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보니 새나 물고기를 주제로 한 작품인 것 같다. 맞다. 이대희 감독의 장편애니메이션 <파닥파닥>은 물고기의 세계를 그린다. 픽사의 <니모를 찾아서>(2003)가 떠오른다고? 인간의 손아귀에서 탈출하는 것이 주인공의 목표라는 점에서 <파닥파닥>은 <니모를 찾아서>와 비슷하긴 한데, 이야기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배경은 어느 어촌에 자리한 한 작은 횟집 수족관 안. 그곳에 갇힌 넙치, 붕장어, 노래미, 농어, 도다리, 도미 등 한 무리의 물고기들은 사람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서슬 퍼런 사시미 칼에 언제 베일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말이다. 어느 날 수족관에 새로 들어온 망망대해 출신인 자연산 고등어가 탈출을 도모한다. 이미 이곳의 삶에 익숙해진 넙치는 수족관의 질서를 흐리는 고등어가 탐탁지 않다. 자유를 위해서라면 어떤 도전도 망설이지 않는 고등어와 현재의 삶에 안주하려는 넙치 사이에서 물고기들은 눈치를 봐가며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
인간과 닮은 물고기들
횟집 어항판 <하얀 거탑>이랄까. <파닥파닥>의 수족관은 갖가지 힘의 논리가 수시로 이동하는 공간이다. 넙치처럼 강자는 강자대로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고등어처럼 이상을 가진 도전자는 그 나름대로 모험을 하지만 현실의 한계에 직면한다. 또 힘없는 물고기들은 생존을 위한 줄을 서야 하고, 늙고 병든 물고기는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기도 전에 동료 물고기의 밥이 되어야 한다. 어떤 면에서 인간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는 풍경인데, 이는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직장 생활을 하던 이대희 감독이 흥미를 보인 부분이다. “당시 대학 졸업 뒤 들어간 직장에서 이런저런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출퇴근하는 길목에 횟집이 하나 있었는데, 횟집 수족관 안에 있는 물고기의 모습에서 회사 상사들이 보이더라. (웃음) 그런 ‘뻘’ 생각들을 매일 수첩에 메모했다. 3년 동안 쌓은 아이디어를 정리해보니 하나의 긴 이야기가 탄생했다. 1년 동안 시나리오 작업에 매달린 것도 그때부터다.”
현실의 살벌한 면을 다루는 이야기지만 이대희 감독은 <파닥파닥>을 현실의 사실적인 묘사를 넘어 사람들의 가려운 등을 시원하게 긁어줄 수 있는 작품이기를 바란다. 자료 조사와 취재를 철저하게 한 것도, 3D로 작업한 것도 캐릭터와 배경을 생생하게 묘사해 관객에게 익숙하게 다가가기 위함이다. 이대희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은 먼저 작품의 주요 공간인 횟집을 헌팅하기 위해 인천 연안부두와 강원도 속초를 수차례 뒤져야 했다. 이대희 감독은 말한다. “횟집은 제작비를 고려해서 규모가 너무 크면 안되고, 물고기가 수족관을 탈출해 바다로 바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바다와 거리가 가까워야 했다. 속초 출신인 후배를 통해 시나리오에 묘사된 특징을 모두 갖춘 횟집을 찾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 물고기를 건져올리는 것부터 배 나가는 풍경, 회 뜨는 모습까지 어촌과 횟집의 모습을 모두 카메라에 담았다.” 캐릭터의 성격은 실제 물고기의 특징을 최대한 활용했다. 가령 이런 식이다. “고등어는 좁은 어항에 들어오면 계속 직진해서 어항에 부딪힌다. 실제로 횟집에서 고등어를 건져올려보면 코가 멍들어 있다. 수족관을 탈출하려는 주인공 역에 캐스팅된 것도 고등어의 실제 특징 때문이다. 가오리는 얼굴 생김새가 비대칭이다. 복합적인 내면 연기를 하기에 적합하다. 놀래미는 멍청한 역할이다. 실제로 어항에 낚시를 하면 놀래미만 걸린다고 하더라. (웃음) 우럭과 광어는 횟집에서 잘나가는 물고기라 주로 죽는 역할을, 붕장어는 생긴 대로 동료들을 뜯어먹는 비열한 역을 맡았다.” 평소 횟집 어항에서 주로 만났던 물고기의 생김새를 떠올려보면 제법 그럴듯한 설정이다.
