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기억을 찬란하게 빚어내는 마술사
자그마한 몸집에 눈동자만 커다란 야마시타 노부히로는 1976년에 태어난 젊은 감독이다. 부끄러워지면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곤 하는 야마시타는 “여자들과 말도 잘 못하고, 주로 남자와 여행을 테마로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런데도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된 그의 신작 <린다 린다 린다>는 소녀들의 마음이 조그맣게 빛나는 순간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곤 한다. 아무도 오지 않는 옥상에 혼자 만화카페를 차려놓고, 풀장을 떠다니고, 함께 장을 봐 밥을 해먹는, 지극히 사소한 기억. 프로듀서가 기획했다고는 해도 <린다 린다 린다>는 공기 속의 물방울처럼, 그순간 알아보지 않는다면 사라져버릴 무언가를, 소중하게 여기는 영화다.
영화는 여고생밴드 ‘파란마음’이 위기에 처하면서 시작된다. 멤버 한명은 기타리스트 케이와 심하게 다투었고 또 다른 한명은 손을 다쳐 연주를 할 수 없다. 어찌할까 고민하던 케이는 지나가던 한국인 유학생 송(배두나)을 보컬로 영입하여 학원제까지 남은 3일 동안 밴드 블루하트의 노래를 연습하기로 한다. 짝사랑을 고백받거나 노래방에서 가사를 외우며 보낸 사흘. 마침내 학원제 공연이 열리는 날, 밤을 새우고 잠든 케이는 친구들로부터 생일선물을 받는 행복한 꿈을 꾼다.
야마시타는 “나는 스토리를 만드는 데는 서툴다. 하지만 캐릭터가 좋으면 영화가 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야마시타의 전작인 <후나키를 기다리며> <바보들의 배>는 두 남자의 여행이나 녹즙사업에 실패한 연인의 귀향담이 전부였지만, 그만의 리듬으로, 간소한 발걸음 사이를 들락거리곤 했다. <린다 린다 린다>도 한없이 느긋하다. 사흘에 불과한 이 영화의 시간은 종종 다른 공간으로 미끄러지면서 사방으로 확장되곤 한다.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영화를 찍는 아이들에게 멈추어섰다가, 갑자기 무대로 불려나온 듀엣의 노래를 듣고,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졸고 있는 소녀를 응시한다. 야마시타는 그런 에피소드가 산산이 흩어지지 않는 까닭은 캐릭터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송은 인생 자체를 지루해하는 아이지만 영화에는 그녀의 배경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송이 억지로 떠맡은 한·일문화교류전이나 짝사랑 같은 에피소드 몇 가지를 집어넣은 것이다.” 그러므로 파란마음이 어떤 아이들인지 알고자 한다면, 서두르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아야만 한다.
야마시타는 <플란다스의 개>를 보고 배두나가 마음에 들어서 캐스팅했고, 시나리오를 고쳐 썼다. 다른 배우들의 경우에도 비슷했다. “오디션을 보거나 직접 배우를 만났고, 100% 똑같다고 장담하지는 못해도, 실제 모습과 비슷하도록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 덕분에 <린다 린다 린다>는 엉뚱하고 예상을 피해가지만 얄팍하지 않다. 재미를 주기 위해 고안한 유머 대신 찰나의 진심을 잡아낸다. 야마시타가 우겨서 집어넣은 케이의 꿈이 그렇다. 손이 작아 고민이었던 기타리스트 케이는 친구들로부터 커다란 고무손을 받는다. 말도 안 되는 선물이지만, 케이가 기타를 멋지게 연주할 수 있도록, 이라는 기특한 소원이 배어 있다. 진지한 아이들의 표정은 도저히 가짜라고 놀릴 수가 없다.
<린다 린다 린다>는 그처럼 허구인 듯 진담 같다. 야마시타는 배우들을 한달 동안 합숙시키면서 노래와 연주 연습을 시켰다고 했다. “밴드가 프로뮤지션으로 성공하는 것도 아니어서, 이게 드라마가 될까 고민했다. 그런데 연습하는 배우들을 보면서 내가 감동을 받았다. 비뚤어진 나도 그랬으니까 관객을 감동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블루하트의 노래와 함께 처음으로 감정을 폭발하면서 정지하는 <린다 린다 린다>는 지루하고 산만한 생에서 아주 드물게 찾아오는 감동을 반짝이는 결정처럼 맺어주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