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교황이 우울증이라고?
2010-02-11
글 : 김은정 (로마 통신원)

난니 모레티의 <하베무스 파팜> (Habemus Papam)

●촬영준비 중 ●출연 난니 모레티, 미셸 피콜리

바티칸 성당은 교황의 죽음을 맞는다. 세계의 추기경들이 모여 새로운 교황을 선출한다. 마침내 교황이 당선되고 이 소식이 교황(미셸 피콜리)으로 뽑힌 추기경에게 전해진다. 그런데 그가 정중하게 그 자리를 거절한다(!). 바티칸은 당황한다. 바티칸이 설득을 거듭하고서야 그는 겨우 교황의 직무를 맡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새로 당선된 교황은 가톨릭 교회 전체를 통솔하는 절대적인 권력자, 단순히 종교 지도자의 의미를 넘어서 바티칸 시국이라는 독립된 도시국가를 다스리는 세속 지도자라는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그 때문에 자신의 임무에 대한 걱정과 근심으로 시름시름 앓는다. 차츰 교황의 증세는 정도가 심해지고 마침내 바티칸은 교황을 치료할 정신과 의사(난니 모레티)를 부르기로 결정한다. 그는 새 교황의 우울증을 치료해야 한다.

난니 모레티는 이탈리아영화의 현실을 대표하는 감독 겸 배우로 유명하다. 2001년 <아들의 방>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2002년부터 2006년 <일 카이마노>를 만들기 전까지 정치에 뛰어들어 시위대열의 맨 앞에서 메가폰을 잡았다. <일 카이마노> 이후 2년 동안에는 이탈리아 독립영화제 토리노영화제 집행위원장을 하다가 다시 영화감독으로 돌아왔다. 새 영화 <하베무스 파팜>은 1월 마지막에 캐스팅을 마치고 2월부터 촬영에 들어간다. 난니 모레티는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하베무스 파팜>을 이미 암시한 바 있는데, 언론을 조롱하고 비판하기 일쑤인 그가 <일 카이마노> 이후 3년의 휴식을 가진 뒤 오랜 시나리오 작업 끝에 영화계로 돌와왔다는 소식은 기자들의 관심을 자극했다. 이탈리아 기자들은 난니 모레티에게 이렇게 묻는다. “베를루스코니(이탈리아의 현 총리)도 아니고 이탈리아 현실에 얽힌 문제도 아닌 우울증에 걸린 교황의 이야기라니?”

질문이 길거나 비꼬기라도 하면 아예 인터뷰 중간에 나가버리는 당돌함으로 유명한 난니 모레티가 특별히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와 인터뷰를 가진 이유는 그의 새 영화 <하베무스 파팜>이 베를루스쿠니를 다룬 영화 <일 카이마노>와 사뭇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정치와 종교는 함께할 수도 떨어질 수도 없지만, 모레티가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건 잠시만이라도 이탈리아 현실에서 떨어지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됐다. 그는 이 작품을 만들고 나서 연이어 두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 예정인데, 그것들은 말 그대로 이탈리아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이 될 것이며, 이탈리아 언론의 현실과 역사를 다루게 될 것이다. 난니 모레티는 인터뷰에서 “이탈리아 현실을 다루는 영화를 지금 만들게 된다면 암흑의 이탈리아 아니면 결말없는 희망을 뒤쫓는 영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모레티는 <하베무스 파팜>을 가벼운 톤으로 만들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정치나 막강한 힘을 풍자하는 영화로 만들지도 않을 거라고 잘라 말한다. 교황은 자신에 대한 무가치감, 부적절한 죄책감이 동반되는 우울증에 걸려 있다. 그의 정신과 의사인 난니 모레티는 잠도 못 자고 입맛도 없고 세계에 산재해 있는 문제를 풀거나 이에 대응할 흥미없이 무기력할 뿐인 교황을 어떻게 치료할까? 전세계에 11억 이상의 신자를 가진, 기독교 최대 교파 당수의 우울증에 좋은 약은 무엇일까? 종교와 한 인간의 심리를 지극히 사적인 공간으로 끌어들여 풀어갈 이 새 영화에, 이탈리아의 현실적 문제에 거리를 두기로 한 난니 모레티 감독에 대한 시선은 호기심 이상이다.

tip 영화의 제목이 된 라틴어 ‘하베무스 파팜’이란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었음을 선포하는 선언문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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