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3] - 부산의 발견 ①
2005-10-25
글 : 이영진
<망종>의 조선족 출신 장률 감독

냉혹한 세상을 묵묵히 지켜보는 관찰자

“보리는 망종(芒種) 전에 베라”는 속담이 있다. 보리를 베어야 그 자리에 밭갈이하고 새 종자의 씨를 뿌릴 수 있다는 뜻이다. 망종이 지나면 머리가 무거운 보리는 약한 바람에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희망을 심기 위해서도 절망을 베어내야 하는 않을까. 조선족 중국 감독 장률(그의 독특한 이력은 <씨네21> 455호 참조)의 두 번째 장편영화 <망종>은 쓰러지지 않기 위해 자신을 베어내는 의식을 치르는 한 여자의 삶을 다룬 영화다.

최순희는 살인죄로 감옥에 간 남편과 헤어진 뒤 김치를 팔아 생계를 이어간다. 조선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는 그녀는 아들 창호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어느 날 같은 동포인 김씨의 친절에 끌리게 되고, 그녀는 유부남인 김씨와 연애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중국인 부인에게 불륜 사실을 발각당한 김씨는 그녀를 창녀로 낙인찍고, 아들까지 잃는 사고를 당한 순희는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다.“순희는 참고 또 참다 결국엔 분노를 행동으로 터트린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 세상에서 인간의 본성 또한 변할 수밖에 없다. 나도 똑같다. 영화하니까 쥐약을 안 뿌리는 것이지. 인간이나 세상이나 예측할 수 없는 지경으로 빠져들고 있다.” 최순희는 집 안에 출몰하기 시작한 죽은 쥐 한 마리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인물. 그런 최순희가 급기야 무차별적으로 세상에 독약을 살포한다. <망종>은 소외가 분노로, 분노가 파괴로 이어지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본다.

감독은 시종 서툰 옹호보다 냉정한 침묵을 유지하려고 한다. 동포조차 믿을 수 없는 세상은 부정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극단의 절제를 원칙으로 택한 카메라는 최순희에게 동정이나 연민을 두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런 시선이 단 한번, 마지막 장면에서 흔들린다. 보리밭으로 허둥지둥 발걸음을 옮기던 최순희를 카메라는 흔들리며 따른다. “맨 먼저 찍은 장면이다. 그렇게 해야 답답하고 아픈 마음이 안정을 찾을 것 같았다.” 느리고 더딘 카메라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 같지만, 은근히 인물들에 대한 단죄를 시행하기도 한다. 최순희와 김씨가 몸을 섞는 장면에서 감독이 멍하니 서 있는 남자의 나체만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세상 남자들은 다 김씨 같은 꼬락서니를 하고 산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폭력적이다가도 옷이 벗겨지면 바보가 된다. 그런데도 세상은 여전히 남자들의 것이다. 반면, 최순희의 옷을 벗기는 것은 차마 내가 볼 수가 없었다.”

<망종>

단편 <11세>와 장편데뷔작 <당시>에 비하면, <망종>은 영화 속 스토리가 명확하고, 인물들의 감정들도 뚜렷한 편이다. “여전히 현장에 시나리오가 없다. 매번 현장에서 느끼는 감정대로 바꾸고 고친다. 영화라는 게 이 말을 저 말로 바꾸는 통역은 아니잖나. 시나리오에서 멀어질수록 인물들의 진심에 근접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배우들로선 좀 답답할 것이다.” 21일 만에 찍은 탓에 <망종>은 배우들과 여유롭게 토론할 만한 형편은 안 됐지만, 장 감독은 사운드에 대한 애착만큼은 버리지 않았다. “나는 여자 편이고, 소리 편이다”라고 말하는 그는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오르는 대목에서 시야에서 벗어난 최순희의 구두 소리를 더 크게 들리게 만들었다. “순희는 사라지지만 따지고보면 우리 마음과 기억 속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선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 촬영에 들어갈 계획인 <두만강>의 시놉시스를 들고 PPP를 찾은 그는 “점심에 된장찌개 먹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를 속이고 배신하는 세상이 싫다. 두만강 근처의 아이들을 찾아가는 이유는 내가 앞으로 살아가기 위한 에너지를 찾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비극적 세계에서 그는 과연 희망의 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세 번째 영화 <두만강>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사진 최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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