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테리 길리엄의 <그림형제: 마르바덴 숲의 저주> [3]
2005-11-21
글 : 오정연
감독 테리 길리엄 인터뷰

“미친 사람과 어린이들만이 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다”

6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테리 길리엄은 나이를 모르는 악동이다. 테리 길리엄과 미라맥스의 하비 와인스타인은, 영화의 개봉 직전까지 온 할리우드가 수근거릴 정도로 요란한 싸움을 벌여왔다. 그러나 라운드 테이블에 마주앉아 끊임없이 너스레를 떨어대는 길리엄은 정작, 그건 별것 아닌 문제였다며 시치미를 뗀다.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온 것만은 분명해 보이는 그와의, 수다스런 인터뷰의 일부를 전한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접한 게 언젠가.

=2002년에 처음 시나리오를 봤다. 내가 쓴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었고, 그 시나리오는 뭐랄까 너무 유행에 편승한 것처럼 느껴졌지만 컨셉 자체는 꽤 괜찮았다. 자신의 세계에 사로잡힌 사람의 이야기인데다, 동화를 바탕으로 특정한 세계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해볼 만했다. 그래서 <타이드랜드>의 작가 토니 그리조니와 함께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다시 썼다. 물론 영화의 크레딧으로 올리진 못했다.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들의 규칙을 당신들도 알지 않나. 그래서 생각한 게, 드레스 패턴 메이커라는 항목을 만들어서 우리 둘의 이름을 거기에 집어넣었다. 다음 작품부터는 시나리오에 바탕을 둔 영화가 아니라 드레스 패턴이 중심이 되는 영화를 만들어볼 생각이다.(웃음)

-영화가 찍은 뒤 개봉까지 2년이 걸린 이유는.

=스튜디오와 나는 서로 완전히 다른 영화를 생각하고 있었다. 와인스타인은 정말 호전적이고 절대 지지 않는 사람인데,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우리는 거의 서로 죽일 듯이 싸웠다. 그러니 영화는 구제불능 상태가 되어버리고. 그래서 내가, “좋다, 어쨋거나 나는 이제 새 영화 <타이드랜드>를 지금 꼭 찍어야 된다. 그러니 그걸 찍고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했고, <타이드랜드>를 찍은 다음 그들은,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라고 하더라.

-그럼 결국 당신은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은 셈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결론적으로 이건 내가 옛날부터 생각했던 방식의 영화만들기다. 영화를 거의 끝까지 만든 다음에 몇 달 정도 치워놨다가, 다시 보면 영화가 달라 보인다. 처음에는 형제의 어린 시절이 영화의 맨 앞부분이 아니라 중간에 있었다. 그런데 둘의 어린 시절의 한 순간을 앞에 놓으니까 인물 설명도 명확하고 훨씬 부드럽더라. 그냥 쭉 편집했다면 그렇게 못했을 거다. 앞으로도 이런 방식을 종종 써먹어볼까 생각 중이다.(웃음)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었나.

=집중을 유지하는 것. 나는 속도감 있게 작업하는 편인데, <그림형제>는 모든 것들이 문제를 일으키면서 굉장히 느리게 진행됐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중심을 유지해야함을 다짐하고, 다시는 큰 영화를 만들지 않겠노라 결심했다. 항상 두세 파트로 나뉘어서 촬영을 천천히 진행하는, 군대 같은 거대한 규모의 영화를 찍으면서, 머릿속에 있는 걸 빨리빨리 꺼내놓을 수 있는 영화가 너무 하고 싶었다. 그게 바로 <타이드랜드>였다.

-동화는 당신의 유년기에서 어떤 의미였나.

=나의 모든 것이었다. 그게 문제였다.(웃음) 텔레비전도 별로 없던 그 시절에는 동화책밖에 없었고, 그게 내가 세상을 배운 곳이었다. 내가 만든 모든 영화들을 보면 알겠지만, 모두 동화의 구조를 띄고 있다. 거기서 벗어나질 못했다. 이젠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자신은 없지만.(웃음)

-<그림형제> 속 판타지를 믿는 사람과 현실을 믿는 두 형제의 갈등에선 결국 판타지가 승리한다. 현대인들에게 판타지가 중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모든 것이 숫자와 계산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되어간다. 꿈과 상상은 확실한 숫자로 보여줄 수도 없고, 숫자에 비해서 설명하기가 더 힘드니까. 나는 그저 내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고, 그리고 자신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미친 사람인 줄 알았던 누군가가, 자기와 비슷한 사람이 적어도 둘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정감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웃음) 나는 미친 사람과 어린이들만이 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는 지금보다 상상력도 풍부하고 생각도 열려 있으며 유연했다. 그러다가 성장하면서 점점 폐쇄적이 되어간다. 한계를 가지게 되는 거다. 나이를 먹어가면, 모두 예전의 어떤 것을 생각하며 받아들인다. 난 계속해서 거기에 반대해왔다. 매번 영화를 만들 때마다 내가 믿는 세상을 사람들에게 설득하려 했다. <브라질>(국내 비디오 출시명 <여인의 음모>)을 만들 때는 한밤중에 망망대해에서 깃발을 흔들고 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가 여기도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주기만 해도 좋았다. 누군가 내 영화를 싫어하든 그건 상관없다. 내 영화를 좋아해주는 사람, 그들이 바로 내가 영화를 만들게 하는 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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