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선생님, 감독들의 선생님
모함마디 아흐마디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었다. 정치를 몰랐던 아흐마디는 <가베>의 스틸사진을 찍기 위해 모흐센 마흐말바프를 만났고, 그에게서 영화와 세상을 배웠으며, 또한 사진을 가르쳤다. 그리고 9년이 지나 아흐마디는 영화감독이 되었다. “나는 마흐말바프의 학생이었고 그와 같은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는 사람을 변화시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영화를 만들면서 나는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영화와 삶을 공유해온 두 감독은 며칠 간격을 두고 부산영화제를 찾아와 나란히 같은 의자에 앉았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마흐말바프는 “우리는 좋은 선생과 좋은 학생”이라는 아흐마디의 설명을 “우리는 좋은 친구”라고 고쳐주었다.
마흐말바프는 아흐마디의 첫 번째 극영화 <청소부 시인>의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하다. 민주적인 마흐말바프는 자신의 아이들을 포함한 다른 감독들에게 시나리오를 써주더라도 원형을 강요하지 않으며 함께 작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번에는 아흐마디에게 온전한 시나리오만을 넘겼다. 그 무렵 마흐말바프는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된 <섹스와 철학>을 찍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흐마디의 현장에 있지는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곳에 떨어져 있더라도 함께 영화를 찍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아흐마디는 스무편이 넘는 시나리오 중에서 “시인과 삶과 사랑의 이야기가 유독 마음을 울렸던” <청소부 시인>을 택했고, 마흐말바프는 그것을 아흐마디의 개성에 맞도록 손을 보았다. 시(時)적이고 서정적이고 예술을 사랑하는 친구에게 어울리도록. 그것은 수년간의 배움과 노고와 투쟁이 쌓이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영화와 삶과 시대를 공유했다.
“<청소부 시인>은 7년 전에 일어났던 테러에 영향을 받았다. 반정부적인 성향을 가진 예술가들이 테러리스트에 살해당했는데, 그들은 이란 정부의 사주를 받고 있었다. 정부는 사람들이 술렁이지 않도록, 예술가들을 체포하거나 고문하는 대신, 남몰래 죽여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란 사람들은 누가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었다. 내 친구도 그때 살해당했다. 아내와 아이 하나가 먼저 죽었고, 그 다음엔 내 친구가 죽어, 지금은 그의 아이들 네명만이 남아 있다. 그는 한때 국회의원이었지만 정치에 환멸을 느껴 영화를 만들고자 나와 함께 일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 -모흐센 마흐말바프
아흐마디는 마흐말바프가 더 많은 학생을 받고 싶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 때문에 좌절하고 말았던 마흐말바프 영화학교의 학생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영화뿐만 아니라 사회학과 경제학과 심리학도 함께 배웠다. 그의 스승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세상도 알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아흐마디가 마지막 수업을 받은 날은 2001년 9월11일이었다. “우리는 그 소식을 들었지만 별다른 동요없이 수업을 마쳤다. 작가에겐 무엇보다도 자신이 쓴 글에 마침표를 찍는 일이 힘든 것인데, 나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는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러나 주변부를 억압하는 중심부에서 일어난 비공식적인 전쟁은 아닐지라도, 아흐마디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마흐말바프의 아내 마르지예 메쉬키니의 <내가 여자가 된 날>과 딸 사미라의 <사과> 등을 촬영했던 아흐마디는 졸업 뒤에 극영화보다 앞서 다큐멘터리 한편을 찍었다. 2002년 부산에도 초청받았던 <포로, 기다림>이었다. 다큐멘터리 집단과 함께 감옥을 찾았던 아흐마디는 8년 동안 계속되었던 이란·이라크 전쟁의 포로들이 그 안에서 먼지처럼 잊혀져가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고, 이란 군대의 감시를 피해서라도 영화를 찍어야만 했다. 마흐말바프는 “우리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경찰의 총을 훔쳐 투옥되었다가 석방된 뒤에 나는 친구들처럼 정치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나는 예술을 선택했다”고 말했고, 그것은 그대로 아흐마디의 신념이기도 한 탓이었다.
“석방되는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전쟁 초기에 붙잡힌 이라크 포로들 중에는 20년이 넘도록 갇혀 있는 이도 있었고, 가족들은 그의 생사조차 몰랐다. 그들이 왜 돌아가지 못했는지 아는가. 이란이 포로 한명을 보내면 이라크도 포로 한명을 보내야 했다. 한쪽이 포로 송환을 거부하면 교환이 끝나는 것이다. 어떤 포로는 너무 오래 헤어져 있어 몇살이 되었는지도 잊은, 어쩌면 이미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을지도 모르는 아들에게, 혼자 편지를 쓰곤 했다. 영화를 찍으면서, 나는 계속 울었다.” -모함마드 아흐마디
마흐말바프와 아흐마디는 눈물을 흘리는 남자들이다. 그들은 타인의 고통을 감지하여 영화로 위로하고, 뼈아프게, 그들 자신의 상처로 되새긴다. 중년에 이른 두명의 감독이 몇년 전에 겪었던 일을 들려주는 동안 가라오케였던 화려한 인터뷰룸에 모래가 깔리는 것 같았다. 무한에 가까운 수식어구에 기대지 않고, 그들은 간결하고도 깊게 가라앉은 기억만을 끄집어내곤 했다. 그러므로 마흐말바프는 삶을 우회하지 않는다. 기근으로 너덜거리는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삶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나라에 가야만 했다는 마흐말바프. 그는 눈물나도록 세상을 파고들어 <청소부 시인>을 쓰고 <섹스와 철학>을 연출했다. 그 제목을 보고 마흐말바프라는 이름을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고국에서 밀려나 유럽의 도움을 얻은 마흐말바프는 단호하다. 마흐말바프는 <섹스와 철학>이 그의 모든 영화와 다르고 또한 비슷하다고 말했다.
