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배우와 버라이어티] 케이스 연구 1. <우리 결혼했어요>의 신애
2008-11-25
글 : 박혜명
장난기와 괴력으로 당당하게

사람들은 원래 신애에 대해 잘 몰랐다. 2001년 모 화장품 TV CF로 데뷔해 영화 <보리울의 여름>(2003)· <은장도>(2003), 드라마 <여름향기>(2003)·<장미의 전쟁>(2006) 등에 출연했으나 그가 어떤 결정적인 캐릭터로서 대중에게 기억을 남긴 경우는 없었다. 2006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신동엽, 노홍철과 함께 11명의 남매들을 돌보는 리얼리티쇼 형식 버라이어티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큰 얘깃거리를 낳았던 건 아니다.

신애의 가장 많은 출연작은 CF쪽에 있다. 화장품, 가구, 휴대폰, 아파트 등의 제품 광고에 등장한 그는, 엄청난 인지도로 먹고사는 스타가 아님에도 극단적인 얼굴 클로즈업을 보여주었다. 신애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예쁜, 신비감 가득한 미모로서 지금껏 각인돼왔다. 세탁기 광고와 화장품 광고가 자신의 대표작이 되어버린 한가인처럼. 그런데 신애는 한가인과도 차이가 있으니, CF 속에서 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목소리를 들려준다는 건 상대방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것과 같다. 한가인은 그럴 필요가 있었다면 신애는 그럴 필요가 없었단 얘기다. 사람들이 CF 속 눈부신 미녀를 보며 그가 신애라는 걸 아느냐 모르느냐 중요치 않았다는 것.

그런 그가 가상 결혼생활을 다룬 리얼 버라이어티에 출연하게 되었을 때 기대할 건 별로 없어 보였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 결혼했어요>의 부부 생활을 통해 신애에게 씌워진 이미지도 기존에 그의 외모에서 만들어졌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18회 MC들의 소개 문구를 빌리자면 “모든 커플들의 로망”으로 컨셉화된 신애-알렉스 커플의 부부 생활은 다른 커플들(솔비-앤디, 서인영-크라운제이, 황보-김현중)과 비교했을 때 리얼리티쇼의 일부라기보다 각본에 가장 충실한 설정 같다. 방송 초기엔 특히 정형돈-사오리 커플과 비교 구도까지 만들어지면서 “뭘 해도 영화 같은”(정형돈) 커플로 정체성을 가졌다.

그러나 그것은 한명의 느낌없고 인형 같은 외모만 가진 여배우를 알아가게 하는 오히려 좋은 틀이 됐다. 신애-알렉스 커플은 가장 영화적인, 로맨틱한 커플을 표방하지만 보는 이의 심장까지 저리게 하는 로맨틱함의 지수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낮다. 이유는 이 커플이 아주 오랫동안 둘 사이의 데면데면함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애 때문이다. 알렉스의 신애를 향한 로맨티스트적 열정과 실천에도 신애는 그를 편한 상대로 여기기까지 다른 커플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오랜 시간을 거쳐야 했다. 그는 가장 멜로영화적으로 세팅된 프레임 안에서 관객의 판타지에 부응하지 못한 여주인공 캐릭터였다. 시청자의 로맨스 판타지를 가장 충족시킨 커플은 솔비-앤디 부부다. 오히려 신애-알렉스 커플은, 신애의 독특한 성격으로 인해 가상 결혼을 전제한 이 리얼리티쇼의 허구성을 제일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요소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신애의 고유한 캐릭터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신애는 방송 초기 자신의 몸매에 대한 콤플렉스를 고백한 뒤 그것을 자연스럽게 드러냈고, (매우 이상적인 남성상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알렉스의 과한 배려와 걱정에 자신을 의지함으로써 여성성을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그 점엔 거리를 두고 의외의 장난기와 ‘괴력신애’ 같은 닉네임을 통해 동등한 위치의 여성으로서 자리를 잡아갔다. 화보 촬영 등 또 다른 일의 현장을 보여줌으로써 커리어우먼적인 캐릭터를 가장 많이 가져간 것도 신애다. 이런 점들이 방송상으로 명료하게 캐릭터화되진 않았지만 신애는 이제 인지도는 물론, ‘무색무취의 얼굴 예쁜 연예인’이라는 평면적 이미지 이상의 존재감을 얻게 되었다.

사랑이란 감정의 발전, 그것을 겪는 출연자들 개개인이 인간적 성장의 면모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 결혼했어요>가 대중에게 끼치는 정서적 매력은 여느 멜로드라마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어디서부터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출연자들의 이미지 메이킹 전략인지 구분할 길은 없지만 그들이 사랑과 비슷한 감정을 분명히 체험했으리란 건 부정하기 어렵다. 그 안에서 신애는 사랑이란 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기란 어렵다는 걸 가장 솔직하게 대변한 인물이다. 그 리얼리티는 향후 그가 배우로서 걸어갈 커리어와 무관하게 그 사람 자체에 대한 진실성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로서 꽤 오랫동안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건 영화나 드라마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곧 방영될 SBS 사극드라마 <천추황후>에서 신애가 맡게 될 애절한 운명의 여인 캐릭터(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며 사랑하는 이의 아이를 낳다 죽는다)를 떠올리면 더욱 분명해지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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