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이런 것이다. 여기는 전쟁터, 사진기자 앞에서 살인이 벌어진다. 그때 그는 카메라를 버리고 그를 구해야 하는가 혹은 그 잔혹함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셔터를 눌러야 하는가. 설령 이 한장의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타리라는 마음으로 셔터를 눌렀다 한들 그가 그 죽음에 도덕적인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가. 예술적 성취와 유명세를 얻은 냉혈 악마가 될 것인가. 양심과 도덕을 가진 따뜻한 인간이 될 것인가. 이것은 딜레마다. 취재를 통해 무언가를 창작해내는 모든 이들에게 내린 잔혹한 선택의 저주.
<카포티>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원작자인 ‘트루먼 카포티’가 처음으로 논픽션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는 순간에서 시작한다. 1959년 미국 캔자스에서 농장의 일가족을 두명의 남자가 처참하게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다. <뉴욕타임스>에서 이 기사를 읽은 카포티(필립 세이무어 호프먼)는 당장 경쟁사인 <뉴요커>로 전화를 걸어 자신이 이 사건을 취재하겠다고 말한다. 좋은 먹잇감을 발견한 야생동물의 스피드로 캔자스로 향한 그는 그곳에서 두명의 살인자를 만난다. 그리고 이 ‘논픽션 소설’의 주인공이 누가 될지를 직감한다. 그의 눈에는 거칠고 남성미 넘치는 딕 히콕보다는 내성적이고 불안한 페리 스미스가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잔뜩 주눅 든 얼굴을 하고 매일 일기를 쓰는 남자가 잔혹한 살인자라니. 빙고! 너무나 극적인 캐릭터가 제발로 나타나주었군.
이후 카포티는 스미스의 마음을 열기 위해 고급 디자이너 슈트를 입은 채 더러운 감방에서 기거하고, 식음을 전폐한 스미스에게 미음을 떠먹여가며 인간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결국 스미스의 입에서 조금씩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자, 모든 대화의 94%를 기억하는, 완벽에 가까운 기억력을 가진 이 날렵한 글쟁이는 <냉혈>(In Cold Blood)이라는 야심작의 집필에 들어가게 된다.
사형집행일이 다가올수록 스미스는 자신을 구원해줄 사람이 카포티밖에 없다고 믿고 극단적으로 그에게 매달리지만 이미 스미스로부터 살인이 일어나던 밤의 세세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데 성공한 카포티는 그의 전화를 받지 않은 채 소설 끝내기에만 열중한다. 물론 그 와중에도 스미스의 죽음에 무력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비난하고 괴로워하지만, 그런 카포티의 행동이 단지 쇼였는지, 진심이었는지에 대해 영화는 평가하지 않는다. 다만 “그를 구하기 위해서 아무것도 한 게 없어”라고 자학하는 카포티에게 비서 하퍼 리(캐서린 키너)만이 냉정하게 대꾸할 뿐이다. “아마 그럴 거예요, 트루먼. 하지만 진실은, 당신은 그를 구하고 싶지 않았던 거죠.”
2005년 9월30일, 트루먼 카포티의 생일에 맞추어 북미 개봉한 <카포티>를 본 언론은 부산스럽게 2006년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의 가장 유력한 후보자로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의 이름을 거론했다. <롤링 스톤> 역시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의 놓쳐서도 안 되고, 잊을 수도 없는 연기는 올해 모든 시상식 남우주연상을 향한 선발주자감”이라며 극찬했다. 천진하고 유머러스한 사교계의 공작새였던 동시에 차가운 피가 흐르는 냉정한 저널리스트였던 카포티. 영화는 연약하면서도 극악한, ‘옴므파탈’적 카포티를 체현해내는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러닝타임이 아깝지 않다.
페리 스미스의 사형을 눈앞에서 목격한 이후 트루먼 카포티는 평생 어떤 책도 마무리하지 못한 채 알코올과 마약에 찌든 비만인으로 살다가 1984년 생을 끝냈다고 한다. 결국 <카포티>는 그 누구보다 예민한 후각을 가졌고, 그 누구보다 영민한 상술로 무장했으며, 그 누구보다 날카로운 펜을 지녔으나, 피범벅의 살덩이를 씹어삼키기엔 불행히도 비위가 약했던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차마 악마가 되지 못했던 냉혈 쇼맨의 딜레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