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다. 연예계에서 이 속담은 종종 친구 타고 강남 간다로 쓰인다. 이른바 말하는 규라인(이경규의 인맥), 유라인(유재석의 인맥), 강라인(강호동의 인맥)의 활약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 인맥은 타기 위한 줄이 아니라 보여주기 위한, 자랑하기 위한, 웃기기 위한 줄이 되었다. 연예인들은 오락프로그램에 나와 친한 친구를 소개하며 토크를 이어간다. 사람들은 저 스타가 누구와 친한지를 궁금해하며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노는지, 무슨 계기로 친구가 되었는지에 흥미를 갖는다. 연예인이 친한 또 다른 연예인을 부르는 장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임팩트있는 흥밋거리가 되었다. 스타의 인맥은 이제 개인기보다 더 강한 개인기다. 그냥 간단히 생각해보자. 우린 지금 스타들의 친구를 너무 많이, 그것도 자세히 알고 있지 않나. 이건 예전에 없던 뉴스다.
누군가와의 친분만으로 검색어 1등
MBC 예능프로그램인 <놀러와>는 프로그램을 2부로 나눠 1부는 스타의 ‘인(人)라인’을 소개하는 시간으로 꾸민다. 물론 출연자에 따라 방송의 구성을 달리하지만 <놀러와>는 연예인의 인맥을 프로그램의 고정 꼭지로 전면에 세운 방송이다. 김종국은 이 코너에서 차태현과의 무명 시절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원더걸스의 예은은 수영선수 박태환과 친분이 있다는 멘트로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 1위가 되었다. 윤도현은 보아와 술친구이며 설경구·황정민과 대학로파라 말해 주목받았다. 스타들의 인라인은 그들의 일상을 엿보는 소소한 장치를 넘어 이제 그들의 위치와 이미지를 재구성한다.
샤크라의 해체 이후 솔로 가수로 데뷔했다 실패한 황보는 <무한걸스>에 출연해 얻은 송은이, 신봉선, 김신영의 인맥을 타고 새로운 예능인이 되었다. 그녀는 MBC의 또 다른 예능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집들이 손님으로 송은이와 박시은, 최화정을 불렀다. 시청자는 그 장면에서 황보를 이해할 새로운 맥락을 본다. 황보가 자신보다 나이가 5∼6살은 많은 여자 선배들과 사이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녀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 요소다. 조인성이 정준하와의 인연으로 <무한도전>에 출연하고, 공형진이 수많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와 장동건과의 일화를 이야기하는 건 단순히 프로그램을 재밌게 꾸미기 위해서가 아니다. 정준하는 조인성의 이미지를 타고, 공형진은 장동건과의 인맥을 빌려 스스로를 새롭게 장식한다. <놀러와>에 출연해 류승범, 황정민과의 인연을 매회 강조하는 길도 마찬가지다. 누가 더 멋진 인맥을 갖고 있느냐의 싸움. 인맥은 이제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지녀야 할 일종의 개인기다.
친구 통해 이미지를 재구성
사실 연예인의 인맥이 대중의 관심사로 떠오른 건 최근의 일이 아니다. 최진실사단, 박경림·이기찬·이수영·이지훈 등의 79클럽, 그리고 김종국·장동건 등의 연예인 축구단 등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하지만 과거의 인맥들이 토크쇼를 통해, 인터뷰를 통해 자연스레 흘러나왔다면 최근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은 스타의 인라인을 의도적으로 오락으로 활용한다. <놀러와>의 인라인 코너 외에도 <명랑히어로>는 올해 추석특집 방송분부터 <두번 살다>란 이름으로 방송의 형식을 바꿨다. 상황은 한 스타의 장례식이고 그 스타와 친분이 있는 연예인들이 조문을 온다. 그리고 그들은 해당 스타의 뒷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활동이 뜸했던 연예인이 특정 스타의 친구란 이유로 다시 방송을 탄다. 그리고 주목받는다. 스타의 친구끼리 짝을 지어주는 컨셉의 프로그램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 역시 마찬가지다. 이 프로그램은 스타가 실제 어떤 이들과 친분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훔쳐본다. 인맥에 대한 호기심은 결국 리얼리티에 대한 궁금증이다.
최근 버라이어티가 리얼리티형 프로그램을 추구하는 이유는 이젠 연예인의 실생활 외에 그 어떤 것도 시청자를 자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그램은 연예인을 여행 보내고, 결혼시키고, 소개팅 자리에 앉힌다. 인라인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인라인이 하나의 오락적 요소로 기능할 수 있는 이유는 시청자가 인라인을 통해 스타의 실생활을 궁금해하기 때문이다. 연예인 미니홈피의 방송 버전 같기도 하다. 그의 일촌이 누구인지, 그는 어떤 스타와 어울리는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시청자가 궁금해할 스타의 모든 걸 다양한 통로로 드러낸다. 누가 누구와 친한지 그 자체가 오락이 되는 세상. 그게 2008년 한국의 버라이어티가 만들어낸 TV 속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