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사랑조차 힘든 이 시대 청춘들을 위하여
2011-06-23
글 : 김성훈
사진 : 오계옥
장형윤 감독의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무언가에 쫓겨본 적 있나?” 6월6일 서울 연남동에 위치한 ‘지금이 아니면 안돼’ 스튜디오에서 만난 장형윤 감독에게 “요즘 무슨 고민을 하고 있나”라는 질문을 던지자 돌아온 대답이다. 단순히 ‘쫓기듯이’ 임하고 있는 첫 장편애니메이션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의 시나리오 작업을 뜻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그는 좀더 길게 설명한다. “사실 나는 그냥 편하게 풀이나 뜯어먹으면서 놀고 싶은 애인데, 실제로는 현실에 이리저리 치여 살고 있다.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가 그런 상황에서 진행되는 멜로드라마다. 남자는 얼룩소고 여자는 인공위성인데 서로 어떻게 지내는 게 맞는지,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잃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그게 어떤 느낌인지…. 그런 것들을 멜로와 액션을 통해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가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이다.”

<무림일검의 사생활>의 기발한 상상력은 그대로

몇 가지 단서가 나왔다. 그러니까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일호와 얼룩소(감독의 전작 <무림일검의 사생활>에서 악당 역을 맡은 그 얼룩말로 착각하지 말자. 얼룩‘소’다)의 사랑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음악을 하고 있는 ‘경천’은 음악은 물론이고 사랑, 학업 등 어느 하나 제대로 하기 힘든 삶을 살고 있다. 세상에 지친 그는 마음을 잃고 얼룩소로 변한다. 그때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가 운석과 충돌해 지구로 추락하다가 ‘마법사 멀린’의 도움을 받고 소녀로 변한다. 그의 이름이 바로 ‘일호’다. 경천과 얼룩소의 삶을 번갈아가며 살아가던 얼룩소는 마음을 잃은 존재를 추격하는 ‘슬레이어’의 습격을 받게 된다. 우연히 이를 목격한 일호는 슬레이어로부터 얼룩소를 구한다. 그때부터 얼룩소와 일호는 가까워지고, 일호는 얼룩소, 아니 경천의 마음을 되찾는 일을 돕는다.

장형윤 감독의 전작 <무림일검의 사생활>(2007)을 본 사람이라면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강호의 고수 ‘진영영’이 커피 자판기로 환생해 ‘혜미’라는 소녀와 사랑에 빠지는 멜로 라인이며, 빌딩 숲속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펼치는 긴장감 넘치는 액션이며, 진영영을 위협하는 악당의 모습을 귀여운 곰이나 얼룩말로 설정하는 등 컨벤션을 교묘하게 비트는 ‘장형윤표 애니메이션’의 특징은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에서도 여전히 계속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신체가 변하는 설정에 관심이 많다. 그렇다고 <쿵푸팬더> 시리즈처럼 가상의 세계에서 이를 다루고 싶은 건 아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신체가 변하는 상황으로 표현하고 싶은 거다.” 이런저런 이유를 떠나 얼룩소와 인공위성이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라니, 이것만으로도 어떤 이야기인지 충분히 궁금하지 않나.

그러나 처음부터 이런 내용의 이야기였던 건 아니다. <무림일검의 사생활>을 끝낸 뒤 장형윤 감독은 <원스>(2006)처럼 음악을 주제로 한 애니메이션을 만들려고 했다. 이야기도 밤마다 얼룩소로 변하는 여자를 좋아하는 바이올린 연주자에 관한 거였다. 수차례의 수정 작업을 거친 뒤 시나리오는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 시나리오가 변하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 중 하나가 얼룩소 캐릭터인데, 장형윤 감독은 왜 주인공을 사람이 아닌 얼룩소로 설정했을까. “극영화에서 감독들이 특정 배우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쓰는 것처럼 나 역시 특정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얼룩소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애니메이션 전공 시절 만든 단편 작품의 주인공이었는데, 이번에 얼룩소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룩소가 필연적으로 창조된 캐릭터라면 인공위성 ‘일호’는 창작자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 “얼룩소는 극 전개에 장애가 많다. 낮에는 항상 인간의 모습이어야 하고, 밤에는 얼룩소여야 하는 규칙성이 오히려 극의 재미를 반감하는 것 같다. 어떻게 할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 반면 일호의 경우 인공위성이다보니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고, 마징가처럼 상대방을 향해 자신의 주먹을 무기처럼 쏠 수 있다. 사실 일호를 인공위성으로 설정한 것도 하늘을 나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거다. (웃음)”

얼룩소와 일호는 바로 88만원 세대

이처럼 이 애니메이션의 외형적인 부분은 기발한 상상력에 기대지만 장형윤 감독, 심현우 프로듀서 등 제작진은 얼룩소와 일호를 통해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 현미경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심현우 프로듀서의 말은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힌트가 된다. “이 작품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88만원 세대’를 풍자하는 거다. 꿈도, 사랑도, 돈벌기도 어렵고 집안 형편도 먹고살기가 힘들고. 그런 친구가 불법 대출 사무소에 가서 ‘성욕’까지 맡기게 된다. 그러니까 젊은 세대가 왜 마음과 성욕을 잃게 되는지, 그 상실감이 의미하고 있는 것이 뭔지, 마음을 다시 찾는 과정에서 경천은 어떻게 성장해가는지 등을 곰곰이 생각해보자. 그만큼 사랑조차 하기 힘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을 그리려는 게 이 프로젝트의 목표다.” 장형윤 감독이 이야기의 배경을 서울로 설정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장형윤 감독은 “어떤 면에서 서울을 현실과 판타지 사이의 연결 고리로 활용하고 싶었다. 적절한 방법이기도 하고”라면서 “캐릭터의 모습, 이야기의 전개가 비현실적인 상황이라도 서울이라는 극중 공간을 통해 관객은 현실적으로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한다.

현재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제작진은 장형윤 감독, 심현우 프로듀서, 조감독 한명, 3D 애니메이터 한명, 배경 작가 한명, 작화감독 한명 등 총 6명이 제작 공정을 진행하고 있다. 시나리오 수정이 완료되고, 원화 컨셉이 확정된 뒤 동화와 컬러 공정으로 넘어가면 스탭이 더 늘어날 예정이다. 얼룩소와 일호, 두 사람이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아가는 동화 같은 여정이 어떻게 현실과 맞닿아 표현될 수 있는지가 <우리별 일호의 얼룩소>의 관건인 듯한데, “변덕이라 생각될 정도로 아이디어가 샘솟는다”는 감독과 제작진의 말을 듣다보면 아주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듯하다.

영향 받은 작품?

왕가위 영화 보고 애니메이션의 꿈을

장형윤 감독.

왕가위, 미야자키 하야오, 무라카미 하루키. 굵직굵직한 이름들인데, 장형윤 감독이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 장형윤 감독은 “20살 때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보고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었다”면서 “그때 <정은임의 영화음악> 팬이었는데, 왕가위 감독의 팬이었던 정은임 아나운서가 <아비정전> <중경삼림>의 영화음악을 많이 틀어줬다. 왕가위의 영화 자체도 좋아했지만 영화음악을 들으면서 뭔가를 만드는 것에 대한 동경을 키웠던 것 같다”고 말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장형윤 감독에게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피해갈 수 없는 이름이기도 하고. 어쨌거나 장형윤 감독은 이들의 작품을 통해 청춘의 일상, 그들이 하는 고민,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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