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양윤호] 사탕키스 뛰어넘는 서커스키스를…
2010-09-21
글 : 이화정
사진 : 최성열
<그랑프리> 양윤호 감독 인터뷰

-<바람의 파이터>나 <홀리데이>같이 선이 굵은 액션영화를 주로 연출했다. 멜로감성의 영화 연출은 다소 의외다.
=행복한 가족영화를 한번 해보고 싶던 차였다. 최근 한국영화가 센 영화 위주인 점도 있고, 개인적으로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 <아이리스>까지 하고 보니 좀 행복한 기운이 필요하다 싶더라. 때마침 이정학 PD가 ‘제주도 출신이니 한번 해보자’고 권유하더라. 시나리오에 아예 ‘Be Happy’라고 쓰고 시작했다. 나중에 보니 스탭들도 동근이도 다 따라 써놨더라. (웃음)

-여기수의 성장과 사랑이라니, 자칫 진부해지기 쉬운 구성이다.
=초반에 나 역시 그 점이 불안했다. 태희 역시 그런 불안을 이야기하더라. 내 성향이 워낙 익스트림한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답답한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조금 찍고 보니 가능하겠더라. 이번엔 관객이 보기에 편한 영화를 찍자는 것이 최대의 목표였다. <아이리스>를 연출하면서 연출자의 욕심이 아니라, 대중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된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영화 속 김태희와 양동근이 <웃어요>를 부르는 장면은 만드는 사람보다 관객의 필요에 의해 연출된 장면이다.

-촬영 초반, 주연배우 교체라는 크나큰 혼란을 겪었다. 애초 이준기에서 양동근으로 교체되면서 영화에 끼친 영향이 클 것 같다.
=이준기가 5회차를 촬영하고 불가피하게 하차했다. 때문에 회차가 늘어났다. 중단한 김에 아예 다시 재촬영한 부분도 좀 있고. 동근이는 <바람의 파이터> 하고 나서 군대 가기 전에 갔다와서 첫 작품은 같이하자는 우리끼리의 약속이 있었다. 그러니 어쩌면 그 약속이 실현된 셈이다. 원래 알던 동근이와 달리 군대 갔다오면서 굉장히 성숙하고 사교적이 돼 놀랐다. 우석 캐릭터도 이준기가 할 때보다 좀더 적극적이 됐다. 태희 입장에서는 상대역이 바뀐 것이니, 동근이와 함께 셋이서 멜로라인에 관한 의견을 많이 교환했다. 초반에 관계정립을 하고 나서부턴 그런 조율과정이 굉장히 즐겁게 진행됐다.

-김태희가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축이다. 연기력에 대해 매번 혹독한 평가를 들었다.
=처음 태희를 알게 된 당시에는 비범한 마스크와 달리 연예인 기질이 의외로 너무 없어 놀랐었다. 성격도 무난하고, 사교적이고, 오히려 배우 정서가 없다 싶더라. <아이리스> 초반 때 안티도 많았는데, 태희는 연기를 잘해 그런 반응을 불식시키고 싶은 마음과 한편으로는 굳이 그런 부정적인 반응을 감내해야 할까 하는 갈등을 떠안고 있었다. 난 그녀가 후천적으로 연기를 연마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방식을 택했다. <아이리스> 때부터 되찾은 자신감을 통해 적어도 태희에겐 이 영화가 연기자로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말을 소재로 했지만, 경주영화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멜로라인의 표현이 관건이었다.
=멜로나 코믹은 배우들의 역할 없이 감독이 디테일한 부분까지 구현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 부분에서 태희나 동근이의 역할이 컸다. 키스장면에서 둘 다 <아이리스>에서 화제가 됐던 ‘사탕키스’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하더라. 다르지만, 더 좋아야 하지 않느냐고. (웃음) 마지막의 ‘서커스키스’는 내가 아니라 두 배우가 탄생시킨 장면이다. 사실 <아이리스>의 사탕키스도 병헌이 아이디어였다. 옛날에 해봤다더라. (웃음)

-말은 역시 이 영화에서 기술적으로 통제해야 할 과제였다. 일반적인 드라마 제작과 다른 어려움이 있었겠다.
=비슷한 질문을 받고 말 실수를 좀 했다. ‘필름 많이 쓰면 된다’고. (웃음) 그런데 실질적으로 그랬다. 말이라는 통제 안되는 변수가 있다 보니 일반 드라마보다 필름을 많이 써야 했고 CG의 도움도 많이 받아야 했다. 분량이 엄청났다. 촬영만 3개월 반 정도 걸리는 작업이었다.

-어른들의 멜로가 주희와 우석의 멜로와 대구를 이룬다. 그런데 다소 설명이 부족해 곁가지가 된 느낌이다.
=두 멜로가 연관성이 있도록 하자는 것이 애초의 목표였다. 아무 걱정없이 사랑만 할 수 있는 요즘 세대의 사랑과 달리 내 부모 세대의 사랑은 시대적으로 자유롭지 못했다. 4·3항쟁 등과 관련하여 제주도라는 섬이 주는 제약도 컸다. 그 시대에 풀지 못한 걸 지금이라도 풀어주자 싶었다. 주희와 우석이 펼치는 현재의 멜로가 사랑에 중점을 둔다면 과거의 멜로는 화해가 테마다. 그런데 105분이라는 한정된 시간에 표현하자니 조금 축소된 아쉬움이 있다.

-주희가 자신의 자아를 되찾는 과정에서 제주도의 풍광이 효과적으로 도움을 주고 구현된다.
=제주도는 워낙 날씨가 변화무쌍해 촬영하기에 쉬운 곳이 아니다. 날씨 따라 가다간 촬영 스케줄이 계속 늘어나는 식이다. 그래서 제주도 촬영 때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 헌팅장소는 내가 제주도 출신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곳이 많다. 영화에 등장하는 오름은 20년 전 조감독 때 알았던 곳이다. 더군다나 이번 영화에 처음으로 공개된 곳도 있다.

-<아이리스>의 호응이 고스란히 <그랑프리>의 흥행부담으로 돌아왔다.
=사실 드라마 <아테나>를 연출해달라는 제의는 부담스러웠다. 드라마는 영향력도 크고 배울 점도 많았지만, 2년 연속 드라마를 하게 된다면 영화감독으로서 정체성이 흔들리겠더라. 일단은 영화를 해서 영화의 감을 찾고 다음에 드라마를 하더라도 하자 싶었다. <그랑프리>는 비슷한 소재의 영화와 달라야 하고, 내 전작과도 달라야 한다는 부담은 컸지만 영화를 완성함으로써 또 다른 작품을 할 수 있는 여지는 생긴 셈이다. 당장은 내년에 <아이리스2>를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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