감정 표현이 포인트
그러나 이대희 감독은 인물과 배경의 사실적인 묘사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이야기가 너무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야기가 너무 현실을 풍자하는 데만 신경쓰면 보는 사람 입장에서 답답할 것 같더라. 뮤지컬 형식의 판타지 장면을 배치한 것도 그래서다. 원색에 가까운 색을 썼고, 카메라 앵글도 와이드하게 배치했다. 3D로 표현된 배경과 달리 판타지는 2D로 작업했다. 다만 뮤지컬은 정통 디즈니 형식의 뮤지컬이 아니라 <헤드윅> 같은 영화에서, 실사에서 그림으로 싹 넘어가는 숏처럼 묘사했다. 뮤직비디오라고나 할까. 물론 물고기가 직접 노래하는 장면도 있다.” 2D의 판타지 장면이 3D의 현실 풍경과 부딪힐 때 그 표현이 극대화될 것이다.
표현 기법과 함께 이대희 감독이 가장 신경쓴 건 캐릭터의 연기다. 제작진은 같은 물고기가 등장하는 <니모를 찾아서>를 비롯해 최근에 극장 개봉한 애니메이션 다수를 참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영어 악센트에 맞게 얼굴 근육이 변하는 외국산 애니메이션이 완벽한 참고서가 될 리 없다. “할리우드산 애니메이션은 진득하게 대화하는 장면이 별로 없더라. <파닥파닥>의 경우 물고기들이 어항 안에서 심각한 논쟁을 벌이는 연기를 해야 하는데 이걸 어떤 식으로 표현할지 많이 고민했다. 그러다가 한국 드라마에 클로즈업 숏이 많더라. 애니메이터들에게 <파닥파닥>의 상황과 비슷한 성격의 한국 드라마 장면 클립들을 참고하라고 제공했다.” 특히 넙치가 자신이 사랑하는 캐릭터가 죽는 광경을 보고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표현하는 장면은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의 한 장면을 참고했다고. 이대희 감독은 “<살인의 추억>에서 죽은 여학생의 시체를 본 김상경씨가 분노하면서 슬퍼하는 표정을 참고했다”면서 “이런 방식으로 <파닥파닥>은 그간 애니메이션에서 잘 보여주지 않은 감정을 표현하는 데 많이 치중했다. 그게 이번 작품에서의 도전 포인트”라고 설명한다.
<파닥파닥>은 마무리 편집 작업을 하고, 전문 성우들로 구성된 목소리 출연진이 녹음을 하는 등 현재 70% 공정을 진행 중이다. 제작진은 올해 10월 완성을 목표로 막바지 스퍼트를 내고 있다. 이대희 감독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올해로 6년 가까이 됐는데 시원섭섭하다”면서 “시작할 때만 해도 여러 가지로 힘들었다. 진행하면서 아이도 생기고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지금은 그때보다 부드러워졌다고 할까”라고 소감을 밝혔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한 뒤 망망대해로 나온 고등어의 심정이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혹시 극중 고등어는 좁은 수족관 안을 탈출할 수 있을까.“그건 반전이라 말할 수 없다. 이야기가 그렇게 단순하게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웃음)”
영향 받은 작품?
<어둠 속의 댄서>처럼 신나게
<파닥파닥>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어둠 속의 댄서>에서 영향을 받았다. 이대희 감독은 “<어둠 속의 댄서>에서 주인공 셀마(비욕)는 매우 절박한 상황에 처하지만 뮤지컬 형식을 통해 밝게 묘사하잖아. 그런 언밸런스한 정서를 많이 참고했다”면서 “특히 음악의 경우 현장음을 스코어에 최대한 활용했다. 기차 소리, 나무 자르는 소리 등 현장음이 뮤지컬 음악에 맞춰 들리는 <어둠 속의 댄서>처럼 <파닥파닥> 역시 칼질하는 소리, 어항 물 흐르는 소리 등 현장음을 음악에 녹였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탈출장면은 <빠삐용> 정도를 참고했다고 한다.