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장커의 <청조에서> (在淸朝)
●촬영 준비 중 ●출연 미정
지아장커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스틸 라이프>가 무협영화의 구조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그는 전격적인 무협영화로 알려진 새 영화 <청조에서>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무협멜로영화라고 할 수 있지만 무협에 대한 전복을 일으키는 영화다. 기존 무협영화에서는 캐릭터가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다. 하지만 이 영화는 현대화와 공업화의 충격에 직면한 사회에서 무술이 낙후되고 한계를 드러내는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따라서 반무협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듣고 나면 지금 단계에서 지아장커의 새 영화 <청조에서>를 기존 무협영화의 틀 안에서 예측하는 건 불필요한 것 같다. 그에게 무협이란 장르로서 인식되는 것 같지 않다.
지아장커는 <24시티>의 차기작인 다큐멘터리 <상해전기>의 촬영을 이미 마쳤다. 그런데 그 다음 작품 <청조에서>가 실은 더 많은 이들의 관심사다. <청조에서>는 홍콩의 ‘미디어 아시아’ 회장 임건악이 지아장커에게 청조 말기의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이야기를 지아장커가 쓰고 그걸 다시 소설가 한동에게 들려주어 시나리오 작업을 하도록 진행됐다. 처음으로 지아장커가 다른 사람에게 시나리오를 맡긴 영화이며 둘의 작업은 이미 2007년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제작은 놀랍게도 두기봉(<흑사회> <익사일> 감독)이 맡았다.
알려진 시놉시스는 거의 없지만 각본가 한동의 다음과 같은 말은 둘 사이에 공유된 것이 무엇인지 시사해준다. “시놉시스? 비밀이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두개의 핵심적인 낱말뿐이다. ‘문명의 부서진 조각’과 ‘쓸쓸하고 가난한 땅’. 문명의 부서진 조각이란 1905년 전후의 청말 대변혁의 시기에 오래된 문명이 붕괴되고 충돌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중화문명의 아름다움이나 화려함이 아니라 그 ‘문명의 부서진 조각’이다. 그리고 ‘쓸쓸하고 가난한 땅’이란 황궁을 배경으로 한 땅을 말하는 것이다. 등장인물은 많고 시끌시끌하다. 도적, 강호를 떠도는 예인들, 관료, 망나니, 선교사, 무림 고수들까지.”
현지에서는 <청조에서>가 지아장커의 첫 상업영화라며 어떤 논쟁의 불씨를 댕기는 분위기다. 제2의 장이모가 되려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돌았다. 그런데 주의를 기울여보면 지아장커의 상업영화론은 그 우려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내 생각에 상업영화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완전히 상업적인 목적으로 상업영화의 규율에 따라 만들어지고 좋은 박스오피스 성적을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소재는 반드시 상업영화의 모델을 통해야 완성할 수 있다. <청조에서>가 바로 그런 영화다. <스틸 라이프>의 방식으로는 절대 찍을 수 없다. 화면 속 길거리를 걷는 모든 사람이 배우인 이런 영화는 상업영화의 모델로 찍어야 적합하다.” 지아장커가 말하는 상업영화란 통상의 의미가 아니라 일종의 영화를 만드는 어떤 방법론의 용법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 여하튼 그는 이 모든 예상과 논란을 잠재우고 또다시 새롭게 비상을 시도할 것이 분명하다.
tip 왜 지아장커는 난생처음 다른 사람에게, 그것도 영화와는 관계없는 소설가에게 각본을 맡겼을까? 다음은 한동의 말. “내 소설과 지아장커 영화의 느낌이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동의한다. 우리는 둘 다 ‘어떤 것이다’를 말하지 않고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현실과 정면으로 대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