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1]
2005-10-25
글 : 박혜명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 열돌 맞은 영화제에 무슨 일이 있었나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가 9일간의 항해를 마치고 닻을 내렸다. 307편의 영화가 상영됐고 500여명의 게스트가 공식적으로 다녀갔으며 20여만명의 관객이 영화제를 즐겼고 그만큼의 커피캔과 전단지 쓰레기가 남포동 PIFF광장을 뒤덮었다. 열돌에 걸맞게 모든 것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았던 영화축제를 결산한다.

발견! 5인의 신성, 감동! 거장과의 만남

우선 발견의 기쁨. <시티즌 독> <로버트 카마이클의 엑스터시> <모텔> <린다 린다 린다> <망종> 등 부산에서 발견한 재능있는 신인감독들의 작품 5편을 클로즈업했다. 그리고 뜻밖의 만남을 주선했다. 대만 뉴웨이브의 대표주자 차이밍량과 <여자, 정혜>의 감독 이윤기의 첫 만남의 자리를, 이란의 거장 모흐센 마흐말바프와 그의 영화적 동료 모함마드 아흐마디가 만나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것만으로 영화제를 정리하기란 턱없다. 영화와 영화인만이 영화제를 만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자리의 숫자가 두 자리가 되기 위해 걸린 10년의 시간. 그 시간을 있게 한 것은 관객이다. 예매를 서두르고, 밤새워 티켓 현매를 하고, 남포동과 해운대를 지칠 새 없이 오가고, 스타를 먼발치에서라도 보기 위해 PIFF광장으로 달려가는 사람들. 그들이 없었다면 이만한 영화들과 이만한 영화인들이 부산에 올 수 있었을까. 부산영화제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가 된 책임감으로 올해 소박한 규모로나마 아시아영화아카데미(AFA)를 시작했고, 규모와 영향력에서 놀랄 만큼 성장한 PPP를 대신해 내년부터 마켓을 설치한다. 마켓이나 AFA가 성공적으로 운영된다면 그곳으로도 사람들이 몰릴 것이다. 돈과 인력이 오가는 자리에, 기자들과 영화관계자들이 몰릴 것이다. 그럼에도 향후 100년을 내다보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대상은 관객이다. 그들이 몸소 보고 느꼈을 법한 영화제의 모습을 사진과 함께 담았다. “영화제는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한 관객이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 게시판에 남긴 문장이다.

82살 투혼에 우린 졌습니다

“산소호흡기라도 달고 오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셨습니다.” 지난 9월 부산영화제 서울 기자회견장에서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일본 B급영화의 거장 스즈키 세이준 감독이 올해 부산을 꼭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스즈키 세이준은 산소호흡기 통이 담긴 작은 캐리어를 직접 이끌고 부산까지 왔다. 검버섯으로 얼룩진 82살 노인의 얼굴을 반으로 가른 산소호흡기 호스는 투명한 것인데도 너무 또렷하게 보였다. 10월11일 핸드프린팅 행사가 예정된 오후 시간, 젊은이라면 5초 만에 뛰어올라갔을 남포동 PIFF광장 야외무대를 15분이나 걸려 올라간 노장은 핸드프린팅 재료 도착이 늦어지는 시간이 지루하다고 느꼈는지 김동호 집행위원장에게 “노래를 부르든 춤을 추든 좀 해보라”고 했다.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에 장쯔이를 왜 캐스팅했냐고? 저기 서 있는 프로듀서에게 물어봐라.” “이 나이에 어떻게 계속 감독을 할 수 있냐고? 100일 동안 그 많은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게 영환데, 그 바보 같고 힘든 일을 왜 계속하고 있는지 나도 모르겠다.” 얼굴은 좀 팔아봤지만 손자국을 팔긴 처음이라고, 부산에 자신의 손자국을 남기며 그 손금들만큼 많은 어록을 남기고 간 스즈키 세이준. 적어도 향후 10년간은 그만한 카리스마의 게스트를 한국에서 다시 만나기 힘들 것 같다.

여가수는 늙지 않는다. 다만 귀여워질 뿐

비비안 수
양귀매

관객을 압도하는 게스트가 있으면 관객을 즐겁게 하는 게스트도 있다. 가수 출신의 대만 여배우 양귀매와 비비안 수는 남포동 야외무대 인사 자리에서 노래를 불렀더랬다. 깜찍한 외모의 아이돌 스타로 한때 큰 인기를 누렸던 비비안 수는 서른이라는 자기 나이를 스스로 지우고 싶었는지 “여보세요오~ 안녕하세요오~ 비비안 수예요오~” 하며 나름 발랄하고 고조된 목소리로 한국어 인사를 한 다음, 영화 <인어공주와 구두>의 삽입곡 한 소절을 불렀다. 비비안 수의 이모뻘인 양귀매는 두손을 꼭 맞잡고 노래 한곡을 다 불렀다. 중년의 탈을 쓴 소녀라고밖에 표현할 길 없는 그녀의 노래 제목이 무엇인지는, 안타깝게도, 광장에 모인 관객 그 누구도 몰랐다고 한다.

홍익대 클럽이 부산으로 진출하다?

일본 시부야계의 전설적인 DJ 토와 테이가 부산을 다녀갔다. 10월8일 토요일 밤 10시 수영만 요트경기장 내 계측실을 개비한 공연장에서는 댄스파티 ‘씨네마틱 러브’가 열렸다. 열돌을 맞아 관객에 대한 감사표시로 부산영화제가 처음 마련한 댄스파티 ‘씨네마틱 러브’의 티켓 2천장은 예매기간 중 일찌감치 매진됐고 현매분 1천장도 완전히 동났다. 클래지콰이, W밴드의 배영준 등이 초반 게스트로 등장해 열정적인 공연을 보여주고 돌아갔고, 장내의 분위기에 고무된 토와 테이는 예정보다 30분을 더 턴테이블 앞에 머물다 갔다. 땀나도록 춤추는 사람들과 공연장 안팎에서 야식을 즐기는 사람들로 마치 홍익대 클럽가 같았던 풍경. 남포동이나 해운대와는 또 다른 축제 분위기로 넘친 이곳에서 최고 인기를 누린 것은 야외에서 팔던 떡볶이다. 해운대 떡볶이는 가래떡을 뭉텅이로 썰어놓은 것처럼 크고 굵다. 오뎅은 손바닥만 하고.

사진 PIFF 데일리 사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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