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데렐라와 엉성천희. 2008년 배우 이천희를 수식하는 단어는 특정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다. 이천희는 올해 여름부터 출연하기 시작한 SBS 예능 프로그램 <패밀리가 떴다>의 캐릭터로 활짝 폈다. <패밀리가 떴다> 이전까지 그는 배우로든 연예인으로든 무색에 가까웠고, 그를 설명하는 말들은 모델로서의 경력, 혹은 영화 <아름답다>나 <허밍>, 드라마 <가을 소나기>와 <온리 유> 등의 지고지순형 이미지였다. 그는 같은 모델 출신 주지훈, 강동원처럼 섬세한 외모를 갖고 있지도 않고, 그들의 몸처럼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지도 않는다. 영화 <뚝방전설>과 <태풍태양>의 청춘 캐릭터도 있지만 이 역시 그의 존재감을 새기기엔 지극히 평범하고 흔하다. 배우 이천희의 위치는 낮고 높음의 문제를 떠나 그냥 좀 지루했다. 차기작이 뭔지 궁금하지 않았고, 그럴 만큼 그의 움직임도 크지 않았다. 지독한 작가 감독을 만나 고생을 하지 않는 한, 파격적인 실험으로 이미지의 큰 변신을 주지 않는 한, 그의 미래는 오늘의 무한반복일 것 같았다.
그런데 이천희가 재밌어졌다. <패밀리가 떴다>에 나오는 그의 모습은 여느 코미디언 못지않다. 다리를 갯벌에 빠뜨려 허우적거리고, 무를 비누로 씻으며, 동료에게 구박도 받는다. 기상 퀴즈를 풀 때는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로 카메라를 마주본다. 로맨스, 청춘물에선 쉽게 잊혀졌던 그의 마스크가 ‘엉성천희’란 별명으로 사랑받기 시작했다. 배우, 연예인, 모델의 옷을 벗고, 최대한 ‘실제 이천희’에 가까워지자 시청자는 환호했다. 그는 드라마나 영화로 갖지 못했던 자기만의 캐릭터를 ‘리얼형 연예 프로그램’에 출연해 얻었다. 그리고 이는 <패밀리가 떴다>가 가진 구조 덕이다.
<패밀리가 떴다>는 MT형 리얼리티에 가깝다. 함께 어딘가로 떠나 게임을 하고, 밥을 해먹고, 일을 하며, 심지어 장기자랑도 한다. 이천희는 이 안에서 영화, 드라마를 통해 보여주지 못했던 부분을 자연스레 드러내게 된다. 매회 반복되는 밭, 논, 바다 일은 이천희의 엉성함을 보여주는 장치다. 그는 이효리의 말처럼 언뜻 보기엔 “바람직한 길이의 남자”지만 몸을 쓰는 일엔 항상 실수를 한다. 빅뱅의 춤을 따라 출 때 그가 보여주는 뻣뻣함도 ‘예능인 이천희’를 즐기는 또 하나의 요소가 되었다. 어떤 옷을 입어도 최적의 그림을 찾지 못했던 배우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모두에게 환영받을 만한 옷을 찾은 셈이다.
<패밀리가 떴다>에서 이천희의 부상은 리얼리티의 힘이다. 하지만 그 리얼리티는 일종의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패밀리가 떴다>는 이천희와 김수로를 신데렐라와 계모의 관계로 엮으며 이천희를 설명한다. 그의 엉성함, 진지함, 엉뚱함은 김수로의 구박에서 나온다. 드라마 촬영으로 이천희가 촬영에서 빠진 7화, 김수로가 “내 분량 다 날아가겠다”고 내뱉은 말은 단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패밀리가 떴다>는 이천희의 이면이 자연스레 표출되고, 시청자에게 수용될 수 있는 맥락을 만들어낸다. 그중 하나가 천데렐라-김계모의 관계다. 이천희는 여자 톱스타인 이효리와는 동갑친구로 말을 놓으며, 게스트로 출연한 월드스타 비에겐 형이라 불리며 캐릭터를 챙긴다. 그리고 이 관계는 이천희가 그 어떤 작품에서도 누려보지 못한 편안한 멍석이다. 이천희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 다큐멘터리가 있다한들 ‘엉성천희’의 모습이 <패밀리가 떴다>보다 잘 표현될 수 있을까. 이천희는 혼자 힘으론 이루지 못한 자신의 ‘캐릭터 찾기’를 패밀리란 가상의 역할극 속에서 성취해냈다. 그게 100% 실제인지 허구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경계 모호한 리얼리티는 이천희를 하늘 높이 떠오르게 한 날개고, 역으로 이천희가 찾아낸 최적의 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