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제목. 그리고 여러 캐릭터가 싸우고 화해하며 따로 또 같이 질주하는 리듬. 추석 명절을 겨냥한 <해결사>의 키포인트는 ‘활극’의 무드다. 그 중심에 현재는 흥신소를 운영하고 있는 전직 형사 강태식(설경구)이 있다. 불륜 현장을 몰래 잡아달라는 의뢰를 받고 모텔을 급습한 태식은 여자의 시체를 발견한다. 졸지에 범인으로 몰리게 된 그는 정체불명의 남자 장필호(이정진)의 전화를 받고 꼼짝없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살인 누명을 벗으려면 집권여당에 불리한 증언을 준비 중인 변호사 윤대희(이성민)를 납치해야 하는 것.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과거 사연과 주변 인물까지 꿰뚫고 있는 필호의 정체를 파악하는 건 둘째 일이다. 게다가 누명을 벗으려 동분서주하는 가운데 아빠의 사정은 모르고 불평만 늘어놓는 딸까지 챙겨야 하는 입장이다. 한편, 장필호의 배후에는 촉망받는 여성정치인 오경신(문정희)이 버티고 있으며, 엉뚱한 경찰 콤비 상철(오달수)과 종규(송새벽)가 태식을 쫓는다. 이제 태식에게 남은 건 강한 적을 만났을 때 더 강해졌던 자신의 옛 본능을 되찾는 일뿐이다.
<해결사>를 떠올리게 하는 이전 작품들은 많다. 홀애비 같은 남자가 사건 속으로 뛰어들어 좌충우돌하는 모습은 <다이 하드>를 떠올리게 하고, 예전 경찰 동료과의 코믹한 호흡에서는 <리쎌 웨폰>이 연상되며, 무엇보다 정치권의 음모에 말려들어 거의 실시간으로 달려가는 리듬은 ‘미드’ <24>의 그것과 닮았다. 복잡한 이야기와 캐릭터로만 따지자면 추석 한국영화 중 으뜸이다. 그만큼 전개속도가 빠르고 톡톡 튄다. 물론 많은 인물들과 반전의 요소들을 우겨넣은 탓에 그 흐름을 놓치면 따라가기 힘든 지점도 있다. 그럼에도 아군과 적군의 경계가 흐릿한, 그 가운데에서 서로 속고 속이는 게임의 양상이 오히려 옛 타란티노의 영화 같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니까 <해결사>는 복잡한 구조 속에 놓여 있되 그 스타일과 전개구도는 좀더 고전적 대중영화의 향기를 풍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류승완 감독이 처음으로 후배 감독 권혁재의 영화에 제작자로 나섰다는 사실에서 ‘액션’에 방점을 찍으려들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그는 <해결사>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고 언제나 그와 함께인 정두홍 무술감독이 참여한 것도 물론이다. 하지만 <해결사>는 전형적인 액션영화와 거리가 멀고 설경구의 원톱 영화도 아니다. 스포일러는 아니겠지만 어쩌면 그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이 영화를 만나는 것이 일단 그 스피디한 흐름에 뒤처지지 않는 가이드라인이 될지도 모르겠다. 가장 눈여겨볼 액션신은 일단 들이받고 보는 박력을 보여주는 후반부의 카체이스 신이며 설경구를 둘러싸고 맛깔 나는 호흡을 내뱉는 조연들 오달수, 이성민, 송새벽의 존재감이다. 그들은 거의 연출과 애드리브의 경계가 모호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영화를 떠받친다. 영화 속 정치인들을 보며 그들이 과연 누구를 연상시키는지, 현실의 정치인과 접목해 이해하는 것도 <해결사>의 또 다른 재미다. 물론 연상되는 그 당사자는 심히 불쾌하긴 할 것이다.
<해결사>는 계속 몸을 팡팡 튀어 올려주는 테마파크의 놀이기구와 닮았다. 인물도 많고, 사건은 계속되며,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겠지만 매 숏의 긴장을 잃지 않는다. 외양부터 옛 그림자를 지우려는 설경구 또한 악전고투한다. 그처럼 1980년생 젊은 권혁재 감독의 관심사는 어떤 하나의 카테고리로 포획되지 않는 오락 활극의 쾌감이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을 시작으로 류승완 감독과 오랜 인연을 이어온 그는 덩치만큼이나 뚝심있게 이 영화 하나만을 위해 달려왔다. 어쨌건 <해결사>를 만드는 데 있어 선배 류승완의 ‘강제력’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게 권혁재 감독의 얘기다. 시사회가 끝난 다음 마주친 제작자 류승완은 인물 많고 사건 많은 <해결사>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파워레인저> 같은 영화, 그리고 <최가박당> 같은 영화”라고. 관객 입장에서 다른 때보다 영화에 기대하게 되는 요소가 달라지는, 이런 명절에 기대할 만한 유쾌한 오락영화라는 얘기다.
최고 폭소 ‘도시 가스’ 장면의 비밀
아마도 추석 극장가에서 승리의 쾌감을 누릴 배우는 여러 다른 영화의 주연들이 아니라 <해결사>와 <시라노; 연애조작단>에서 최고의 감초 연기를 선보인 송새벽일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해결사>의 명장면은 (아마도 직접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이해가 완벽하진 않겠지만) 가스가 새는 상황에서 전자레인지가 폭발하기 직전의 위기에 놓인 집에 들이닥쳐, 그가 내뱉는 “도시가스인데요, 제가 껐습니다”라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권혁재 감독이 5분 만에 떠올린 즉흥 대사였다. 설경구 등 모두가 쓰러져 있는 상태에서 밀실 유리창을 깨고 들어온 오달수는 허둥지둥대고 송새벽이 뭔가를 해야 하는 상황, 권혁재는 그에게 다가가 낮고 다급한 목소리로 그 대사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컷도 나누지 않은 상황에서 현장 모두 ‘빵’ 터졌으니 이미 웃음을 예감한 장면이다. 그리고 설경구의 딸을 향해 “아가야, 아가야” 하고 부르는 장면을 포함해 오달수에게 내내 구박을 당하면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자기 호흡을 잃지 않는 송새벽의 끈질긴 생명력에 두손 두발 다 들게 된다. 감독 얘기에 따르면 애초 오달수와 송새벽 조합은 <뜨거운 녀석들>의 사이먼 페그, 닉 프로스트에서 유래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