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다니엘과 이민정. 누군가는 이들의 이름보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냉철 지훈과 <그대 웃어요>의 발랄 정인을 먼저 기억해낼 것이다. 배우가 하나의 고정된 캐릭터로 각인되는 건 공중파에서 사랑받은 방송 프로그램들의 잘 알려진 업보니까. <시라노; 연애조작단>(이하 <시라노>)은 그래서 신기하다. 이 영화를 보며 최다니엘과 이민정에게서 지훈과 정인의 그림자를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여자 하나 제대로 유혹하지 못해 연애조작단을 찾은 어리버리한 남자와 사랑에 크게 덴 뒤 얼굴에 그늘을 드리운 여자 캐릭터는 최다니엘과 이민정을 세상에 알린 그 이미지와 정확히 반대 지점에 자리한다. “배우로서 같은 곳에 머무르는 게 가장 두렵다”는 두 TV스타에게 스크린은 기회의 대륙으로 비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민정이 <시라노>를 택한 이유는 “이 영화가 내 운명”이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를 다 읽었을 때 그냥 재밌다, 가 아니라 내가 이 친구라면… 이란 생각이 먼저 드는 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사랑을 믿지 못하게 되어가는 나이의 여자, 그런 부분이 제 모습과 닮아서 희중이가 너무 이해되고 연민이 느껴졌어요.”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공감 100%’였다는 점을 힘주어 말하는 이민정은 영화가 담아내지 않은 캐릭터의 과거까지 복원하며 희중에 몰두했다. 두 남자에게 관찰당하는 역할이라 대사도 표정연기도 많지 않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사소한 표현이나 숨소리 하나도 쉽게 낼 수 없었다고 한다. 옛 연인 병훈과의 키스신에 대해 김현석 감독에게 적극적으로 제안한 것도 캐릭터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됐다. “병훈과 우연히 만난 뒤 희중의 집에서 둘이 입맞추는 장면 있잖아요. 시나리오엔 ‘미친 듯이 키스’라고 적혀 있었거든요. 전 희중이라면 그러지 않을 거라고 말씀드렸죠. 완벽하게 못 잊은 남자지만 만나선 안된다는 것도 아는 나이니까요.” 자극적인 설정이나 리액션 하나 없이도 이민정이 <시라노>에서 안정적인 존재감을 선보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반면 최다니엘은 <시라노>를 촬영하는 과정을 통해 출연의 이유를 깨닫게 된 케이스다. “사실 <지붕 뚫고 하이킥!>이 끝나고 밝힐 수 없는 개인적인 일로 많이 힘들었거든요. <시라노>의 캐릭터 사전 준비기간을 제대로 활용 못할 정도로 힘이 없던 시기였는데, 영화 현장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웃으며 행복하게 촬영했어요. 항상 촬영하며 심리적으로 힘들고 고생스러웠던 기억이 더 많은데, 이렇게 마냥 행복했던 현장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김현석 감독의 말투나 행동을 본떠 상용 캐릭터를 만들고, 엄태웅의 집에 찾아갈 정도로 가까워지고, 박철민의 애드리브에 크게 웃으며 만들어나간 <시라노>를 최다니엘은 ‘개인적인 의미에서 치유의 작품’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곁에 앉은 이민정에게 “저는 이 누나 왜 외롭게 놔둬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남자들 대체 뭐 하는 건지…라고 농을 걸며 동생 티를 마음껏 내는 그를 보고 있자니 <시라노>의 현장 분위기가 대략 짐작이 가는 듯도 하다.
차기작을 두고 고심 중이라는 이민정은 TV, 영화를 오가며 앞으로 액션, 휴먼드라마, 전문직 관련 작품을 두루 섭렵하는 것이 목표다. 하반기 방영 예정인 드라마 <더 뮤지컬>로 브라운관에 복귀하는 최다니엘의 당면 과제는 천재 작곡가 역할을 리얼하게 소화해내는 것이다. 스크린이라는 (TV와) ‘다른 그릇’이 이들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는 다음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