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배우와 버라이어티] 케이스 연구 4. <무한걸스>의 정시아
2008-11-25
글 : 강병진
헤벌레 웃으며 특권을 누렸네

이미지라고 할 게 없었다. 정시아는 잊혀진 이름이었다. 아침드라마 <진주 목걸이>와 시트콤 <두근두근 체인지>를 놓고서 그녀의 이미지를 설명하는 것도 어색한 일이었다. 샴푸의 요정이란 닉네임은 언제 적 일이던가. 그녀가 찍었다는 섹시 화보집이 정말 있기는 있는 건가. 그녀가 TV와 인터넷에 빠져 지냈던 2년간의 공백기는 대중에게 그저 흐르는 시간이었다. 아무도 정시아를 궁금해 하지 않았고, 찾지 않았다. 그러니 그녀의 버라이어티 생존기에서 한 배우의 변신을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시아는 아예 <무한걸스>를 통해 다시 태어났다.

가수, 혹은 배우일 것. 그리고 다른 멤버보다 예쁜 외모의 소유자일 것. 정시아가 <무한걸스>에 출연하기 전 제작진이 남겨둔 빈자리다. 게스트로 출연했던 그녀는 고정멤버가 됐다. 일단 그녀의 외모가 신봉선과 김신영에게 좋은 재료가 됐다. 신봉선이 “나랑 정시아랑 다른 게 뭔데!”라고 투정부리거나, 김신영이 그녀의 등 파인 의상을 보고는 “어디 시상식 왔냐”고 면박을 주는 식이었다. 곧이어 정시아는 드라마를 하고 싶지만 지금은 웃길 수밖에 없는 처지를 드러냈다. 프로그램 안에서 그녀가 자주 짓는 표정은 ‘시무룩’이다. “언니, 나 이거 꼭 해야 돼요?” “나 드라마 해야 되는데….”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녀는 험한 꼴을 마다하지 않았고, 프로그램 안에서 겉도는 시간을 줄여갔다. 그녀가 스스로 “MBC에브리원 개그맨 공채 1기”라고 말했던 건 지금 이 프로그램에서만큼은 배우가 아닌 그저 웃기는 아이로 봐달라는 선언이었을 것이다.

지금 <무한걸스>에서 정시아는 ‘마냥 발랄한 막내’로 산다. 실제로는 김신영이 막내지만, 프로그램 안에서 그녀는 예능계의 약자다. 정시아는 시키면 다한다. 송은이가 무서운 연기, 놀라는 연기, 행복한 연기를 주문하면 그에 맞춰 일일이 표정을 짓고, 춤추라고 하면 “정시아! 정시아!”를 외치며 춤을 춘다.

한편으로는 신봉선과 김신영의 드센 캐릭터가 큰 도움을 줬다. 지금 그녀가 <무한걸스>의 오프닝에서 서 있는 자리는 왼쪽 끝이지만, 사실상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시아의 자리는 신봉선과 김신영 사이다. 그녀는 김신영의 배치기나 신봉선의 면박에 움찔하다가도 때로는 꿈틀하고 그러다 다시 움찔한다. 그러고는 ‘헤벌레’ 웃는다. 말 그대로 ‘마냥’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정시아는 어떤 행동과 말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다. 때로는 희한한 4차원 캐릭터를 보여줬다가 어떤 때에는 섹시한 매력을 드러내기도 하고, 막춤을 추고 고음불가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어쩌면 그녀는 여자연예인들이 가질 법한 모든 캐릭터를 다 시도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말은 정시아가 그동안 <무한걸스>를 통해 어떤 캐릭터도 갖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의 정시아는 <무한걸스> 바깥으로 확장했지만, <무한걸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TV영화 <색다른 동거>에서 연기한 귀신은 처음에는 섹시하고 무서운 캐릭터였으나, 그녀 덕분에 엉뚱한 귀신이 됐다. <놀러와>나 <꼬꼬관광 싱글싱글>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말과 행동은 <무한걸스>의 그것이다. 애초의 목적대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 지금도 그녀의 지상과제라면 염려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지금 정시아란 배우이자 연예인은 시청자의 눈에 익숙한 버라이어티 패널이 되어간다. 조만간 그녀에게는 자신의 현재 이미지를 바꿀 또 다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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