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하반기 한국영화] 민언옥 미술감독이 말하는 <신기전>
2008-06-20
글 : 강병진
세종시대의 과학적 감성을 살리다

민언옥 미술감독은 <신기전>을 촬영하는 동안 여주인공인 홍리로 살았다. 홍리(한은정)는 신기전을 제작하는 무리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냉철한 판단을 내리는 인물이다. 신기전의 기본도면과 원리를 습득하고 그것을 응용해 신기전을 만드는 홍리와 영화적으로 신기전을 재현해야 하는 민언옥 감독은 다를 바 없는 처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홍리의 방을 만드는 게 가장 쉬웠다. 그녀 역시 디자이너 아닌가. 사람들은 디자이너가 그림만 그리는 줄 아는데, 사실 과학적인 근거에서 작업하는 게 많다. 그녀의 방도 내 작업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웃음)”

<신기전>은 1400년대 세종 시대의 이야기다. <춘향전> <혈의 누> 등의 사극영화에서 미술을 담당했던 민언옥 감독은 <신기전>의 공간에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감성을 채워넣으려 했다. 세종이 조선에 뿌려놓은 과학과 이성의 공기가 있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관객의 상식적인 선을 중요하게 여기는 김유진 감독의 스타일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때문에 <신기전> 속의 공간은 그동안 TV 사극드라마에서 보던 리얼리티와는 다른 방식으로 재현됐다. 좌식생활을 하는 왕의 침전, 단순히 잠만 자는 방이 아니라 사무실의 기능을 하는 설주의 공간 등 실용적인 면이 강조됐다는 게 민언옥 감독의 설명이다. 특히 왕의 침전은 “세종에게 민주적인 캐릭터를 그려넣고 싶었던” 민언옥 감독의 뜻이 반영된 곳이다. “장영실 등을 가까이 두고 연구를 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신하들이 바로바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했으리라 생각했다.” 말하자면 단순히 고증에 충실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까칠까칠한” 질감을 묘사하는 게 <신기전>의 주된 컨셉이었던 셈. 민언옥 감독은 당시의 과학기술에 관한 기록들을 비롯해 상업과 무역, 중국과의 관계, 또 당시 서양의 모습들을 자료로 탐독했다고 한다.

<신기전>의 영화적인 관건은 당연히 신기전의 완벽한 재현이다. 하지만 관객에게 신기전의 위력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신기전을 만드는 과정을 설득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때문에 영화에서 설주(정재영) 무리가 홍리와 함께 신기전을 만드는 연구소는 <신기전>에서 약 20%의 분량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공간이었다. 민언옥 감독은 “뜨거우면서도 차가움이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어야 했다”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연구소는 젊은이들의 열정이 담긴 땀의 공간이다. 하지만 신기전을 만드는 과정은 매우 섬세하다. 연구소는 ‘정제’란 작업의 개념으로 디자인했다. 한쪽에서는 불을 때기도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흙을 정제하고, 물을 거르는 등 섬세한 작업이 이루어진다. 그에 맞춰 각종 도구와 기계를 제작했고 각종 도면과 수식, 그래프 등으로 연구소의 벽면을 채웠다. 세트보다 수식들을 그리는 데 시간이 더 많이 걸린 것 같다. (웃음)” 그런가 하면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할 신기전은 설주와 그의 무리가 가진 성격을 기초로 디자인했다. “원래 신기전에는 그림도 그려져 있고 방패도 달려 있었지만 영화에서는 민초들이 나라의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신기전을 만든다. 아마도 기능적인 면이 강조됐을 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형태를 단순화하고 거친 질감으로 만들었다.” 실제 신기전을 재현했던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채연석 박사도 영화에서 재현된 신기전을 보고 감탄했다는 후문. 높이 7m, 넓이 3m인 신기전은 오는 8월 중순 위용을 드러낼 것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