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5년 우리가 놓친 외화 10 [7] - <오만과 편견>
2006-01-17
글 : 김선형 (영문학자·번역문학가)

청교도들의 엄숙한 얼굴들 위로 하얀 눈송이가 벚꽃처럼 흩뿌린다. 찰스 1세의 잘린 머리가 구르고 아버지의 새빨간 선혈이 왕자의 얼굴 위에 지워지지 않는 얼룩을 남긴다. 영국 영화·TV예술아카데미(BAFTA) 작품상을 수상한 드라마 <마지막 왕: 찰스 2세의 열정>의 인상적인 첫 장면은, 영국의 신예 조라이트에게 워킹 타이틀의 야심작 <오만과 편견>을 은막의 데뷔작으로 안겨주었다. 그 결과, 역대 가장 불경하고 감각적이고 또 적나라하게 로맨틱한 제인 오스틴 원작의 영화가 탄생한다. 감각적이고 뻔뻔스럽게 로맨틱한 제인 오스틴이라니 모순어법이 아니냐고? 그야 물론이다. 이 모순어법이 창출하는 긴장이 2005년의 새 영화 <오만과 편견>을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물론 신랄한 오스틴을 ‘낭만적’인 서사로 살짝 덧칠하는 건 현대의 오스틴 영화들이 꾸준히 추구했던 바다. <BBC>의 전설적인 미니시리즈 <오만과 편견>에서 영화 <센스, 센서빌리티> <엠마>에 이르기까지. 다만 전작들과 2005년 <오만과 편견>이 확실히 다른 점은, 원작에 대한 불경하기 짝이 없는 접근 방식. 제인 오스틴을 외경했던 <BBC>의 TV 미니시리즈와 달리 조 라이트 감독과 각색자 데보라 모가치는 오스틴의 원본을 떠받들 생각이 없다. 그리고 이는 <BBC> 미니시리즈의 “영향의 불안”에 기인한 새 영화의 의도적 전략이기도 하다. 충실한 제인 오스틴의 추종자들은 실망하겠지만, 그들의 영화는 철저히 영화적이고, 우스꽝스럽고, 유쾌하며, 엉터리 같이 짜릿하게 로맨틱하다. 언어의 마술사, 세련된 풍자의 대가 제인 오스틴의 텍스트와 영상의 귀재, 탐미적 낭만주의자인 감독 조 라이트의 비전이 2시간30분의 러닝타임 동안 충돌하고 대화하고 타협한다.

샬롯 브론테는 1848년 G. H. 루이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제인 오스틴의 작품 세계가 “세심하게 울타리를 둘러친, 세련되게 가꾼 인공적 정원”에 불과하며 “탁 트인 전원도, 맑은 공기도, 파란 언덕도” 찾아볼 수 없다고 불평했다. 하지만 영화는 찬란한 새벽 햇살과 코끝이 알싸한 맑은 공기와 눈물에 스치는 산들바람의 감촉과 귓전을 벅차게 채우는 새소리로 충만하다. 자연과 일상의 미세한 공감각적 경험들이, 어지러울 정도의 친밀감을 포착하는 카메라에 맺혀 순명하게 관객의 오감과 심장을 자극한다. 자연이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인물의 심리를 투사하는 상징이라는 인식이 낭만주의의 발견이라면, 이 영화는 시대착오적으로 낭만주의적이다. 조 라이트는 실내극 특유의 매끈한 표면을 배격하고 거친 일상의 자취를 발견하는 리얼리즘을 더한다. 몸이 부딪치는 시골 무도회에서는 풀풀 땀 냄새가 날 듯하고, 신사의 얼굴이라도 꺼칠한 수염 자국이 선하다. 두 계급의 전형적 대표선수가 만나 오만과 편견을 꺾고 새로운 지배구조를 형성하는 사회 교육과 대타협의 의미는 희석되고, 대신 첫사랑에 빠지는 청춘들의 미세한 접촉과 성적 각성이 집중적으로 조명된다. 키라 나이틀리의 리지와 매튜 맥페디언의 다아시는 여유만만한 재사도, 세상을 아는 대장원의 주인도 아니고, 말하지 못한 사랑과 이해할 수 없는 감정에 서투르게 끙끙 앓는 젊은이들이다. 먼지 쌓인 문학적 아이콘들과 원형적 사랑 이야기의 클리셰는 신선한 촬영과 연기의 힘으로 새삼 꿈틀거리며 살아 움직인다. 그리고 2시간30분 러닝타임에 빽빽한 플롯을 채워넣으면서, 리지의 성장이 전면으로 부각된다. 95년의 <BBC> 미니시리즈가 ‘다아시 캠페인’이었다면, 2005년의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리지의, 리지에 의한, 리지를 위한 영화. 콜린 퍼스와 <BBC> 미니시리즈의 기억을 극장 문 앞에 잠시 놓아두고 들어간다면, 당신도 생기 넘치는 이 영화를 사랑할 것이다.

덧글. 워킹 타이틀은 ‘샴페인에 설탕이 추가된 것을 좋아하는’ 북미 관객을 위해서만 달콤한 키스 장면을 추가했다. 하지만 유럽 팬들이 키스 장면을 넣어달라고 온라인 청원을 전개해 끝내 영국에서 키스 장면이 들어간 판본이 재개봉된 사건도 재밌는 얘깃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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