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5년 우리가 놓친 외화 10 [4] - <로드 오브 독타운>
2006-01-17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70년대, 미국 서해안의 베니스 비치 근교에 ‘독타운’이란 빈민가가 있었다. 독타운의 아이들은 대체로 서핑에 미쳐 있지만, 언젠가부터 스케이트보드의 즐거움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거리를 달리는 것뿐이었지만, 새로운 소재로 만들어진 스케이트보드는 서핑에서 하는 대부분의 동작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었다. 거칠고 도전적인 독타운의 아이들은 스케이드보드의 혁명가가 되었다. 드디어 ‘Z-Boy’가 탄생한 것이다.

2001년 선댄스영화제에 <독타운과 Z보이스>란 다큐멘터리가 공개되어 감독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감독인 스테이시 퍼렐타는 실제 Z보이스의 일원이었다. 스테이시 퍼렐타는 <독타운과 Z보이스>의 이야기를 극영화로 만든 <로드 오브 독타운>의 시나리오를 썼고, 연출은 <13살의 반란>을 만든 캐서린 하드윅이 맡았다. 1955년생인 캐서린 하드윅은 이제 겨우 2편의 영화를 연출했지만, <툼스톤> <탱크걸> <서버비아> <쓰리 킹즈> 등 많은 영화에서 미술감독을 맡았다. <로드 오브 독타운>이 격정적이면서도 섬세한 Z보이의 외면과 내면을 탁월하게 포착한 것은, 캐서린 하드윅이 그들과 동세대라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모든 것에는 혁명의 시기가 있다. 70년대 초의 스케이트보드는 고상하고 우아한 피겨스케이팅이나 체조와 비슷했다. 사각의 경기장 안에서 정해진 동작을 얼마나 정확하게 하는가를 채점했다. 하지만 독타운의 아이들은 다르다. 그들은 거리에서 자동차 대신 스케이트보드를 탔고, 서핑을 마음껏 하지 못하는 갈증을 스케이트보드로 풀었다. 그들의 낙원은 화사한 햇살이 쏟아지는 바다가 아니라, 먼지가 날리고 사람들이 아우성치는 아스팔트의 거리였다. 아수라장인 집에 들어가기 싫은 아이들은 애당초 거리에서 살아야 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독타운의 아이들이 자연스레 스케이트보드에 빠져드는 과정은 감각적인 연출과 편집을 통해 역동적으로 그려진다.

독타운의 제이와 토니 그리고 스테이시는 스케이트보드팀 ‘자이퍼’의 일원이 되고, 새로운 대중 스타의 반열에 들어간다. 하지만 자이퍼를 운영하는 스킵은 아마추어이고, 여전히 60년대에 취해 있는 히피 혹은 건달이었을 뿐이다. <로드 오브 독타운>이 빛나기 시작하는 것은, 그들이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순간부터다. 스타가 되고, 비즈니스의 세계로 진입하는 순간 모든 것은 달라진다. 갈등도 시작된다. ‘스타’가 되고 싶었던 토니, 계산적이지만 성실하게 경력을 쌓아가는 스테이시, 모든 것을 거부하고 아웃사이더가 되는 제이. 그 파란만장의 역사를 직접 경험한 스테이시가 다듬은, 개성적인 캐릭터들의 강렬하고도 미묘한 충돌이 <로드 오브 독타운>을 가득 채운다.

모든 혁명은 부패하게 마련이다. 토니도, 스테이시도 그걸 알고 있다. 아니 자연스레 모든 것을 경험한다. 그렇다면 애초에 혁명의 영웅이 되기를 거부했던 제이는 어떨까? 토니와 스테이시가 세계대회에서 최고 스타의 자리에 오르고 스폰서를 돈방석에 앉게 하는 동안, 제이는 동네의 불량한 아이들과 오로지 스케이트보드 타기에만 열중한다. 제이는 모든 룰과 명성을 거부한다. <로드 오브 독타운>은 결코 제이를 반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한때 혁명가였고, 이제는 세파에 흔들리며 닳아지는 범인들일 뿐이다. <로드 오브 독타운>은 청춘의 현란함에 현혹되지 않고, 고루한 인생의 잠언을 읊조리지도 않는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길을 걸은 것이고, 모든 길에는 그 나름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캐서린 하드윅은, Z보이스 모두에게 찬사를 보낸다. 제대로 스케이트보드를 타지 못하면서도 언제나 제이의 곁을 지켰고, 결국 병으로 요절한 시드의 생애까지도. 70년대에 청춘을 보낸 캐서린 하드윅은, 아마도 Z보이스의 기쁨과 슬픔을 공유했을 것이다. <로드 오브 독타운>에는 화려하기 때문에 한결 침울했던 70년대의, 슬프면서 강인한 아우라가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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