니 뎁, 헬레나 본햄 카터, 크리스토퍼 리와 같은 <유령신부>의 주요 목소리 배우들은 비슷한 시기에 팀 버튼 감독의 실사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겹치기 출연을 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의 악몽>에서 스탭으로 일한 적이 있는 마이크 존슨이 팀 버튼과 공동감독을 맡았기 때문에 팀 버튼은 <유령신부> 현장에만 매달리지 않을 수 있었다(프랭크 밀러와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씬 시티>를 공동제작하기 위해 미국감독길드를 탈퇴해야 했지만, 애니메이션의 경우 공동감독을 제한 규정이 없다). 게다가 팀 버튼은 애니메이션 현장에서 직접 작업을 한다는 것의 고단함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일을 고통스러워한 사람이었다. 팀 버튼은 1970년대 후반, 버뱅크에 있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일한 적이 있다. “애니메이션을 관둬야 했다.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아티스트인 동시에 기술자가 되어야 했고,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대개의 장편영화들이 12주에서 14주면 촬영을 끝내지만, <유령신부>의 촬영에는 52주나 걸렸다. 스톱모션으로는 1주일에 2분 분량밖에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시퀀스에 3주가 걸리기도 했다.

디지털로 만든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실사영화에서처럼 털을 휘날리고 포근한 양감을 선사하는 시대에 하루종일 작업해야 1초나 2초 분량의 장면을 얻을 수 있는 이런 ‘구식’ 애니메이션을 팀 버튼이 고집하는 이유는 수공예적 작업에 팀 버튼이 매혹되었기 때문이다. 3차원의 캐릭터를 일일이 움직여 한 프레임씩 만드는 레이 해리하우젠의 영화들을 통해 스톱모션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유령신부>에 해리하우젠에 대한 오마주를 담았다. 빅터가 치는 피아노를 눈여겨보면, 피아노 상표가 있는 건반 위에 ‘해리하우젠’이라고 적힌 것을 볼 수 있다. 팀 버튼에게 스톱모션애니메이션 작업은 “수공예품 같은 손맛이 매력이다. 마치 피노키오나 프랑켄슈타인 같다. 생명이 없는 물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니까.”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