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2]
2005-10-25
글 : 박혜명

광장은 좁고 사람은 많았다

PIFF 광장
강동원, 이명세 감독, 안성기

협소한 PIFF광장을 어쩌면 좋을까. 10주년답게 야외행사 일정도 예년보다 많은 남포동 PIFF광장은 쓰마부키 사토시, 강동원, 성룡, 문정혁(에릭) 등 국내외 스타들이 다녀갈 때마다 압사의 공포가 느껴질 만큼 무시무시하게 붐볐다. 사람들은 야외무대 주변을 둘러싸다 못해 큰길가로, 시장 골목골목으로, 대영시네마와 부산극장 건물 창밖으로 빼곡히 자리를 채웠다. 밀고 밀치는 인파가 일으킨 파동에 사람 키만한 스피커가 떨어질 뻔했다. 강동원은 인사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무대를 내려갔고, “장내가 혼잡해 서둘러 마친다”는 사회자의 설명은 원성을 살 뿐이었다. 해운대 중구청에서 지원한 1개 중대의 경찰병력과 영화제 경호요원, 스탭, 자원봉사자 등 150여명의 인원이 현장통제에 나서도 역부족이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영화제 와서 무슨 봉변인가 싶었다. 규모가 커진 만큼 영화제쪽에서 예상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얼마 전 상주 사태가 있었는데도 경각심이 없었는지”라고 관객은 성토한다. 그나마 좁은 광장의 중심길 위로는 홍보부스들이 빈틈없이 들어서서 쓰레기를 토해냈다. 안전문제와 청결문제를 따지는 목소리가 올해 유독 많다. 최윤나 사무국장은 “이 정도로 관객이 몰릴 줄은 예상을 못했다. 물론 예상하고 준비를 했어야 맞다. 내년에는 야외무대를 옮기거나 행사를 분산시키는 방안을 고려해야할 것 같다”고 말한다. “스스로 쓰레기 한번 주워보고 질서 한번 지켜보자”는 일부 관객의 자성의 목소리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열살에 이른 만큼 영화제가 먼저 더 많은 것을 내다보고 준비해야 한다.

단 하나의 사고에도 관객은 상처받는다

영사실 내부

10월10일 부산극장 7관에서 상영 중이던 <새장>이 영사사고를 빚었다. 프린트 릴 순서가 뒤바뀌어 있었다고 한다. 12일 메가박스에서 상영 중이던 <풍운아 기에>가 영사사고를 빚었다. 사유는 두 번째 릴의 좌우가 바뀐 상태로 프린트가 편집돼 있었던 것이라 한다. 같은 날 야외상영장에서는 <파란 우산>이 영사사고를 빚었다. 이 자리에는 <파란 우산>의 감독 비샬 바라와지가 동석해 있었다. <풍운아 기에>와 <새장>은 재상영됐다. 영사사고가 날 당시 상영관에 있었던 <새장>의 감독 그래엄 스트리터는 1회의 추가 재상영을 영화제쪽에 요구했고 이는 받아들여졌다. 지난해 단 한번의 영사사고도 빚은 적 없는 부산영화제는 올해 유독 잦은 영사사고를 일으켰다. 프로그램팀 관계자는 “상영편수가 많았고, 그중에서도 해외영화제에서 바로 들어오는 프린트들이 많았다. 입고 일정이 워낙 빠듯했다”고 사정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런 사정으로 빚어진 가장 큰 사고는 9일 <카르멘>의 상영 취소건이다. 터키 안탈랴영화제가 두 개의 상자에 나눠보낸 프린트가 상영 전날 하나밖에 도착하지 않는 황당한 일이 벌어져 <카르멘>은 상영 5시간 전 급하게 취소됐다. 영화 한편을 보기 위해 서울에서 부산을 찾은 관객은 영화제를 원망했다. 김희전 월드시네마 담당 프로그램팀장은 <카르멘> 상영취소 배경을 내내 잠긴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나머지 한개의 박스를 찾으려고 갖은 수단을 다 썼다. 그래도 안 됐다. 내가 욕먹는 건 좋지만 프로그램팀의 다른 친구들까지 비난을 듣는 건 참을 수 없다. 애들은 울기까지 했다. 우리도 정말 속상했다.”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다. 올해 부산의 잦은 상영사고는 영화제쪽에나 관객에게나 상처로 남았다.

에필로그 - 부산에 오면 사람 냄새가 난다

“사람 한분 찾습니다. 9일 새벽 대영극장 앞에서 같이 밤새면서 줄섰던 분 중 한분이고요, 여자분입니다. 기다리는 동안 만두 사주고 포도즙도 하나 주시고, <쓰리 타임즈> GV표를 넘겨주셨던 고마운 분을 찾습니다.” 누군가가 영화제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그는 깔고 앉을 종이와 음료수를 건네주며 “얼어죽지 말라”고 이불까지 덮어준 이름 모를 누님 두분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썼다. 그 맛에 부산을 찾는다며.

부산영화제에 참여한 것이 올해 두 번째라고 말한 <스크린 인터내셔널 홍콩>의 여기자가 말했다. “지난해 자비를 들여 처음 왔을 때 깜짝 놀랐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더라. 여기 사람들은 사람들을 만나러 부산을 찾는 것 같다. 심지어 내가 아는 홍콩 영화인들도 중국쪽 영화인들을 보기 위해 부산에 온다고 했다. 중국이 바로 이웃에 있는데도 말이다.”

관객도 영화인도 부산에 오면 사람 냄새를 맡는다. 부산영화제는 사람과 영화를 서로 짝지어주는 영화계의 ‘듀오’다. 그리고 올해 부산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과 영화와 이야깃거리로 부산했다. 14일 폐막식 축하공연으로 선보인 가야금 100대의 연주는 “부산영화제의 향후 100년을 기약하고 비전을 제시한다는 의미”(정수민 10주년 기념 이벤트팀장)라고 한다. 스즈키 세이준의 손바닥과 양귀매의 노랫소리가, PIFF광장에서 깔려죽을 뻔했다는 관객과 영사사고로 관람 기분을 망친 관객의 발길을 내년 이맘때 이곳으로 다시 이끌었으면 좋겠다.

사진 PIFF 데일리 사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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