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6] - 부산의 발견 ④
2005-10-25
글 : 박혜명
<모텔>의 재미동포 2세 감독 마이클 강

세상의 모든 루저들을 연민하는 카메라

“여덟살이 최고야. 12살 이후에 겪는 일들은 죄다 모욕이지.”(8 is great. Everything after 12 is an insult) 열두살을 갓 넘긴 소년에게, 열두살을 오래전에 넘긴 젊은이가 말하자 소년은 입을 다문다. 그 소년의 집은 뉴욕 도심 밖 구질한 동네에서 모텔을 운영한다. 어니스트가 방과후 숙제보다 먼저 할 일은 모텔방 청소다. 그는 집나간 아빠 대신 두 남매를 억척스럽게 키운 엄마와 마음을 닫고 글쓰기에 취미를 붙였다. 뚱뚱하고 쪼다 같아서 좋아하는 소녀에게 남자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모텔의 장기투숙자로 찾아든 한국계 청년 샘으로부터 소년은 남자가 되는 법을 배우고자 한다.

한국계 미국이주민 2세인 마이클 강 감독의 <모텔>은 못난 소년의 성장영화다. 누구나 겪는 사춘기의 예민한 순간을 드러내기에 열등감만큼 좋은 도구는 없다. 중국계인 어니스트는 가정환경, 신체적 조건, 성격 중 어느 한 가지에서도 내세울 것이 없다. 게다가 아버지의 부재, 그 자리를 채우는 신뢰감 떨어지는 유사부자 관계, 성적 호기심만 북돋우는 좌절스러운 로맨스 등 <모텔>이 담은 사춘기의 모습은 우리가 곧잘 접하는, 불행한 청소년의 잘 만들어진 성장기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는 않다.

<모텔>은 그 익숙한 요소들로 이 영화만의 고유한 감정선을 만들어 이어간다. 감독이 “사춘기 소년에게 최악의 장소가 어디일까”를 고민하다 떠올렸다는 모텔의 풍경은 메말랐고, 시커먼 쓰레기통 위에 걸터앉은 어니스트의 모습은 늘어져만 있다. 할아버지와 여동생과 엄마로 가득 찬 좁은 집 안에서 어니스트는 늘 갑갑해 보인다. 청소도구함을 밀고 방마다 청소하러 들락이는 어니스트를 멀리서 지켜봐야 할 때는 그것이 비록 영화 초반임에도 그대로 내치기 쉽지 않다. 감독은 어니스트를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잔인하게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어니스트의 눈빛으로 이야기하게 한다.

<모텔>

소년의 심장박동이 들리면 감정이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니스트는 때로 얄밉고 때로 사랑스럽다. 그는 나쁜 아이 같다가도 착한 아이 같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사춘기를 어느 한쪽으로 몰아세울 수 없는 것처럼. 마이클 강 감독은 브라운대학 교수인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 밑에서 별 어려움 없이 자랐고 형과의 우애도 좋았지만 “나는 나쁜 아이였다”고,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어린 시절이 어니스트에게 반영돼 있는데 “부끄러워서 구체적으로는 말 못해준다”고 단단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천진한 웃음소리를 날린다. 그가 그린 어니스트는 한번쯤 안아주고 싶은 소년이다.

자신만큼이나 철부지인 청년 샘에게서 ‘카리스마’를 배워 서툰 변화를 시도했던 어니스트의 삶은 원점으로 돌아온다. 청소하고 나면 처음 같아지는 모텔방처럼 말이다. 달라진 것이 정말 없진 않을 것이다. 못된 백인 아이는 어니스트의 얼굴에 괘씸죄라며 멍을 남겼고, 괴팍하기만 하던 엄마는 어니스트의 단편소설 노트에 지문을 남겼다. 가장 많은 말이 필요한 순간에 카메라를 거두는 마이클 강 감독의 장편데뷔작 <모텔>에서는 무시당하는 캐릭터가 없고, 적절한 길이의 롱테이크로 감정을 흔든다. 뻔한 희망은 배제해도 웃음지을 여유마저 남긴다. 그래서 못난 소년의 성장영화임에도 <모텔>은 쓸쓸하거나 허무하지 않다.

사진 안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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