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유령신부> 제작기 [2]
2005-10-25
글 : 이다혜

머리 속에 전동장치, 풍부한 표정의 비밀

캐릭터디자인은 팀 버튼이 그린 최초의 스케치가 원안이 되었다. 생김새만큼이나 움직일 때의 모습을 염두에 두고 각 캐릭터를 발전시켰다. 팀 버튼이 캐릭터디자이너인 카를로스 그란젤에게 자신의 스케치를 던져주며 한 말은 “내 솜씨로는 더 나아지지 않을 거야. 정말 자살이라도 하고 싶을 지경이라고!”가 다였다. 여러 가지 생김새의 주인공들을 그려놓고 선택하는 과정은 생략되었다. 처음 생각한 주요 인물들의 생김새를 좀더 정교하게 다듬는 정도였다. 목소리 캐스팅이 진행되면서, 주요 목소리 배우들의 외모와 인형들의 생김새를 일치시키는 일도 필요했다. 빅터의 경우, 표정이 풍부한 눈과 볼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높은 광대뼈는 목소리를 연기한 조니 뎁의 것이다. 유순하고 심약해 보이지만 인내심이 강한 청년 빅터의 목소리와 외모는 일치한다. 눈썹과 눈, 그리고 수줍음 가득한 입은 인물을 동정적으로 만든다. 목소리와 외양은 마치 실사영화에서처럼 일치되어갔다.

<유령신부>가 이룬 가장 큰 성취 중 하나는 인형들의 섬세한 표정에 있다. 인형들이 말할 때 입 주위의 근육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이나 눈꼬리가 올라가고 처지는 것. <크리스마스의 악몽> 때 인물의 표정을 바꾸기 위해 제작진은 각기 표정이 다른 인형 머리를 바꿔 끼워야 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미세한 얼굴 움직임의 느낌을 살릴 수도, 만들어놓지 않은 표정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유령신부>에서 인형 제작자들은 인형의 머리 속에 전동장치를 심어 표정을 조종할 수 있게 했다. 그들이 인형의 귀나 머리에 숨겨진 지점을 작은 렌치 같은 기구들을 사용해 움직이면 인형들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말을 하고 입을 벌리고 눈썹을 움직이게 만드는 이런 조작은 아주 미세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작업을 담당했던 샤논 오닐은 “<유령신부> 전에는 안경을 끼지 않았다”고 푸념할 정도였다.

기존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의 인형보다 <유령신부> 인형들이 더 큰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표정 조절을 위한 장치를 인형들의 머리에 심으면서, 자연스레 몸 전체의 비중도 늘어난 것. 인형들은 18cm에서 45cm의 크기로 만들어졌다. 영화에 결국 들어가지 못한 것도 있지만 제작팀은 모두 82개의 캐릭터를 여러 크기로 만들었다.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도록 단순하고 특징있는 모양새로 만든다는 원칙만이 있었다.

움직임만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인형들은 일광욕하는 아이스크림 콘처럼 뜨거운 조명 아래서 녹아내릴 가능성이 농후했다. 얼굴 표정을 자연스럽게 바꿀 수 있는 동시에 조명 아래 인형 피부가 녹아내리는 문제를 모두 해결한 것은 실리콘 피부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인형 위에 실리콘 합성 물질로 피부를 입혔다. 3만달러짜리 인형들을 조작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인형 움직임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하루종일 선 채 세트 위로 허리를 구부려야 했다. 2005년 할로윈 개봉이라는 제작 마감시한에 맞추기 위해 노동량이 많았기 때문에, 애니메이터들 가운데는 자신의 인생이 재현된 미니 세트 위로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인형을 조작하는 꿈을 꾸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일반적인 스톱모션애니메이션보다 인형들이 컸기 때문에 당연히 세트의 크기도 그에 맞춰 커져야 했다. 야외 풍경 세트 중에는 5m가 넘는 것들도 있었다. 세트가 커서 인형 조작이 쉽지 않자, 인형 움직임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세트 밑에 숨어 있다가 한 프레임이 끝나면 뚜껑 문으로 올라와 인형을 움직인 뒤 다시 내려가는 방법을 이용해 작업했다. <유령신부>에서는 촬영팀 8개가 동시에 운영되었는데, 각팀에는 촬영감독, 카메라 어시스턴트, 전기 담당자, 그리고 세트 드레서가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각팀은 세트를 돌면서 여러 시퀀스를 찍었다. 촬영이 한창이던 때 35개 세트에서 22명의 애니메이터들이 동시에 촬영을 진행하기도 했다.

