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이수혁은 올해 11월 이름표를 바꿔 달았다. 싸이더스HQ에 들어가 본명 이혁수로 배우로 시작하겠다고 했다. 소속사 없이 홀로 디자이너에게 전화를 걸고 직접 찾아다니며 톱모델의 자리에까지 올라온 그라 의외였다. 고스룩에, 차가운 표정으로 런웨이를 장식하던 그가 어떻게 스크린에 설까. 이혁수는 옷이 좋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쿄, 런던의 숍을 돌고, 스스로 발품을 팔아 파리 에이전시와 계약도 맺은 모델이다. 쇼장, 아니면 화보에나 있을 법한 그런 천생 모델의 느낌 말이다. 무엇보다 그는 이혁수가 아니라 이수혁이고 그의 목소리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이혁수의 꿈은 영화배우 혹은 감독이었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모델은 24살 정도까지 하고 이후엔 영화를 하겠다고 생각했다. 시기가 조금 빨라지긴 했지만 그의 변신은 예정되어 있던 거다. 만화 같은 세계의 팀 버튼이나 비주얼이 환상적인 빔 벤더스 영화를 보며 연기, 연출의 꿈을 함께 키웠다. 젊을 때의 모습을 영화로 남겨놓자는 마음도 있었다. 유럽 컬렉션을 다니며 마주친 수백명의 ‘잘난 모델’들과의 만남, 그리고 거기서의 충격은 연기의 꿈을 조금 더 앞당겼다. “나보다 키는 머리가 하나 더 크고요, 얼굴은 턱 하나가 더 작아요. (웃음)” 그리고 그에겐 우연히 모델이 되기 전 잠깐 출연한 <투사부일체>도 있다.
이혁수가 원하는 영화는 크리스천 베일, 게리 올드먼, 빈센트 갈로가 출연한 영화처럼 취향이 뚜렷한 것들이다. 그는 본인의 스타일이 대중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지만 동시에 본인의 스타일을 보여줄 영화가 있을 거라 믿는다. 이혁수란 이름으로 떠올릴 수 있는 장르 망라의 어떤 스타일. 김지운, 박찬욱 감독과 작업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최근 좋게 본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같은 작품을 할 욕심도 있다. 가끔 듣는 살 찌우라는 말은 이 과제가 해결된 뒤의 일이다. 이혁수는 모델 시절의 태도 그대로 배우의 문을 열었고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아,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농도 100% 매력적인 저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