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하반기 한국영화] 정윤수 감독이 말하는 <아내가 결혼했다>
2008-06-20
글 : 정재혁
무거운 연애 담론을 가볍고 경쾌하게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정윤수 감독의 1년 전 대답은 단호한 부정이었다. 내 것보다는 남의 물건을 탐냈던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2007)의 네 주인공은 ‘지금 살고 있던 사람’을 떠나서야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같은 질문에 대해 정윤수 감독은 이제 복잡한 긍정으로 답한다. 한 남자와 결혼해 행복한 삶을 살던 여자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또 한번의 결혼을 감행하는 이야기 <아내가 결혼했다>는 이혼없이 두 가정을 거느리는 대담한 여자의 로맨스다. 박현욱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인어공주> <팔월의 일요일들>의 송혜진 작가가 각본을 쓴 작품. 제도가 둘러놓은 울타리 속에서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의 주인공들이 자기 집을 버린 채 옆집을 탐했다면, <아내가 결혼했다>의 여주인공 인아(손예진)는 자기 집도 지키고 저 아래 경주에 새로운 집도 차린다. 오랜만에 만난 남자 덕훈(김주혁)과 결혼에 골인한 뒤 또 다른 남자 재경(주상욱)과 경주에서 사랑에 빠지고 이를 조금도 숨김없이, 당당하게 고백하는 그녀. 인아는 결혼이란 제도를 발랄하게 뒤집듯 유쾌하게 사랑 전선을 쌓아간다.

가벼운 어감의 제목이라 쉽게 넘겨버릴 수도 있지만 <아내가 결혼했다>는 일부일처제를 쑤시는 도발적인 선전포고다. 스와핑을 통해 제도 밖을 염탐했던 정윤수의 인물들은 이제 제도의 폭을 마음껏 확장해 자신의 행복을 쟁취한다. “인아는 한국 남자들의 관성에 대고 사랑하는 사람과 살겠다는 게 왜 나쁘냐고 묻는다. 결혼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한다. 인아에게 결혼은 축첩을 하며 살았던 한국 남자들의 기득권에 대한 일종의 반기다. 두 남자는 인아란 교주를 만났고, 거기에 휘둘리다 결국 광신도가 된다.” 인아가 조용한 연못에 던진 돌이 두 남자의 일상에 일파만파 파문을 일으키는 셈이다. 물론 “한국판 여자 조르바인 인아의 이상”과 대중의 인식 차이를 고려해 양보한 구석도 있다. 바깥일에도, 집안일에도 능숙하고, 시집에도 남편에게도 잘하는 “인아의 슈퍼우먼” 같은 이미지는 대중과의 대화를 놓치지 않으려고 정윤수 감독이 한발 물러난 설정이다. “인습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대중이 어디에 있느냐를 고려해 발을 들여놓는 수준을 고민했다. 인아에게 슈퍼우먼 같은 미덕도 없다면 대화가 중단될 것 같더라. (웃음)”

한마디 내뱉고 한마디 머금고. 카페 테이블에서 놀다 축구 경기장에서 뛰고.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끊임없이 오가는 인아와 덕훈의 대사는 빠르고 날렵하다. 대화를 하는 도중 혼자 꿍꿍이 생각을 떠올리고, 밀고 당기는 연애 전선을 축구 경기의 전략을 통해 계획하고 정리한다. 따지고 보면 무거운 연애 담론을 품고 있지만 <아내가 결혼했다>는 감칠맛 나는 대사로 영화의 무게를 덜었다. 앞서가는 여자 인아와 거기에 부딪치며 무너지는 두 남자의 서로 다른 생각이 마찰음을 내며 이어진다. <작업의 정석>에서 이미 한차례 보여준 손예진의 여우 같은 연기와 어수룩한 느낌이 자연스러운 김주혁의 호흡이 생생한 두 캐릭터를 어떻게 살려놓을지가 기대요소다. 아, 그리고 놓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 더. <아내가 결혼했다>는 축구에 열광하는 남녀가 주인공인 만큼 스페인까지 날아가 FC 바르셀로나와 마요르카의 실제 경기도 화면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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