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하반기 한국영화] 강승용 미술감독이 말하는 <님은 먼곳에>
2008-06-20
글 : 정재혁
타이에서 태어난 70년대 베트남

타이를 베트남으로 속여라. 남편을 찾아 베트남에 가는 여자 순이의 이야기 <님은 먼곳에>는 사실 타이에서 촬영한 영화다. 제작여건상 촬영 허가를 받기 쉬운 타이가 인접국가 베트남의 대체 공간으로 선택된 셈이다. 따라서 영화의 미술이 초점을 맞춘 것도 타이를 베트남처럼 자연스레 위장하기. 영화의 프로덕션디자인을 담당한 강승용 미술감독은 “타이와 베트남은 둘 다 지형적으로 길다. 여러 가지 요소들이 혼재해 있다. 하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건축 공법부터 생활방식까지 모든 게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촬영 전 사전 조사차 베트남에 다녀왔고, 이후 베트남 전문가를 따로 둬 70년대 당시 베트남 상황에 대한 디테일을 전해 받았다. 하지만 정작 속이기보다 더 힘들었던 건 그 거짓말을 티가 안 나게, 자연스럽게 하는 일이었다. 타이, 베트남에 대해 국내 관객이 갖고 있는 “상식적인 이미지”와 실제 모습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은 강승용 미술감독이 가장 애를 먹었던 부분이다. “왜 베트남이라고 하면 야자수와 정글숲 뭐 그런 걸 생각하지 않나. 하지만 이건 사실 할리우드영화가 많이 왜곡시킨 결과다. 이준익 감독님과 이 상식을 파괴할 것이냐, 베이스로 깔고 갈 것이냐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여기서 중요한 건 풍경보다는 이야기라는 데서 결론을 내렸다.” 즉, <님은 먼곳에>는 고증을 바탕으로 한 70년대 베트남에, 2008년 타이 시골마을이 겹지고, 무엇보다 한 남자를 찾아 베트남까지 향했던 고전적인 여인 순이의 감정상태가 버무려진 느낌의 영화다.

순이(수애)의 슬레이트 집부터 이태원 거리, 순이의 남편 상길(엄태웅)이 있는 부대와 베트남으로 인력을 보내는 회사 보화상사의 내부, 가로, 세로 300m에 이르는 사이공시티와 유격대원들이 기거하는 땅굴까지. <님은 먼곳에>는 야외장면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세트에서 찍었다. 그만큼 강승용 미술감독의 작업량은 많았던 셈. 2007년 여름부터 시작된 미술 작업은 2008년 3월7일 촬영이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졌고, 거리를 통째로 구현한 굵직한 세트도 이태원 거리와 사이공시티 등 두세개 된다. 하지만 이 모든 작업은 세트 같지 않은 세트, 튀지 않는 미술을 컨셉으로 이뤄졌다. <황산벌> <왕의 남자>에서 이미 이준익 감독과 함께 작업했던 강승용 감독은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가장 많이 걱정했던 건 베트남 전쟁을 경험한 분들이 아직 실제로 존재한다는 거였다. 조금만 고증이 엇나가도 지적받을 게 뻔하지 않나. 하지만 미술이란 게 인위적인 작업이라 하더라도 이 영화에선 드라마에 손상을 주지 않는 선에서,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게 맞다고 봤기 때문에 영화 스토리에 더 집중했다.” 가령 인물들을 태우고 베트남 이곳저곳을 다니는 트럭은 그 트럭을 주인공들이 손에 넣는 과정을 강승용 감독이 상상해 디자인한 결과물이다. “순이의 가락지, 예물로 살 수 있을 정도” 가격의, “멋부리길 좋아했던 베트남군이 미군에서 받아 팔아넘겼을 만한” 디자인. 이준익 감독과 강승용 감독을 제외하곤 반대 의견도 많았다지만 “덜컹거리며 간신히 이동할 정도의 이 트럭”을 강승용 감독은 ‘미술의 주인공’이라 말했다. 타이의 몸을 빌려, 순이의 눈을 통해, 강승용 미술감독의 손으로 그려진 베트남 전쟁의 참상은 7월24일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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