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의 시작
정일우: <거침없이 하이킥> 중간에 우연히 시나리오를 보게 됐다. 시나리오도 너무 좋고 캐릭터도 너무 좋아서 사무실에 졸라서 감독님 미팅을 하게 됐다. 사실 좋다는 데 딱히 이유가 있겠나. (웃음) 지우는 <거침없이 하이킥>의 윤호랑은 상반된 캐릭터이기도 했고.
이연희: 나도 역할이 너무 좋아서 하고 싶었다. 그전까지 내가 맡았던 역할들이 너무 우울하고 약하고 마지막에 죽는 경우도 많았는데(웃음) 요번에는 밝은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 로맨틱코미디, 조금 가벼운 역할을 찾던 중에 이 캐릭터가 딱 들어왔다. 로맨틱코미디를 좋아하지만 잘 안 들어오더라. (웃음)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도 좋았고. <러브 액츄얼리>도 재미있게 봤다.
정일우: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나도 좋아한다.
이연희: <내 사랑>은 옴니버스식인데 한 커플 이야기가 다 끝나고 나서 새로운 커플의 이야기가 시작하는 게 아니라 동시에 같이 진행된다. 커플마다 사랑 이야기가 다 다르고, 또 해피엔딩이라서 끌렸던 것 같다.
정일우: 극중 캐릭터를 보고 순수한 커플, 그러는데 사실 우린 술로 맺어진 커플이다. 순수하고 그런 게 아니라….
이연희: 순수해. (웃음)
정일우: 캐릭터들만 봤을 때 순수하지. 근데 내용이 진행되는 걸 보면….
이연희: 순수하지 못해? (웃음)
정일우: 순수하지 못한 게 아니라 재미있기도 하고. 예뻐 보이는 거지.
이연희: 그전에도 아는 사이였냐고? 마주치긴 했는데 사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
정일우: 연희가 드라마도 일찍 하고 그랬잖나. 그전까지 그냥 예쁘다, 연기도 잘한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같이 작품을 하니까….
이연희: 아니야? (웃음)
정일우: 그건 아니고. (웃음) 편하게 촬영했던 것 같다. 동갑내기라서.
이연희: 한살 차이지만 내가 빠른 88년생인 관계로. (웃음)
<M> vs <거침없이 하이킥>
이연희: <거침없이 하이킥>을 즐겨 봤다. 그 캐릭터랑 성격이 비슷한 줄 알았는데 은근히 좀 섬세한 면도 있고. 뭐라고 하지? 아기자기? 약간 여성적인 면도 있고. 시트콤에 나온 성격대로 남성적이고, 그런 역할 맞지? 내가 잘못 봤나? (웃음) 아무튼 망가져도 멋있는 이미지가 강하잖나. 그보다 같이 어울리기 좋아하고. 뭔가 공감 가는 말도 많이 하더라.
정일우: 나도 <M> 봤다. 연기? 연희, 연기 잘한다.
이연희: 성의없어. (웃음) 농담.
정일우: <M>은 내가 봤던 영화들이랑 다르더라. 시간의 흐름이 뒤섞이고 반복되는 신도 있어서 헷갈리기도 했는데. 색다른 영화라서 좋더라.
이연희: 나도 <거침없이 하이킥> 재미있더라. 코믹하고.
정일우: 성의가 없어. (웃음) 이전에 출연한 <조용한 세상>은 좀 무거운 영화였다. 그때는 단역이었고 이번에는 주연이지만 그것 때문에 다른 점은 없는 것 같다.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주목받았으니 당연히 부담은 있다. 편집할 때 잘 안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큰일났다 했는데(웃음) 감독님이 잘 나올 것 같다고 편하게 말씀해주시더라. 일단 개봉해야 알겠지만 최선을 다했다! (웃음)
이연희: 소현은 <M>의 미미와 완전히 상반된 캐릭터는 아니지만 <M>은 워낙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두웠잖나. <M>에는 이명세 감독님의 연출법이 많이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내가 많이 하고 싶어서 욕심이 났다. 이한 감독님은 많은 걸 맡겨주셔서 초반에는 부담도 많았고, 걱정도 많았고, 내가 할 수 있을까 고민도 많았지만 감독님이 내가 하는 걸 마음에 들어해주셔서…. 좀더 까불까불하기도 하고. (웃음) 좀 오버하면 감독님이 낮춰주시기도 하고.
술로 맺어진 인연
이연희: 술 연기는 잘 못하면 거짓으로 보이잖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연기하면서 몇잔 마셨다. 일우는 술을 가르쳐주는 입장이라서 술에 취해서 이야기하는 신이 거의 없다.
정일우: 아무래도 그렇지?
이연희: 술에 취해서 지우에게 간접적으로 고백도 하고. 취중진담도 많아서 감독님이 권하셨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정일우: 나도 취하는 신 있을 때는 두잔 정도 마셨다.
이연희: 그냥 분위기만….
정일우: 사실 소주는 거의 안 마시는데 어쩔 수 없이 마시게 되면 한병 반 정도? 술을 안 좋아해서.
이연희: 나는 소주는 아예 안 마신다. 아직 20살이라. 만약 대학에 갔으면 술자리에도 많이 갔을 텐데 대학도 안 다니고. 지금까지 계속 일만 해서. (웃음)
정일우: 지우는 일단 대학생이고 조금 얌전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캐릭터라 대사톤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말하는 속도도 느리게 하려고 노력했다.
