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악마성을 섬세하게 고찰하는 연구자
<로버트 카마이클의 엑스터시>는 잔혹한 신에게 지배당한 소년의 며칠간을 따르는 영화다. 로버트 카마이클은 방과활동으로 첼로를 켜고, 중산층 홀어머니와 살며, 사드의 책을 읽으면서 자위행위를 하는 소년. “강간범의 눈을 가졌다”고 급우들에게 놀림받는 그는 금세 마약과 폭력의 세계 속으로 발을 들인다. 그리고 친구들과 교외의 부유한 저택으로 잠입해 끔찍한 살육을 행한다. <로버트…>를 보자마자 영화를 되감아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마지막 20분의 학살극이 던져주는 시각적 테러가 지나칠 정도로 극단적이기 때문이다. “<시계태엽장치 오렌지>를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뮤직비디오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버라이어티>의 평처럼, <로버트…>는 확실히 튼튼한 심장을 요한다.
위험천만한 데뷔작을 내놓은 26살의 영국 청년 토머스 클레이는, 그러나 폭력을 타란티노처럼 가지고 노는 악동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인간의 악마성을 섬세하게 고찰하는 데 관심이 있다. “여기에 질문이 있다. 카마이클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악마로 변화한 것인가, 아니면 원래 악마였는데 마지막에 악마성이 터져나온 것인가. 그를 단순한 악마로 여기는 관객은 자신이 선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폭력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로버트…>를 21세기의 <시계태엽장치 오렌지>라고 부르는 것도 유효할 것이다. 하지만 카메라는 범죄에 가담하듯 움직이는 대신에 범죄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지켜본다. “<시계태엽장치 오렌지>가 범죄와 처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면, 이 영화는 폭력과 범죄의 증상을 한번 해석해보자는 제언이다”라는 감독의 말처럼, 범죄심리학 다큐멘터리처럼 담담하게 서술되는 <로버트…>는 이라크와 베트남의 자료화면을 끌어들이면서까지 집단적 광기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히기를 요구한다.
사실 토머스 클레이는 영화보다 음악에 더 일찍 눈을 뜬 신동이었다. 그는 이미 15살에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음반 프로듀서로도 일하는 중이다. “일렉트로니카 음악은 영화와 비슷하다. 아주 미세한 소리들이 모여서 크게 작용하고, 작은 음의 변화로 거대한 줄기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 영화의 구조에서는 모든 숏이 리듬을 가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음악가의 귀를 타고난 그는 눈이 필요했고, 미술가의 눈을 지닌 동업자를 만나고서야 <로버트…>의 제작에 들어갔다. 그가 “촬영감독협회에 다짜고짜 연락을 해서 만난 사람”은 테오 앙겔로풀로스와의 작업으로 유명한 촬영감독 요르고스 아르바니티스. 노대가가 창조해낸 <로버트…>의 미장센은 압도적이다. 특히 소년들의 악마성이 폭발하는 두번의 롱테이크 시퀀스에서 빛을 발하는 아르바니티스의 카메라는, 왈츠춤을 추듯이 소년들의 지옥을 담아낸다.
데뷔작으로서는 드문 성취를 이룩한 <로버트…>는 마지막 20분을 덜어내더라도 힘있는 작품이지만, 마지막 20분 덕분에 힘을 얻은 작품이기도 하다. 올해 토론토영화제는 그 20분 때문에 극약처방을 내렸다(부산은 문제없었다). “토론토의 프로그래머가 내 영화를 상영하지 않겠다며 서신을 보내왔다. 만약 내 영화를 상영한다면 토론토 시민들이 영화제쪽을 절대로 용서하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무심하게 토론토를 비웃는 토머스 클레이가 잊은 것이 있다면, 로버트 카마이클이 감독과 관객을 동시에 베어버렸다는 사실이다. 데뷔작이 양날의 칼이 된 경우에, 두 번째 작품은 어떻게 양쪽을 함께 치유할 것인가. 토머스 클레이의 진짜 이름은 아직 로버트 카마이클의 이름 뒤에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