산 자는 죽어 있고, 죽은 자는 살아 있는 세계

<유령신부>에는 두 세계가 등장한다. 산 자들의 이승과 죽은 자들의 저승. 팀 버튼의 유머감각은 죽은 자들의 세계를 훨씬 생기있고 화려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발현되었다. 산 자들의 세상은 무미건조하다. 색상 보정을 한 이 칙칙한 잿빛 세계는 인간들의 것이다. 이와 상반되는 다채롭고 활기찬, 마치 물감을 색깔별로 짜 놓은 팔레트를 보는 듯한 세계는 오롯이 죽은 자들의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산 자 역시 죽은 자처럼 창백하게 만들었는데, 그런 이유로 두 세계의 차이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사용된 것은 조명과 촬영 방법의 차이이다. 산 자들의 세계에서 조명은 특별히 강조되지 않고 촬영 역시 마찬가지지만,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카메라는 어지럽게 움직이며 극적 긴장감을 자아낸다. 그렇다고 죽은 자들의 세계가 괴기스럽고 공포스러운 것은 아니다. 마치 유령의 집에 온 것처럼, 과장된 빛의 알록달록한 조명이 다소 키치한 느낌마저 주는 공간, 그곳이 죽은 자들의 세계다.

<유령신부>에서 가장 극적인 대목을 장식하는 교회는 런던과 파리에 있는 고딕 교회들의 외관을 본뜬 것으로, 으스스하지만 아름다운 분위기부터 음습한 느낌의 괴기스러움까지 모두 표현할 수 있게 만들었다. 교회 실내 촬영에는 주조명으로 촛불 한개만을 사용, 괴기스럽고 엄격한 목사를 강조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달빛은 희미하게 교회 내의 기둥과 아치를 드러내고 목사의 말에 박자를 맞춰 번개가 치게 했다(<반지의 제왕>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크리스토퍼 리의 목소리 연기는 신의 대리인(목사)의 것이라기보다 사악한 자(<반지의 제왕> 사루만)의 그것으로 느끼게 하는 아이로니컬한 재미도 있다).

대범함과 인내심이 가져온 성공

<유령신부>는 기술적 측면에서 ‘최초’라는 기록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애플사의 파이널 컷 프로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편집된 최초의 장편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이고, 최초로 디지털 SLR 스틸 카메라로 촬영된 장편영화인 동시에, 이미지의 결과물을 기준으로 평가해 필름카메라를 쓰지 않고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영화다. 처음 <유령신부>가 기획되었을 때는 필름카메라를 사용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디지털 스틸카메라를 테스트해본 제작진은 24대의 캐논 스틸카메라를 구입했다.

CG로 만든 3D애니메이션처럼 보이는 놀라운 결과물이 가능했던 이유는 디지털 스틸카메라를 도입한 덕분이라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디지털 스틸카메라를 이용하면 30~40%까지 확대를 시켜도 화면 손상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편집 과정에 가속도를 붙여주었다. 3시간 뒤면 새로운 촬영분을 편집할 수 있었다. 더 빠를 때도 있었다. 촬영분이 편집되면 그 편집분이 스토리보드를 대신하고, 그렇게 영화가 완성되어갔다. 제작진은 이런 속도를 더욱 빠르게 하기 위해 스틸카메라의 몸체에 작은 비디오카메라를 장착, 촬영과 거의 실시간으로 영상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일곱명의 조명팀이 움직이는 카트에 담긴 하나의 촬영 스테이션을 담당하는데, 각 카트에는 매킨토시, 포토숍 그리고 자바스크립트, 애플스크립트, 퀵타임 등의 툴이 장착되어 완성된 장면을 바로 볼 수 있게 했다.

30년대 재즈바 분위기를 재현한 해골들의 노래, 죽었는데도 아름다운 푸른빛으로 빛나는 유령신부, 죽어 뼈만 남았지만 여전히 주인의 명령에 따라 구르고 짖는 강아지. <유령신부>의 장면들이 살아 움직이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은 크리에이티브만이 아니다. 수공예적 장인정신과 인내, 그리고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대범함이 <유령신부>가 성공을 거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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