“나는 수많은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 영화들은 모두 달랐다. 이 세상의 고통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기근 다음엔 고독이 인간의 문제가 되지 않을까.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살고 싶지만 고독을 느낀다. <섹스와 철학>의 남자는 네 여자를 사랑하면서도 결국엔 고독한 존재이다. 섹스란 남자와 여자가 관계를 맺어야만 가능한데도, 정치적으로는 자유로운 서구에서 섹스는 더이상 고독을 치유해주지 못하는 것이다. 매년 100만명이 기아로 죽고, 100만명이 자살하며, 수백만명이 전쟁으로 죽어간다. 이란의 어느 시(詩)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산은 뭉쳐서 서 있지만 또한 서로 떨어져 있다고. <섹스와 철학>은 그처럼 고독을 느낄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전쟁이 일어나면 국경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가 부상자들에게 도움을 준다. 나는 그처럼 ‘국경없는 감독’이 되고 싶다. 고통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그 고통을 찍는 감독이 되고 싶다.” -모흐센 마흐말바프
아흐마디는 스스로 정치적인 감독이 아니라고 했다. 그가 선택한 <청소부 시인>에는 테러의 공포에 시달리며 스스로를 가둔 시인과 정치적인 망명을 시도하는 여인이 등장하지만, 칼날처럼 위태로운 정치적인 상황보다는, 선의조차 의심해야만 하는 어긋난 인연이 마음을 찌른다. 청소부는 혼자 사랑하게 된 여인을 위해 나뭇잎을 쓸어 길을 만든다. 그러나 여인은 그 길 끝에 암살자가 기다릴 거라고 믿는다.
“<청소부 시인>의 인물들도 모두 고독하다. 시인은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여인은 혼자 절망을 견뎌야만 한다. 청소부는 동료들과 어울릴 수 있지만, 자신이 쓰고 싶은 시(詩)로 돌아가면, 또한 혼자가 된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청소부들은 시인이 되고 싶었고 비행사가 되고 싶었지만 결코 그 꿈에 다가가지 못할 것이다.” -모함마드 아흐마디
마흐말바프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돈을 버는 방법 대신 영화를 찍는 법을 가르쳤고, 세디그 바르막이 <천상의 소녀>를 찍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는 영화에 관한 모든 것을 마흐말바프로부터 배웠다. 그는 단지 5분 동안에도 수많은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아흐마디를 제지했다. 나에 관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영화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그런 순간이면 영화가 거대한 영역에 닿아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된다. 수백명의 식구를 거느리게 되더라도, 쪼개지지 않고 풍요를 더해가는 소중한 유산인 거라고. 마흐말바프와 아흐마디는 아직 무게를 견줄 수 없는 감독이다. 한명은 거장이고 한명은 무명이다. 그러나 친구이기 때문에 언제까지고 함께하리라는 그들을 보며, 명성의 값을 따졌던 얕은 계산이 사라졌다. 마흐말바프와 아흐마디는 삶과 영화를 포개어놓은 이들이고, 삶이 끝나야만 영화도 끝날 것이다.
세상의 고통은 모두 다르다
모함마드 아흐마디의 <청소부 시인>
이란은 3천만명의 실업자를 거느린 나라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청년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그들에게 주어진 3천개의 일자리 중에서 하나를 낚아채 테헤란의 청소부로 취직한다. 쓰레기 봉투를 열어보고 운을 점치는 청소부들. 자신이 고른 봉투에서 찢어진 편지를 발견한 청년은 쓰레기를 내놓은 여인을 남몰래 사랑하게 된다. 그녀는 약혼자가 테러리스트에게 암살당하자 정치적인 망명을 시도하지만 어느 대사관에서도 비자를 얻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봉투에선 청년이 존경하는 시인의 메모가 발견된다. 그는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면서, 누군가가 배달해주는 우유와 신문만으로 집안에서 버티고 있다. <청소부 시인>은 청소부가 되기 위해 케플러의 3법칙을 설명하는 대목이나 밤마다 춤추고 노래하는 청소부들의 모습이 낙천적인 영화다. 그러나 쓰레기 더미 위에 나무를 키우고, 버려진 종이 조각에서나 시(詩)를 찾을 수 있는 현실이 겨울바람보다도 차가운 감촉으로 다가온다.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섹스와 철학>
<칸다하르> <아프간 알파벳>으로 버려진 땅 아프가니스탄을 돌보았던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이번에는 뜻밖에도 관계와 고독의 문제에 몰두한다. 한 중년 남자의 목소리로 전해오는, 사랑에 관한 기나긴 독백. 댄스학교 교사 죠언은 마흔 번째 생일을 맞아 자신의 여자친구 네명을 동시에 초대한다. 그는 “사랑이란 어차피 비극적 종말을 맞게 되는 법”이라고 말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몰랐던 네 여인에게 이별을 고한다. 얼마 뒤 그중 한 여인이 죠언을 집에 불러 그 또한 자신의 많은 사랑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섹스와 철학>은 죠언이 여자친구들에게 선물한, 다가올 사랑의 시간을 재기 위한 스톱워치와 함께, 과거와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여기에 기아와 전쟁은 없다. 그러나 <섹스와 철학>은 불가능한 사랑을 깨닫는 순간의 아득함, 가장 밀접한 육체의 만남으로도 치유하지 못하는 고독 또한 사람을 막바지로 내몬다고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