이연희: 나는 제일 중요했던 게 술에 취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이라서 그게 많이 걱정됐다. 게다가 촬영 초반에 그 장면부터 찍었거든. 급하게 들어가는 바람에 일우랑 친해지기도 전에 그런 장면부터 찍고. 어떻게 연기해야 하나. 소현의 엉뚱함이나 발랄함을 어떻게 부각시킬까. 고민하면서 촬영했다.
정일우: 대본, 300번 정도 읽었다. <거침없이 하이킥> 끝나고 거의 한달 만에 들어갔다. 지우가 무술하는 것도 아니고 액션배우도 아니고. 대본 많이 보는 것밖에 없는 것 같더라.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 책 같은 것도 많이 봤다. <국화꽃향기>에서 박해일 선배님의 연기라든지.
이연희: 나는 술에 취해서 춤췄던 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정말 정말 낯뜨거웠다. 술집신이라 엑스트라 분들도 많았는데. 모두 지켜보는 앞에서 나만 헬렐레 해가지고. (웃음) 근데 부끄러워하면 안 되는 거였다.
정일우: 그래도 잘했다. 잘했으니까 오케이가 났겠지. 한두번 만에 오케이난 것 같은데.
이연희: 내가 쑥스러워하는 걸 감독님이 아셨는지 그만하자고 하시더라고. (웃음)
촬영 중에
정일우: 힘들었던 장면은, 아, 내가 고백하는 장면. 그걸 11시간인가? 13시간 정도 찍었던 것 같다.
이연희: 한신을 가지고.
정일우: 아니, 한컷을 가지고. 그게 독백신이었다. 2분30초 정도 되는데. 감정도 안 잡히고 감독님도 별로 안 좋아하시고 해서. 해진 뒤에도 조명 가져다가 찍었다. 사실 이한 감독님이 말을 직선적으로 안 하신다. 돌려서 말하는 스타일이다. 그때도 그러셨다. 다 좋은데 조금만 이렇게. <거침없이 하이킥>은 일일시트콤이라 대본 볼 시간도, 잠잘 시간도 모자랐다. 그에 비하면 이번 영화는 진짜 편하게 찍었던 것 같다.
이연희: 촬영장에서 시간나면? 보통 차 안에서 음악 듣거나 대본 본다. 스탭들이랑 놀고. 이야기하고. 대화가 오가는 곳은 티테이블. (웃음) 커피나 녹차를 마시며. 과자도 있고. 촬영팀은 워낙 바쁘잖나. 우리랑 같이 놀 수 있었던 분들은 제작부 아니면 분장, 헤어, 메이크업 혹은 의상팀.
정일우: 게다가 나는 지방 촬영이 처음이었다. 천안에서 찍었는데….
이연희: 팬들이 쫓아다니고. 여학생들이 소문 듣고 우르르 몰려와서. (웃음)
정일우: 그건 아니고. (웃음) 숙박하면서 촬영하니까 하나가 된 느낌이 많이 들더라. 몇몇신은 닭살 돋지 않았냐고? 좀 그렇긴 했다. 뭐 있었지?
이연희: 고백하는 장면 닭살 돋았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한양대학교 다리 밑에서 촬영하는 신이 제일 힘들었다. 클라이맥스고 감정신이어서.
정일우: 연희에겐 그게 클라이맥스였지.
이연희: 지우는 술에 취해 어깨에 기대 자고 있고. 내가 안아주곤 고백하는 장면인데 다리 위로 전철이 계속 지나가는 거다. 동시녹음 따기도, 집중하기도 힘들었고. 근데 나는 그 주위에서 감정신들을 다 찍었다.
정일우: 너 그거 후기녹음했어? 다 땄어? 전부?
이연희: 응.
정일우: 우와, 대단하다.
이연희: 근데 내가 동시녹음이랑 잘 섞어서 써달라고 했어.
서로에게 건네는 말
이연희: 이거 진짜 웃기다. 어려운데. 음, 배우로서? 아님, 그냥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냥 우리 영화 잘됐으면 좋겠어.
정일우: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또 다음 작품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도 너무 잘하고 있지만.
이연희: 조금 더 노력할게. (웃음) 정일우: 크리스마스 잘 보내고. 새해도 잘 맞았으면 좋겠고. 차기작으로 아직 결정된 건 없고. 얼마 전에 기사가 떴다. 미니시리즈한다고. 결정된 건 아니다. 영화가 될지 드라마가 될지 모르겠다.
이연희: 나는 영화가 될 것 같다.
정일우: 연기생활을 계속 하다보면 인기야 올라갈 수도 있고 내려갈 수도 있잖나. 그냥 연기를 직업으로 생각하고 싶다. 여러 역할을 꾸준히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특별히 하고 싶은 건 없다.
이연희: 나는 해보고 싶은 것 있다. (웃음) 액션! 아직까지 그 장르는 해보지 않아서. 누아르 같은 영화도 하고 싶고.
정일우: 잘 어울릴 것 같아.
이연희: 저격수?
정일우: 저격수보다 칼잡이?
이연희: 아님, 무사? (웃음)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같은 영화가 한국에서 만들어지면 꼭 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