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계 오스트리아 감독 위베르 소페(Hubert Sauper)가 연출한 <다윈의 악몽>은 프랑스, 오스트리아, 벨기에 3국이 공동제작한 다큐멘터리 필름이다. 2005년 3월2일 프랑스 개봉 이후 두달 만에 20만명 이상의 흥행성적을 기록한 이 영화는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언뜻 제목을 보면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성격의 영화라고 짐작하기 쉽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과학영화가 아니다. <다윈의 악몽>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정책이 아프리카 대륙을 어떻게 황폐화시켰는지, 아프리카 대륙의 일상화된 전쟁 원인이 무엇인지를 빅토리아 호수의 생태질서 파괴라는 메타포를 사용해 신랄하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영화가 회자되면서 프랑스에서는 아프리카 대륙을 비롯한 제3세계를 대상으로 자행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정책에 반대하는 여론과 운동이 조성되고 있다.
풍부한 어종을 가지고 어업으로 소박하고 순수하게 살아가던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빅토리아’호수. 1960년대까지만 해도 천혜의 자연환경과 풍부한 어종으로 ‘인류의 발상지’라고 까지 불리던 이곳은 이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근간으로 하는 경제화·세계화의 지배논리가 빚은 폐해의 상징적 무대가 되어버렸다. 과학적 실험의 명목으로 ‘나일강의 농어(La Perche du Nil)’가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호수에 원래 살던 어종들은 새로 나타난 농어라는 거대하고 광폭한 ‘파괴자’에 의해 멸종되고, 이제 호수에 남은 유일한 물고기는 파괴자인 나일강 농어뿐이다. 호수의 생태가 파괴됨과 동시에 지역 원주민들의 삶 또한 파괴되기 시작한다.
빅토리아 호수와 원주민들의 삶에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만들어낸 너무나도 엄청난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호수의 다른 물고기들을 다 잡아먹는 거대한 파괴자인 나일강 농어는 생선 가공공장에서 곧바로 가공되어 유럽과 일본으로 연간 500톤이 수출되지만, 정작 지역주민들은 이 물고기의 맛조차 볼 수 없다. 아니, 물고기는 고사하고 끼니를 이어가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다. 어부들이 잡은 고기는 가공공장에서 바로 사가고, 가공공정을 거치고 나면 가격은 폭등한다. 공장에서 밤새 경비를 보는 야간 경비원의 일당은 고작해야 1달러이며, 나일강 농어를 잡는 어부들은 한달에 15∼20명이 악어밥이 되거나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남편을 잃은 여인들은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몸을 팔러 거리로 나선다.
영화의 도입부에서부터 볼 수 있듯이 빅토리아 호수 마을에는 수송 비행기들이 자주 오간다. 주민들은 이 수송선들을 유럽과 일본에 수출할 생선을 실어가기 위해 오는 빈 비행기라고 믿고 있다. 과연 빈 비행기가 와서 생선을 싣고 떠나는 것일까?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한 비행기 조종사의 증언은 순진한 주민들의 믿음을 무참히 저버린다. “비행기가 북쪽(유럽)에서 오는 중에 격납고를 거치고… 탱크 같은 무기들을 싣고 앙골라에 내립니다. 그리고 떠날 때는 포도를 싣고 갑니다… 아프리카 아이들은 크리스마스에 탱크를 받고, 유럽 아이들은 크리스마스에 포도를 받는 것이지요….”
한편의 다큐멘터리영화가 너무나도 거대하고 견고한 세계 체제와 그로부터 파생된 혹독한 현실을 변혁하는 데 어느 정도의 힘을 실어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인지 이 필름에선 감독의 신랄한 비평이나 현실을 바꾸자는 큰 목소리의 주장을 볼 순 없다. 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지구 한편의 잔인하고 혹독한 현실을 관객과 함께 공유하려는 진지한 시선에 희망을 걸어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