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마실 물도 없어요.” 해외 출장을 마치고 막 돌아온 최범석의 한남동 집. 그는 이곳에서 ‘밥은 절대 해먹지 않는다’는 설명으로 이 공간의 기능을 요약해준다. 널찍한 거실, 18층 테라스 아래로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커다란 부엌까지 잘 갖추어져 있는 공간이지만, 럭셔리함보다는 질서없이 펼쳐진 물건들이 먼저 시선을 압도한다. “여기선 뒹굴거리고 잠만 자요.” 디자이너 브랜드의 대중화로 자리잡은 지 십수년. 셀 수 없는 미팅과 하루 18시간 이상의 고된 작업, 그리고 쇼의 번잡함과 주말을 모두 허락해야 하는 해외 출장을 모두 빼버린 마이너스의 공간. 이곳에서 그는 혼자만의 유일한 휴식을 허락받는다.
“예전엔 달랐어요. 처음 일할 땐 작업실과 집이 같이 있었는데 그땐 집에서도 일이 끊이질 않더라고요.” 한적한 한남동은 그가 작업과 일상을 분리하기 위해 택한 수단이었다. 매일매일의 파티, 주말에도 약속을 잡던 예전과 달리 그는 이제 오롯이 혼자다. “전엔 즐기자, 가 모토였다면 지금은 여유와 시간이 더 절실해졌죠.” 작동하지 않지만 그냥 내버려두었다는 벽걸이TV와 풀 세팅되어있지만 이제 사용하지 않는 듯한 디제잉 도구들, 그리고 다음날 입을 옷을 걸어놓는 옷걸이로 더 유용하게 쓰이는 러닝머신까지. 그의 집의 모든 물건들은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집주인마냥 휴식 중이다. “이런 여유가 제 옷에도 반영될까요? 글쎄요. 그렇겠죠. 제 작업도 조금씩 성숙해지는 것 같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