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마법의 애잔한 뒷모습
2011-05-26
글 : 김용언

<일루셔니스트> The Illusionist

감독 실뱅 쇼메 / 6월16일 개봉 / 수입·배급 에스와이코마드

“나는 자크 타티가 왜 <일루셔니스트>를 직접 영화화하지 못했는지 완벽하게 이해한다. <일루셔니스트>는 타티 자신과 너무나 가까운 이야기였고, 그는 윌로씨라는 자신의 페르소나 뒤로 숨는 걸 더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루셔니스트>가 윌로씨에게는 지나치게 심각한 이야기라고 결론내렸고, 대신 <플레이타임>을 만들었다.”(실뱅 쇼메) 자크 타티는 <일루셔니스트> 스크립트를 1956년부터 1959년에 걸쳐 완성했다. 하지만 끝내 실사영화로 실현시키지 못하고 1982년 숨을 거두었다. 이후 그의 딸 소피가 쭉 간직해오던 <일루셔니스트> 스크립트는 <벨빌의 세 쌍둥이>의 감독 실뱅 쇼메에게 건네졌다.

1959년, 텔레비전과 영화와 록스타에 밀려 점점 설 곳을 잃어가던 나이 든 마법사 타티셰프가 스코틀랜드에 흘러들어온다. 타티셰프의 마법에 매혹된 소녀 앨리스가 그의 여정에 동행하고, 두 사람은 현실과 꿈 사이에 가로놓인 장벽에 부딪히며 점점 변해간다. 타티셰프는 앨리스를 딸처럼 아끼고 사랑하지만, 넓은 세계로 처음 나온 앨리스는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너무나 많다.

돌이킬 수 없는 시대적 흐름과 정서의 변화에 떠밀려 퇴장할 수밖에 없는 이들, 빠르게 변하는 세계와 불화하며 알코올중독과 고독에 지쳐가는 서커스 단원들의 애수 어린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빛난다. 마법을 믿는 사람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존재들끼리 서로 빚어내는 사랑과 존중의 마음 그 자체가 마법이 아닌가.

실뱅 쇼메는 자크 타티의 스크립트를 거의 그대로 옮겨왔지만 단 하나의 변화는 감수했다. 애초 스크립트는 파리와 프라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파리와 에든버러로 바뀌었다. “프라하에도 가봤지만 인물들이 이곳에서 어떻게 움직일지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벨빌의 세 쌍둥이>로 에든버러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난 즉시 사랑에 빠졌다. 에든버러는 문명의 중심지와 외떨어진 곳이며 빛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마술적인 공간이었다.” 실뱅 쇼메의 확신처럼 우아하고 간결한 그림체는 약간의 빛만으로도 미묘하게 색채가 달라지는 스코틀랜드의 청명한 공기를 손에 잡힐 듯 시각화했으며, 팬터마임처럼 음악과 표정과 분위기로 모든 것을 전달하는 형식은 그 어떤 대사보다 많은 정서를 함축했다. 픽사의 <업>과 비교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아이보다는 어른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다. 놀랄 만큼 아름답고 애잔한 2D애니메이션의 수작이다.

up 우리 모두의 쓸쓸한 삶을 돌이켜보게 하는 성숙한 시선.
down 어린 관객에겐 ‘대사가 없어서’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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